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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3주기, 처절한 뒤엉킴을 안고서

2017년 04월 17일(월) 제500호
김탁환 (소설가)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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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김탁환씨는 지난해 세월호 민간 잠수사들을 다룬 소설 <거짓말이다>를 펴냈다. 직접 취재한 이야기와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썼다. 세월호 3주기를 맞아 그가 글을 보내왔다.

3년이 지났고, 3년 만에 돌아왔다.

대통령 탄핵과 구속의 소용돌이에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는 처참했다. 보기 흉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뒤죽박죽 뒤엉켜 어느 것 하나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뜻이다. 내 마음의 풍경이기도 하다.

지난 3년이 그랬다. 재판을 했으나 제대로 판결이 이뤄졌는지 의심스럽고, 조사를 했으나 충분한 조사를 하기에는 시간과 인력과 법률 모두 미비했다. 대통령의 7시간을 집요하게 따졌으나 아직 그 행적을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3년이 지났고 배까지 올라왔으니 정리 국면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도 있다. 탈상(脫喪)이란 단어를 들이밀기도 한다. 정리해서도 안 되지만 정리할 수도 없다는 것이 내가 품은 현재의 답이다.

이 모두가 진실을 둘러싼 3년 전투의 결과다. 여기서 전투는 비유가 아니라 사실 그 자체다. 진실을 밝히려는 세력과 진실을 은폐하려는 세력 사이의 쟁투가 쉼 없이 이어져왔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일이라면, 아무리 사소한 것도 난타전의 일환이었다. 논쟁 없이 무난하게 전부가 합의한 경우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내부에서 벌어진 조사 방해 책동을 떠올려보라. 조사를 막기 위해 특조위에 들어온 자들은 자폭도 불사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도드라진 일부만 추출하여 조사해선 안 되고 참사와 관련된 사건 전부를 조사해야 한다. 전선은 넓었고 참호는 깊었고 전투는 치열했다.

ⓒ시사IN 신선영
2016년 9월1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3차 청문회가 열렸지만 정부 측 증인은 불출석했다.

박근혜 정부는 차근차근 순서를 정하고 충분히 숙고한 뒤 유가족을 비롯한 관계자들과 소통하며 세월호 참사에 관련된 일을 진행한 적이 없다. 겉과 속이 다르고, 안과 밖이 모순되며, 시작과 끝이 갈라졌다.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구속까지 되었으니, 처참한 뒤엉킴은 가지런히 정돈될까. 그렇게 되기를 나 역시 바라지만 목포신항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여전히 어둡다.

대통령이 물러났다고, 전투가 멈추고 평화가 시작되리라는 것은 섣부른 낙관이다. 솔직히 최순실 사태가 나기까지, 진실을 밝히려는 세력이 대승을 거둔 적은 없었다. 돈과 권력을 쥔, 진실을 은폐하려는 세력이 오히려 꼼꼼하게 곳곳에 진지를 구축하고 지뢰를 파묻었다. 돌이켜 살피거나 따지지 못하도록, 중요한 증거들을 파괴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세월호가 침몰한 후 세 번째 봄을 맞는 감회와 전망을 알려달라는 요청이 부쩍 늘었다. 나는 먼 길을 내다보기보다는 3년 동안 변한 우리들 몰골을 웅크려 보고 듣고 만지자는 쪽이다. 전망을 펴기에는 발목에 매달리고 손목에 묶인 슬픔과 분노가 너무 짙은 탓이다.

다시 세월호의 처참한 뒤엉킴으로 돌아가보자. 졸저 <거짓말이다>의 속지에 이런 구호를 적은 적이 있다. ‘온전한 인양 명확한 증거.’ 선박 침몰 사고에서 침몰선보다 중요한 증거는 없다. 그런데 세월호는 140개가 넘는 구멍이 뚫린 채 올라왔다. 인양을 위해 뚫은 구멍이라지만, 최종 인양 때는 이렇게까지 구멍을 뚫을 필요가 없는 방식으로 변경하여 배를 끌어올렸다.

