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벗고 다시 보았습니다. 마침표와 그 다음 글자 간격이 좁아 보였습니다.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자로도 재보았습니다. 내 눈이 잘못되었나 이정현 미술팀장한테 ‘가편집본’을 가져갔습니다. 컴퓨터 화면에서 간격도 확인했습니다. 점심때까지 마침표와 글자 간격이 내내 걸렸습니다. 밥이 얹혔습니다. 소화제를 먹어도 체기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날 늦은 오후 이정현 팀장이 “해결했다”며 가편집본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제야 더부룩한 속도 내려갔습니다. 새 옷(디자인)으로 갈아입다 보니 생긴 일입니다.


창간 10주년, 〈시사IN〉이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지난해 가을부터 준비한 끝에 제500호를 맞아 독자 여러분께 새 디자인을 선보입니다. 먼저 제호를 단정히 했습니다. 창간호 때부터 쓰던 ‘코럴 레드’와 ‘다크 인디고 블루’ 색을 제호에 적용했습니다. 제호 디자인은 사실 독자 여러분이 정해주셨습니다. 지난 3월 독자들이 답해준 설문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입니다. 설문조사 결과 ‘IN’에 들어간 사람 모형의 상징을 여러 독자들이 기억해줘서 저희도 놀랐습니다. 큰 변화를 주는 대신 기존 제호를 활용했습니다.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듯 한 제호가 독자들에게 각인되고 사랑받기를 바랍니다. 옷맵시가 사람의 첫인상을 결정하듯 디자인은 매거진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미디어가 곧 메시지다”라는 마셜 맥루한의 말을 살짝 비틀면, “디자인이 곧 메시지”입니다.

이번 디자인 개편의 가장 큰 원칙은 군더더기를 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여백을 두려 했고 색깔 사용을 매뉴얼화했습니다. 눈매가 날카로운 독자라면 한눈에 색 쓰임새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옷감(서체)도 새로 마련했습니다. 안삼열 디자이너가 〈시사IN〉을 위해 ‘정인자’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눈을 시리게 만들 수 있는 기존 서체 끝의 날카로움과 가는 줄기를 보완했고, 글자 속 공간을 여유롭게 확보해 조판 면이 고르게 보이게 했습니다. 명조체의 장점인 부드러운 곡선에, 고딕체의 장점인 고른 획 굵기와 수직·수평 구조가 엿보여 큰 글자의 제목용 서체로도 적당합니다. 첫눈에는 낯설더라도 보기에 아름다고 읽기에 편할 것입니다.

이 모든 맵시를 가꾸는 데 ‘일상의 실천’과 〈시사IN〉 미술팀이 고생을 해주었습니다. 옷은 바뀌었지만, 몸과 정신은 창간호 때 그대로입니다. 2007년 9월25일자 창간호에 ‘〈시사IN〉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시사모)’을 대표해 조형근 독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시사IN〉이 이 복잡한 세상이 감추고 있는 섬세한 결들과 내상들을 드러냄으로써 우리 사회의 시민적 감수성을 표징하고 상승시키는 공론장이 되기를 바란다.” 정직한 사람들이 만드는 정통 시사주간지 〈시사IN〉은 독자 여러분께 늘 열려 있습니다. 응원과 쓴소리를 아끼지 않은 독자들께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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