윤병주의 기타 연주를 아주 오래전부터 사랑했다. 대학교 시절, 그가 속했던 노이즈가든(Noizegarden)의 음반을 듣고 공연을 본 뒤부터 그의 팬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내뿜는 카리스마와 존재감, 중후한 톤의 연주는 내가 꿈꿔왔던 기타리스트의 이상향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가 기타를 치고 이끌었던 노이즈가든은, 미국 록 밴드 사운드가든(Soundgarden)을 향한 경외와 겸손 섞인 작명이었지만 이제 그들이 하나의 전설로 인정받고 있다. 내가 윤병주의 음악에 얼마나 푹 빠졌는지는 다음 증거로 대신하겠다. 나는 노이즈가든의 음반 2장을 오리지널 CD와 리마스터링되어 재발매된 CD, 그리고 LP로도 모조리 갖고 있다. 어떤가.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노이즈가든이 해체한 뒤 윤병주는 ‘로다운 30(Lowdown 30)’이라는 3인조 밴드로 되돌아왔다. 로다운 30을 통해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블루스적인 색채를 더 강하게 밀고 나갔다. 자연스레 듣는 이들은 비단 3인조라는 형식뿐만이 아니라 음악의 결 때문에라도 1960년대에 활동했던 레전드 밴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에릭 클랩턴, 잭 브루스, 진저 베이커로 구성된 영국 록 밴드 ‘크림(Cream)’이다. 실제로도 그는 인터뷰에서 ‘로다운 30’의 탄생 배경을 “1960~1970년대의 블루스 록 밴드들에게 영향받은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참고로 ‘로다운’이라는 단어는 저음으로 연주되는 블루스의 언어적 표현이라고 보면 된다.

ⓒ위키백과기타리스트 윤병주(가운데)는 블루스 록 밴드 ‘로다운 30’을 만들었다. 이들의 음악은 톤 변화로 다채로운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로다운 30과 함께 윤병주는 앨범 2장과 여러 싱글을 발표해왔다. 그중 혹시 헤비 블루스뿐만 아니라 대중음악 전체의 기초라 할 8마디 블루스의 전형을 듣고 싶다면 ‘인수김 블루스’를 플레이하면 된다. 크라잉넛의 멤버 김인수를 향한 헌사이기도 한 이 곡은 로다운 30이라는 밴드의 뿌리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적시해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노랫말에는 유머가 섞여 있지만 그리 만만히 볼 곡이 아니라는 뜻이다.

갓 발매된 3집 〈B〉는 이런 로다운 세계의 집대성이라 할 만하다. 블루스가 있고, 록이 있으며, 여기에 쫄깃한 펑크 터치가 더해져 음반이 끝날 때까지 도무지 귀를 떼지 못하게 한다. 특히 첫 곡 ‘일교차’의 2분52초와 4분20초 즈음의 변주 부분을 꼭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스피커에 소리가 짝 달라붙어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이런 식의 톤 변화를 통해 다채로운 무드를 이끌어내는 것. 이게 바로 로다운 30만의 매력이다. 1960~1970년대를 정조준하고 있는 끝부분의 오르간 소리와 변칙적인 드럼 역시 이 곡을 빛나게 하는 요소다.

명장 엔지니어의 손길로 품격마저 서려

이 외에 ‘검은 피’에서는 헤비 블루스와 펑크가 공존해 있고, ‘더 뜨겁게’는 마치 레니 크라비츠의 펑크·블루스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한 것처럼 들린다. ‘네크로노미콘’은 헤비 블루스를 연주하는 노이즈가든 같다. ‘네크로노미콘’처럼 다이내믹한 연주를 원한다면, ‘가파른 길’이라는 또 다른 선택지도 있다. 아, ‘네크로노미콘’과 ‘가파른 길’을 지금 당장이라도 라이브로 듣고 싶은데, 4월22일까지 기다려야 한다니. 만약 앨범 발매 공연에서 이 두 곡이 세트리스트에 없다면 나 울지도 모른다. 진짜다.

자기 스타일로 한껏 충전된 매력적인 고집이 있다. 반복된 훈련을 통해 완성된 정묘한 연주가 있으면서도 군데군데 유머를 잊지 않는다. 이게 바로 로다운 30의 음악이 이 세상이 요구하는 유행에 저만치 뒤져 있으면서도 현대적으로 들리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사운드를 매만져준 엔지니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명장 나카무라 소이치로의 손길을 거친 덕분에 앨범의 소리에는 품격 같은 게 서려 있다. 로다운 30의 〈B〉는 2017년 현재 대한민국 록 신에서 만날 수 있는 최상급 결과물이다.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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