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빵, 달 샤베트(셔벗), (장수탕 선녀님의) 요구르트, (꿈에서 맛본) 똥파리, (이상한 엄마의) 달걀국에 이어 이번에는 알사탕이다. 동화작가 ‘백희나 메뉴판’에 새롭게 들어선 먹을거리. 요구르트처럼 일상적인 소품이지만 구름빵처럼 일상을 백팔십도 바꿔놓는 마술적인 효과를 낸다는 점에서 알사탕은 주목할 만하다. 백희나의 기존 작품에 나왔던 모티프들이 통합되면서 한발 앞으로 나아간 측면이 있다. 그러면서 먹을 것을 매개로 한 소통과 연민과 사랑이라는 테마는 변함없다. 굳건한 축을 중심으로 하되 세부는 역동적으로 변하는 백희나의 작품 세계가 다시 한번 확인된다.

장수탕 선녀님의 덕지와 남매 사이일 것만 같은 동동이의 구슬치기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엉덩이는 불쑥 올라간 채 땅에 납작 붙은 몸, 구슬 사이의 각도를 재는 예리한 눈빛, 잔뜩 긴장한 손가락, 그 옆에서 천연덕스럽게 눈을 질끈 감고 엎드려 있는 강아지. 인형들의 표정과 자세가 전작보다 훨씬 섬세하면서 유려해지고 풍부해진 것 같다.

그림에서 살짝 비켜가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하는 글도 그렇다. 그림만 보자면 ‘구슬치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가 앞으로 나와야 할 것 같지만 ‘혼자 노는 것도 나쁘지 않다’가 말머리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동동이는 혼자 노는 자신을 열심히 위로하는, 사실은 친구들과 같이 놀고 싶은 외로운 아이다. 축구하는 아이들을 흐릿한 배경으로 두고 동동이가 땅만 내려다보며 걷는 장면이 그것을 증명한다.

〈알사탕〉 백희나 지음, 책읽는곰 펴냄
그렇다면 알사탕은 동동이를 위로해주고 친구를 마련해주겠지. 어떻게? 구멍가게 할아버지가 건넨 알사탕이 사람 속말을 듣고 동물·사물과 대화하게 해주는 것으로. 아이들 공상 같기도 한 관습적 모티프인데, 백희나 작품의 묘미는 그런 모티프를 사랑스러운 캐릭터, 놀라운 디테일과 생기 넘치는 소품이나 배경들, 능청스러운 유머를 통해 개성적으로 풀어 나간다는 데 있다. 동동이와 대화가 가능해진 소파는 옆구리에 끼인 리모컨과 동동이 아빠의 숨 막히는 방귀에 대해 불평하고, 잔소리쟁이 아빠는 동동이를 사랑하는 속마음을 보여주고, 하늘나라로 간 할머니가 목소리를 보내는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면 웃음이 톡 터지기도 하고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이야기는, 그렇게 해서 동동이는 자기랑 놀고 싶어 하는 친구들의 속마음을 알아내어 같이 놀게 되었다, 로 끝나지 않는다. 다시 한번 백희나의 개성이 발휘된다. 동동이에게는 엄마가 없다. 그런데 그에 따른 상실감을 동동이는 엄마의 환상으로 채우지 않는다. 엄마 대신이었던 할머니를 불러내고, 엄마 몫까지 하는 아빠의 사랑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는 스스로 친구를 만들어내는 자기 의지로 채운다. 구멍 뚫린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새로운 도구와 방식으로 메우는 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기자명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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