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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늘 성실한 자의 몫

2017년 04월 21일(금) 제500호
김현 (시인)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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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10일 오전 11시 대통령 박근혜가 파면됐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이보다 살아 있는 문장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탄핵 인용 이후 토요일 광화문도 살아 있었다. 많은 이들이 모여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몸짓하고 마침내는 불꽃이 수놓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람들은 국가의 의사를 최종 결정하는 권력에 관하여 생각했을 것이다. 주권자로서 나는 성실한 사람인가. 이제 국민의 밖이 아니라 국민의 안에 선 박근혜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성실의 개념은 상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와 같은 추상적 의무 규정의 위반을 이유로 탄핵 소추를 하는 것은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성실한 대통령이었습니까?’


뜨개질하면서 힘든 시간을 견뎌온 세월호 유가족들의 뜨개 전시를 보러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날은 마침 단원고 2학년 6반 이영만 학생의 생일 모임이 예정된 날이기도 했다. 영만이의 생일은 2월19일이다. 나는 영만이의 생일을 맞아 그 아이의 목소리로 생일시를 적었더랬다. 운명적이게도 내 호적상 생일은 2월19일이다.

ⓒ시사IN 신선영

뜨개질은 성실한 행위이다. 자리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시간만큼 결과물이 완성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므로 뜨개는 두말할 것 없이 시간의 산물이다. 2년 반이 훌쩍 넘는 동안 유가족들이 직조해놓은 시간들은 다양했다. 컵 받침부터 방석·목도리·스웨터까지 가지각색의 시간 앞에서 죄송스럽게도 색이 참 곱구나, 라는 생각을 먼저 해버렸다.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에서였겠지. 자신들의 마음을 담았다면 저렇게 형형색색으로 다채로운 무늬를 짤 수 없었겠지. 어떤 마음이 유가족들의 두 손을 매주 움직이게 하였을까 감히 짐작해보고 싶었다. 그 두 손의 행위를 감히 성실한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았다. 그리고 전시장 한쪽에 적힌 ‘만지고 싶어 죽겠어’라는 글귀를 발견하고서야 나는 유가족들의 두 손이 먹고사는 일에 성실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리하여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살아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들이 먹고사는 데 성실한 사람이었고 그들이 그들의 자식을 성실히 먹고사는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는 것이, 또한 그들의 자식들이 자기 인생을 아주 특별한 성실함이 아니라 보통의 성실함으로도 길게 꾸려보지 못한 채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갔음이 안타까웠다. 인생에 성실 총량의 법칙이란 게 있다면, 아이들은 오늘날 가장 성실한 사람들이었을 테다.

영만이의 생일 모임은 담담했다. 살아 있지 않은 사람의 생일 초에 무슨 염원을 담을 수 있을까…. 분명히 한 번쯤 생각해보았을 사람들이 아마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생의 염원을 담아 함께 촛불을 껐다. 모임 마지막에는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영만이를 위한 생일시를 읽었다. 내가 영만이의 목소리로 적은 시였다. 울음을 참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영만이 엄마 앞에서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다 같이 울어버리니 와, 하고 울음이 달려 나왔다. 왜 늘 울음은 웃음보다 성실한 걸까.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명을 기억하기 위한 304낭독회는 304회 동안 꾸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304번을 채우기 위해서는 25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25년 동안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건 어지간히 성실해서는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1년 열두 달을 책임지는 성실함이라면, 25명의 동료로도 또 되고야 마는 별것 아닌 일이기도 하다.

매년 2월19일을 나는 이제 내 호적상의 생일이 아니라 영만이의 생일로 기억할 것이다. 기억이란 성실의 뭉치이다. 그러니까 세월호 유가족들이 그리움을 만지기 위해 사용한 것은 아마도 털실의 뭉치가 아니라 저 성실의 뭉치일 것이다.

박근혜 탄핵 이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루어지는 세월호 선체 인양 과정을 지켜보면서 허탈함과 분노를 느꼈다. 새삼 진실은 늘 성실한 자들의 몫임을 확인할 수 있어 감격스러웠다. 무슨 자격으로인지는 모르겠으나, 세월호 유가족들과 그들과 연대했던 이들에게 속삭여주고 싶다. 당신은 성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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