사고 발생부터 침몰까지 걸린 시간도 두고두고 의심스럽다. 세월호와 같은 대형 여객선은 7시간 이상 버틴다는 추측까지 당일 녹취록에 등장했다. 선내로 바닷물이 급격하게 쏟아진 원인을 찾기 위해선, 인양 과정에서 뚫는 구멍을 최소화해야 했다. 140여 개 구멍을 뚫은 과정을 해수부는 수중에서 촬영했을까. 영상이 있다면 즉각 공개해야 하며, 없다면 이유를 밝혀야 한다.

3년 동안 각종 재판이 진행되었다. 해경, 선사, 선원, 진도VTS, 민간 잠수사까지, 재판 기록만도 수만 쪽에 이른다. 세월호가 인양되기 전에 무기징역에서 무죄까지 다양한 판결이 내려졌다. 재판 기록을 읽다 보면 받아들이기 힘든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가령 해경 123정과 해경 헬기 세 대가 세월호를 구조하러 출동하면서 조타실의 선장이나 선원과 교신한 기록이 없다. 해경들이 한두 번 출동한 것도 아니며, 구조할 배와 연락을 주고받는 것은 기본 상식 중의 상식이다. 그런데 그날 해경 함정과 헬기는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 또한 현장에 도착한 해경 123정은, 선원인 줄도 모르고 조타실 가까이 함정을 붙여 선장과 선원부터 구했다는 주장을 폈다. ‘승객 먼저, 여자와 어린이 먼저!’라는 전 세계의 상식이 단번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특조위에서 이 부분을 조사하려고 했지만 정부기관의 비협조라는 벽에 번번이 부딪혔다.

지우고 감추고 흩어버린 물증을 찾아 맞춰야

나는 기본 상식에 반하는 현지 출동 세력의 진술을 사실로 인정하기 힘들다. 참사 당일의 시간을 세분하고, 동시간대에 해경과 선원과 승객들의 기억을 모아 비교 조사하여, 사실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해수부와 해경과 선원들을 조사할 뿐만 아니라 수사할 권한까지 지닌 강력한 제2기 특조위가 필요하다.

우리가 마지막까지 살피고 지켜야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처음에는 참사 이전 희생자들의 행적을 모아 글이나 영상으로 묶는 일에 집중했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의 평화로운 나날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다.

ⓒ시사IN 조남진
2016년 6월19일 서울시립서북병원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실종자 수색과 시신 수습에 참여한 김관홍 잠수사의 장례식이 엄수되었다.

또 다른 사람들이 등장했다. 참사 이후 광화문광장에서, 팽목항과 동거차도에서, 안산 단원고 기억교실에서, 국회와 법정에서 다양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 전투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다치거나 병들었다. 그들의 심신을 점검하고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고 김관홍 잠수사를 비롯한 민간 잠수사들의 고통을 개인 문제로 간주해서는 결코 안 된다. 혼자일 땐 막막한 지옥이더라도 함께 모여 어깨 걸면 지옥 너머 천국의 빛이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법이다.

대선을 통해 정권교체가 되면 진실을 둘러싼 전투가 종지부를 찍을까. 나는 장기전에 대비하자는 쪽이다. 3년 동안 지우고 감추고 흩어버린 물증을 찾아 맞추기까지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긴장을 늦추지 말고, 꼬이고 엉킨 실타래를 풀어나가야 한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세력은 이미 재판도 끝났고 조사도 끝났고 보상도 끝났다며 버티고 있다. 그러나 참사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는 불변하는 것도 끝난 것도 없다. 법도 제도도 관습도 기억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위해 바꾸고 고치고 다듬어야 한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여기까지 온 것은 유가족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분투 덕분이다. 이젠 전면적인 공세를 펴며 진실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처참한 뒤엉킴을 고스란히 안고 한 걸음 앞으로! 그 새로운 걸음에 정성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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