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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지에 세워지는 ‘위안부’ 박물관

2017년 04월 20일(목) 제500호
도쿄·이령경 편집위원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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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타이완·필리핀·일본 등 세계 각지에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 11곳이 있다. ‘위안부’ 할머니 생활 공동체인 ‘나눔의 집’에서 1998년 만든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 최초다.

4월1일 가해국 일본에서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 회의가 열렸다. 1998년 한국에서 최초로 세워진 후 현재까지 건립된 한국·중국·일본·타이완·필리핀의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 현황과 동티모르의 관련 활동을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는 귀중한 자리였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어떻게든 ‘위안부’ 문제를 종결하려 했다. 하지만 피해자들과 지원자들은 착실하게 기억과 역사를 남기는 작업을 해왔고 그 성과가 박물관으로 나타났다. 현재 운영 중인 박물관 11곳은 나라와 지역에 따라 운영 주체·이념·규모가 다르지만 모두 피해 여성들의 기억을 계승해 평화와 인권 교육에 힘쓰고 있다.

세계 첫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은 1998년 8월 개관한 한국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 부설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다. 나눔의 집은 1992년 10월 공동생활을 희망한 피해자나, 몸이 불편해서 혼자 살기 힘든 피해자를 위한 생활 공동체로 만들어졌고 이후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에 앞장서왔다. 나눔의 집은 1997년 가을 피해자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모으는 기념관 설립 캠페인을 벌였다. 이 캠페인에 한국과 일본 시민들이 적극 나섰고 1년 후 역사관을 열었다. 개관과 운영에 필요한 자금과 전시에 필수인 역사 사료 대부분을 일본의 연구자, 시민들이 제공했다. 그런 점에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국경을 넘어선 광범위한 한·일 연대의 성과물이다. 이 역사관에서는 관람객들이 피해자들의 직접 증언을 들을 수 있다. 리모델링 후 1972년 오키나와에서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고발한 고 배봉기 할머니의 유품과 자료도 볼 수 있다.

ⓒ연합뉴스
중국 장쑤성 난징시에 있는 <난징 리지샹 위안소 유적 진열관> 밖에 세워진 ‘만삭의 위안부 동상’.
현존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위안소 터다.
2004년 부산 수영동에 세워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민족과 여성 역사관>은 김문숙 이사장이 사비를 들여 설립한 곳이다. 피해자와 같은 세대인 김문숙 이사장이 피해자들과 함께해온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특히 1992년 12월 김문숙 이사장이 부산을 중심으로 한 ‘위안부’ 피해자 3명,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7명과 함께 일본 정부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한 ‘관부 재판’의 자료와 운동사 전시는 이곳만의 재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번 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2003년부터 건립 운동을 시작해 각국 시민들의 지원 덕분에 2012년 5월 서울에 개관한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이 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부설기관인 이곳은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역사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사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 25년간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이 넓혀온 지평을 1층 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성폭력에 관한 전시 등 현재도 세계 각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전쟁 시 성폭력을 테마로 한 전시와 전쟁 성폭력 피해 여성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나비 기금’ 운동이 그것이다.

상처·기억·운동을 자녀와 손자들이 이어가


한국에서 가장 최근 개관한 박물관은 대구의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다. 1997년부터 대구와 경북 지역의 피해자를 지원하고 문제 해결 운동을 해온 ‘대구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건립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8년 만인 2015년 12월 세워졌다. 한국 정부와 대구시가 지원을 거부해 다른 길을 모색하던 중 큰 힘이 된 것이 피해자가 남긴 압화 작품이었다. 피해자 치유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던 압화 작품을 ‘희움:희망을 모아 꽃피움’이라는 브랜드로 상품화해 얻은 수익으로 박물관 건립 기금의 70%를 충당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함께 20년간 지역사회와 연계해온 운동의 성과다.

