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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굽기, 그 어려운 걸 해낸 사람들

2017년 04월 21일(금) 제500호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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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하현(下弦)이 되어 조수(潮水)가 빠지고 갯벌이 드러나면 그 땅을 갈아 소금기 머금은 밭을 만들고, 거기서 받은 소금흙을 굽는다네. 알갱이가 굵은 것은 결정이 수정 같은 소금(水晶鹽·수정염)이 되고, 가는 것은 결정이 싸라기 같은 소금(素金鹽·소금염)이 되지.”

조선 문인 박지원이 스무 살에 쓴 <민옹전(閔翁傳)>(1757년)에 전통적인 소금 생산방식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아니, 그런데 땅을 간다니? 소금을 굽는다니? 1907년 이후 한반도에서 천일염을 생산하기 전까지, 어렵게 생산해 귀하게 먹어온 ‘자염(煮鹽)’ 또는 ‘화염(火鹽)’이 바로 소금이다. 말 속에 그 내력이 들어 있다. 구웠다고 자염(구울자 煮)이고, 불을 때 얻는다고 화염(불화 火) 이다. 화염이 변한 말로 ‘화렴’도 있다. 흙을 일구어 만든 데 착안해서는 ‘토염(土鹽)’이라 했다.

그림은 그야말로 짠물을 ‘달이고’ ‘졸여’ 소금 결정을 받는 자염 생산의 최종 단계를 생생히 드러내 보인다. 함수(鹹水) 끓일 때 쓰는 가마는 소재에 따라 토부(土釜)·석부(石釜)·철부(鉄釜) 등이 있다. 토부는 조개껍데기가 변한 회와 조개껍데기 가루를 섞어서 만든 것이고, 석부는 조약돌을 회에 이겨 제조한 것이며, 철부는 쇠로 만든 것이다. 염전을 만들 조건이 되지 않는 곳에서는 아예 바닷물을 바로 끓여 소금 결정을 받았다.

김준근 ‘염조지인’, 19세기 말 그림, 오스트리아 빈 민족학박물관 소장.

자염 또는 화염 생산의 핵심에 불이 있다. 그림이 포착했듯, 그냥 끓이는 게 아니라 저으며 졸이는 작업이다. 가마에 주걱질도 멈출 수 없고, 한번 불을 지피면 반나절 이상 걸리는 불 때기를 감당해야 한다. 그냥 불을 때는 것이 아니라 석출에 최적화한 불 조절을 하면서 때야 한다. 자연이 도와주지 않아도, 노동력이 부족해도 못할 일이지만, 연료가 없어도 소금은 얻을 수 없었다.

별다른 연료가 없던 시절, 염한이라 불린 소금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나무꾼이었다. 태생이고 신분이고 보잘것없는 소금 노동자들이 나무가 잘 자란 산을 소유했을 리 없다. 통나무는 언감생심이고, 나무가 빽빽한 산이라야 솔가리며 삭정이라도 긁을 수 있다. 염한은 소금을 굽자고 어쩔 수 없이 남의 산에 들어가곤 했다. 남의 산에 들어갔다가 산주에게 들켰다가는 죽을 곤욕을 당했다. 국유림에 들어갔다 걸리면 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 땅의 사람들, 이렇게 어렵게 소금을 낸 덕분에 장도 담그고 음식에 간을 하고, 채소 소금 절임과 젓갈, 김치 등을 만들어 먹으며 살아남았다.

이 어렵고도 고마운 일을 독특한 그림으로 기록한 기산 김준근은 19세기 말 조선의 개항장인 제물포·동래·원산 등지에서 활동한 화가이다. 그는 그림으로 먹고산 전문화가, 직업화가다. 신상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이 화가는, 미국인 선교사 존 게일이 영국인 존 번연의 소설 <The Pilgrims Progress>를 1895년 조선어로 완역해 <텬로력뎡>을 펴낼 때 그 삽화를 그린 인물이기도 하다. 곧 한국 미술사상·출판사상 최초로 서구의 발행인·편집인과 책 그림 작업을 한 인물이다.

1886년 조선을 방문한 미국인 메리 슈펠트(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 미국 측의 중요 인사였던
로버트 슈펠트의 딸)는 부산 초량까지 김준근을 찾아가 그림을 구입하기도 했다. 프로이센 출신 조선 관리 묄렌도르프, 프랑스 학자 샤를 루이 바라 등도 김준근 그림을 적극 사서 모았다. 김준근의 그림은 현재 한국·독일·오스트리아·프랑스· 미국·캐나다·러시아·덴마크 곳곳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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