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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떼지 못한 ‘기간제’ 꼬리표

2017년 04월 17일(월) 제500호
신한슬 기자 hs5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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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 당시 숨진 단원고 교사 9명 중 김초원·이지혜씨는 순직을 인정받지 못했다. 기간제 교사는 순직 심사 대상인 공무원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유족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2014년 4월16일은 단원고등학교 2학년 3반 담임 김초원 교사의 스물다섯 번째 생일이었다. 4월15일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세월호에 탔다. 한 달 전 발령을 받은 새내기 교사의 첫 수학여행이었다. 4월15일 밤 한 학생이 ‘배가 아프다’며 김 교사의 숙소 문을 다급하게 두드렸다. 그녀는 4층 객실의 학생들 숙소로 달려갔다. 객실 문을 열자, 케이크를 든 학생들이 “사랑하는 선생님, 생신 축하합니다!”라고 소리쳤다. 학생들은 손바닥만 한 하늘색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함께 돈을 모아서 산 귀걸이와 목걸이였다. 깜짝 생일파티 때 찍은 기념사진에서 학생들은 손가락으로 김 교사에게 ‘사랑의 총알’을 날렸다. 단원고 2학년 3반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찍은 마지막 사진이었다.

4월16일 아침 배가 기울자 김 교사는 4층 객실로 내려갔다. 허리에 물이 찬 상태로 비상탈출구까지 학생들을 데려가 탈출시킨 뒤, 다시 물이 차 있는 선체로 들어갔다. 김초원·이지혜 교사를 비롯해 단원고 교사 9명은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했다. 4월18일 숨진 채 돌아온 김 교사는 구명조끼를 입고 있지 않았다. 아이들이 선물한 귀걸이와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김초원 교사의 아버지 김성욱씨(59·위 사진)는 전남 진도 팽목항에 돌아온 딸의 얼굴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딸은 자는 것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김 교사의 장례식은 2014년 4월20일 오전에 치러졌다. 입관 전 김성욱씨는 딸의 얼굴에 흰색 천을 덮으며 말했다. “내 딸,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좋은 데로 가라.”

ⓒ윤성희
고 김초원 교사의 아버지 김성욱씨(위)는 지난 3년 동안 딸의 명예회복을 위해 싸우느라 성대에 이상이 생겼다. 김씨 집 거실에 딸의 초상화가 놓여 있다.
장례식 후 일주일이 지났을 때, 김성욱씨는 14년간 재직하던 회사를 그만뒀다.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납골당으로 딸을 만나러 갔다. 눈물이 나 중간에 차를 세웠고, 내비게이션 안내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해 길을 잃기 일쑤였다. 안산 자택에서 납골당까지 1시간이면 가는 길인데 4시간이나 걸렸다.

김성욱씨는 정부를 상대로 사고 원인에 대한 진상 규명 외에도 또 다른 싸움을 해야 했다. 김초원 교사의 순직 인정 문제다. 2014년 7월 인사혁신처는 세월호 참사 당시 숨진 단원고 교사 9명 중 김초원·이지혜(당시 31세) 교사를 제외한 7명의 순직을 인정했다. 두 교사는 순직 신청서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정부는 공무원연금법상 기간제 교사는 공무원이 아니므로 순직 심사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고 유가족들에게 통보했다.

2015년 9월23일 김성욱씨와 이지혜 교사의 아버지 이종락씨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서울 정부종합청사까지 삼보일배를 했다. 40만명의 탄원 서명도 받아 건넸다. 정부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2016년 7월 김성욱씨는 서울행정법원에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및 유족보상금 청구서 반려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딸의 순직 심사를 해달라는 소송을 낸 것이다. 현재 1심 소송이 진행 중이다.

김초원·이지혜 교사 계약서에서는 정교사와 똑같이 주 6일, 하루 8시간 근무가 명시되어 있다. 이지혜 교사는 매년 계약을 갱신해 5년간 단원고에서 근무했다. 두 교사와 정교사의 신분을 가르는 계약서 문구는 ‘채용 구분:기간제 교사’라는 부분이다. ‘기간제 교사’라는 다섯 글자가 하늘나라로 떠난 두 교사에게 족쇄처럼 따라다녔다. 유가족의 행정소송을 대리하는 윤지영(법무법인 공감) 변호사는 “기간제 교사가 정교사보다 적은 시간 동안 보충적인 업무만 할 거라는 판단은 선입견이다. 두 교사는 학교 현장에서도,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도 정교사들과 똑같은 업무와 책임을 다했다”라고 말했다.

시행령 근거로 하면 순직 인정 가능

굳이 소송까지 가지 않고 두 교사의 순직 인정이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견해도 있다. 공무원연금법 시행령에는 정규 공무원 외의 직원도 공무원연금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예외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법 시행령 제2조 4항에 따르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정규 공무원 외의 직원으로서 수행 업무의 계속성과 매월 정액의 보수 지급 여부 등을 고려하여 인사혁신처장이 인정하는 사람”도 공무원연금법 적용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이 시행령을 근거로 하면 순직 인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동극 인사혁신처장은 지난 3월31일 기자간담회에서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현행 법률상 (순직 처리) 할 수 있는 게 없다”라고 말했다. 이지혜씨의 아버지 이정락씨는 <시사IN>과 통화하면서 “법률을 근거로 순직 처리를 하지 않는 것은 핑계다.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두 교사의 유가족이 원하는 것은 명예회복이다. 김성욱씨는 “순직 인정이 되면 A4 용지보다 작은 ‘순직공무원 인정서’가 나온다. 오직 내 딸이 명예롭게 죽었다는 인정을 받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정락씨도 “행정소송 재판 때 판사가 ‘산업재해와 순직 중 무엇이 돈을 더 많이 받느냐’고 묻더라. 방청석에서 ‘돈 아예 안 줘도 되니까 순직만 인정해달라’고 외치려다 꾹 참았다”라고 말했다.

기간제 교사라는 신분 때문에 죽어서도 차별받는 현실을 두 교사의 부모들은 감내하기 힘들었다. 두 가족 모두 안산을 떠났다. 이정락씨 부부는 아내 고향인 전라북도 김제에 머물고 있다. 김성욱씨 부부는 2016년 10월부터 김씨의 고향인 경상남도 거창에 살고 있다. 김씨가 머무는 집은 방 한 개, 부엌, 거실로 단출하다. 집에는 가구가 거의 없다. 거실에는 김초원 교사의 초상화가 놓여 있다. 김씨는 지난 3월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3년 동안 딸의 명예회복을 위해 싸우느라 성대에 이상이 생겼다. 그는 인공 성대 삽입 수술을 받았다. 김씨는 “여기서는 노란 세월호 잠바를 입고 다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게 제일 좋다. 안산에서는 ‘보상금 얼마 받았냐’느니 이상한 소리만 들었는데…”라고 말했다. 같은 마을에 사는 김초원 교사의 할머니는 아직도 손녀의 죽음을 알지 못한다. 여든세 살 노모가 충격받을까 봐 김성욱씨는 “초원이가 미국에 유학 가서 박사 학위 따느라 10년은 돌아오지 못한다”라고 둘러댔다. 할머니는 ‘유학 중’인 손녀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닌다. 할머니 지갑 속에서 김초원 교사는 늘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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