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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이종범 보낸 치사한 방법

2017년 04월 14일(금) 제499호
중림로 새우젓 (팀명)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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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선동열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이종범 선수의 은퇴를 종용했다. 시즌 시작 전인 시범경기 때 은퇴가 결정되었다. 이종범 선수는 자신의 은퇴 경기를 경기장 바깥에서 관람했다.

2012년 3월31일,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 이종범 기아타이거즈 선수가 은퇴를 선언했다. 전설이 은퇴하는 과정은 초라했다. 불과 개막 일주일 전에 부랴부랴 이뤄진 결정이었다.

이 이상한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11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해 기아 타이거즈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조범현 감독이 물러났다. 기아타이거즈의 또 다른 전설 선동열 감독이 새 라커룸의 주인이 되었다. 팬들은 전설의 귀환을 환호하며 그와 함께 만들어낼 우승을 고대했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 전에 닦아야 할 눈물이 있었다. 팬들은 ‘분함’ 때문에 먼저 울었다. 선동열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이종범 선수의 은퇴를 종용했다. 이는 그가 삼성라이온즈에서 양준혁 선수에게 한 방법과 동일했다. ‘너의 자리는 없을 것’이라는 선언이었다.

ⓒ이우일 그림
사실 모두 알고 있었다. 1970년생 이종범 선수가 더 이상 경기 시작 사이렌 소리와 동시에 상대 투수의 초구를 담장 밖으로 넘길 수 없다는 것도, 재빠르게 베이스를 훔치거나, 내야에서 그림 같은 더블플레이를 만들 수도 없고, 외야에서 다이빙캐치를 밥 먹듯이 할 수 없으리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이종범이다.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라 불렸던 그 이종범. 그의 은퇴가 다가왔다는 것을 기아타이거즈 팬이라면 부정할 수 없었지만, 그가 그라운드를 떠날 거라는 소식을 그렇게 들어서는 안 되었다. 그것도 시즌 시작 직전 시범경기 때 말이다.

이종범 선수의 은퇴는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팀에서 종용한 일이라 은퇴 경기 일정을 협의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5월26일 KBO 기아타이거즈의 홈구장 광주 무등야구장. 은퇴 선언 2개월 뒤 잡힌 정식 은퇴 경기에서 이종범 선수는 필드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종범 선수의 은퇴 경기는 기아의 승리로 끝났다. 모든 선수는 7번이 새겨진 이종범의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밟았다. 하지만 그곳에 유니폼의 주인공은 없었다. 그 주인공은 경기가 끝나고 나서야 그라운드에 내려왔다(그렇다, 내려왔다. 조악한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그는 그렇게 더 이상 자신이 베이스를 도는 선수가 아닌, 베이스 바깥의 사람이라는 것을 선언했다. 자신의 은퇴 경기에 경기장 바깥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팀의 상징. 7번을 입고 타석에 선 것이 아니라 7번을 입고 경기가 끝난 뒤 은퇴식을 한 팀의 상징. 기아타이거즈라는 이름으로 팬들을 우롱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 이날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선수를 소모품 다루듯 하고 나이 들면 애물 취급하니…

2016년 9월26일 MLB 시카고컵스의 홈구장 리글리필드. 저니맨 백업 포수이자 컵스에서 단 두 시즌만 뛰었던 데이비드 로스 선수는 자신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은퇴식을 경험한다. 마지막 홈경기에서 공을 받고 있던 그에게 7회 말, 감독이 올라와 투수 교체가 아닌 포수 교체를 지시한다. 감독이 그라운드에 나와서 야수를 교체하는 경우가 없었기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 경기장에 모인 홈팬들은 백업 포수의 마지막을 축하해주고 은퇴를 기념하기 위해 기립박수를 보낸다. 팬들의 환호 속에 마지막 홈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시카고컵스의 에이스 존 레스터 선수와 조 매든 감독이 준비한 이벤트였다. 수염까지 하얗게 나기 시작한 마흔 살의 노장은 생각지도 못했던 배려와 이벤트에 더그아웃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과 한국의 프로 스포츠를 단순히 비교하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미국에서는 팀의 상징적인 선수나 팀에 결정적 기여를 한 스타의 말년을 예우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보편적이다. 휴스턴의 크레이크 비지오 선수, 뉴욕양키스의 마리아노 리베라 선수, 애틀랜타의 영원한 캡틴 치퍼 존스 선수 등 한 팀에서만 뛰었던 전설들은 자신의 마지막 시즌을 은퇴 투어로 멋지게 장식했다.

한국 프로야구는 아직도 선수를 소모품 다루듯 하며 프랜차이즈 선수가 팀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가치를 무시한다. 나이가 들어서 기량이 떨어지거나 신예 선수를 발굴하면 애물로 치부하는 식이다. 이런 풍토를 보고 있자면 ‘내가 이러려고 이 팀의 팬을 자처했나’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팀을 위한 선수의 희생이라 은퇴를 강요하고, 그 결단을 하지 않을 경우 팀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선수로 다루는 구단의 행태는 2017년인 지금까지도 고쳐지지 않은 문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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