필리핀의 <릴라 필리피나 롤라스 센터(Lila-Pilipina, Lolas Center)>는 그 자체가 박물관이다(필리핀 말로 롤라는 할머니라는 뜻이다). 센터의 전신은 1995년 만들어진 <롤라스 하우스(Lolas House)>다. 필리핀의 피해 생존자와 지원자의 단체 ‘릴라 필리피나(Lila-Pilipina)’가 1994년 5월 일본 정부에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후 활동과 교류의 장으로 <롤라스 하우스>를 만들었다. 돈이 없어서 여기저기 옮겨 다녀야 했던 하우스의 사정이 안타까웠던 일본의 필리핀 피해자 지원 단체와 시민들이 모금을 해 2008년 케손시티에 2층 중고 건물을 구입하고 <릴라 필리피나 롤라스 센터>를 열었다. 필리핀 정부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는 롤라들의 쉼터이자 숙박시설인 센터 벽에는 피해자 174명의 사진, 직접 만든 자수와 그림, 일본 대사관 데모 때 만든 퀼트도 전시되어 있다. 1992년부터 해온 증언 채록과 활동 기록 그리고 필리핀에서 발굴된 사료는 지원자들이 직접 만든 책장에 보관되어 있다. 센터에는 성폭력의 무거운 과거를 딛고 일어선 롤라들의 용기와 투쟁사가 빼곡히 차 있다. 지금 센터에 모일 수 있는 생존자는 얼마 안 된다. 그러나 센터에서 그들의 상처·기억·운동을 이어받은 자녀과 손자들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05년 8월 일본 시민의 힘으로 도쿄에 개관한 <액티브 뮤지엄 여성들을 위한 전쟁과 평화 자료관(wam·왐)>은 전시 성폭력에 특화된 기억과 활동의 거점이다. 온갖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위안부’ 제도의 실태와 역사, 가해국으로서의 책임을 알리고 있다. 매년 1~2회 한국과 북한·동티모르·타이완·미얀마·오키나와·인도네시아·중국·필리핀 등 피해자 나라별·주제별 특별 전시와 도록 출판을 하고 있다(<시사IN> 제475호 ‘일본인이 기록한 위안부의 악몽’ 기사 참조). 올여름에는 일본인 ‘위안부’ 특별전을 준비 중이다. 왐이 이렇게 많은 횟수의 특별전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각국 현지의 피해자 지원 단체 그리고 일본 내의 각국 피해자 지원 단체와 연구자들의 협력 덕이다. 왐이 축적해온 위안소 지도 등의 데이터나 자료는 일본 국내외 박물관이나 연구소 등에서 활용되고 있다.

ⓒ윤성희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부설기관인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추모관. 일본군 ‘위안부’ 영정 사이사이에 헌화한 꽃들이 놓여 있다.
중국에는 박물관이 총 4곳 있다. 난징·윈난성·헤이룽장성 박물관은 모두 옛 위안소 건물을 활용하고 있고 운영 주체는 지자체다. 2015년 12월 난징대학살 기념관의 분관으로 오픈한 <난징 리지샹 위안소 유적 진열관>은 현존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위안소 터였다. 총 3000㎡가 넘는 이 터의 보존과 개발을 둘러싸고 학자·언론·정부·부동산 회사가 11년간 논쟁을 벌였다. 결국 2014년 난징시가 보존 결정을 내리면서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2003년 중국·북한·일본 합동조사단 조사, 북한의 고 박영심 할머니 현장 방문과 증언을 통해 진열관 역사가 검증되었다. 진열관에는 별도로 중국으로 끌려간 조선인 피해자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상하이에는 대학 캠퍼스 안에 박물관이 있다. 2016년 10월 개관한 상하이 사범대학교 <중국 ‘위안부’ 역사박물관>이다. 이곳의 전신은 2007년부터 상하이 사범대학 ‘위안부’ 문제 연구센터가 운영해온 중국 ‘위안부’ 자료관이다.

대학 캠퍼스 안에도 ‘위안부’ 박물관 생겨


가장 최근에 개관한 박물관은 타이완의 <아마의 집 평화와 여성의 인권관(AMA Museum)>이다. 개관 주체는 1992년 타이완인 피해자 조사와 문제 해결 운동을 시작한 타이완 ‘부녀구원기금’이다. 반세기 이상 아마(타이완 말로 아마는 할머니라는 뜻이다)들과 함께 그들의 심리적·신체적 지원을 해온 기금이 2016년 12월 박물관을 열었다. 기금 마련에서 장소 선정까지 12년 동안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역사회와의 연계 운동과 지원 속에 탄생한 이곳은 타이완 피해자 59명의 삶과 투쟁을 기록하고 있다. 전시는 생존자가 펼쳐온 운동에 초점을 맞춤과 동시에 여성의 지위 향상과 여성인권 교육 거점을 지향한다. 내전이 끊이지 않는 르완다에서 재배된 공정무역 커피를 제공하는 1층의 아마 카페(AMA cafe)는 여성 기업가 및 NPO의 위탁 판매도 한다.

‘피해자들이 돌아가신 다음에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고민과 ‘두 번 다시 잔혹한 성폭력 피해가 없도록 잊지 말아달라’는 피해자들의 염원에 부응해 만들어진 박물관이 생존자들의 치유의 공간이자 공감하는 사람들의 교육 공간이 되고 있다.

박물관을 만들거나 전시 자료를 만들기 힘든 지역은 기존 박물관의 협력을 얻고 있다. 동티모르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과 생존자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동티모르인권협회(HAK Association)는 2008년 2월부터 왐의 특별전 <동티모르 전쟁 속에 살아남은 여성들~일본군과 인도네시아의 지배하에서(2006~2007년)>를 국민의 대다수가 사용하는 테툼어로 번역해서 순회 전시를 하고 있다. 식민지 종주국의 포르투갈어나 2002년까지 24년간 침략 통치를 한 인도네시아어가 아닌 자신들의 언어로 ‘위안부’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서다. 박물관 운동이기에 가능한 연대다. 앞으로 이어질 박물관 간의 교류 협력은 민족과 국가를 초월해 각 지역의 일본군 ‘위안부’ 역사의 깊이를 더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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