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로 밝힌 시민의식이 대통령 탄핵으로 마감되었다. 박근혜 정권의 무능과 부패, 국정 농단이 무혈의 시민혁명으로 귀결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국정 수행의 수준과 행태가 부끄러울 정도였지만 시민 민주주의의 강화라는 점에서 자랑스럽기도 하다. 그동안 불통과 무능 정치로 인해 본 손해는 계산할 수도 없다. 특히 외교적 소외와 그로 인한 국제적 고립감은 국가 생존의 위기까지 느끼게 하는 상황이다. 북한 선제공격론 등 대한민국의 운명이 강대국의 손에 맡겨진 상황에서 대선 후보자들이 주장하는 공약은 공허하고 한가하게도 느껴진다.

현재 정국 상황으로는 정권교체가 거의 분명할 듯하다. 그렇다면 정권교체와 새 대통령의 선출로 새로운 한국 사회가 세워질까?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민주당이 집권하더라도 과반에 미달하는 국회 의석수 때문에 정책적 연합 등이 불가피하다. 40석에 불과한 국민의당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이러한 의석 상황은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요구가 법안을 통해 관철되기 매우 어렵게 할 것이다. 정책적 연합이 불가피하고 대통령의 고집 대신 야당과의 소통 능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이유이다. 소통은 여론 수렴 외에도 다양한 대안적 선택 가능성이라는 점에서 정책의 전문성을 높이는 기능을 한다. 대통령 주변 인물이 같은 생각을 가진 맹목적 충성파로만 구성될 경우 정치를 망치는 예를 박근혜 정권에서 보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새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적폐 청산과 이에 대한 저항으로 허송세월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무엇이 청산해야 할 적폐이고 우리 사회가 당면한 위기이며 나라의 미래를 위하여 중요한 일인지를 판별하는 혜안과 이성적 판단이 필요하다.

현재 대통령 후보들이 최우선으로 꼽는 정책은 경제 살리기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일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의 경제 최우선주의가 과연 우리 삶을 행복하게 만들었는가? OECD 35개국 가운데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는 10위대이지만 행복지수 순위는 33위다. 자살률은 1위이며 출산율은 최하위다. 경제 우선주의가 낳은 사회지표로서 자랑할 것이 없다. 원래 목표 설정 자체가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경제발전이 아니라 국가주의적 사고에 젖은 성장 제일주의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국가나 대기업이 잘되면 사회 구성원도 행복해질 것이라는 사고가 빚은 결과다. 경제성장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과연 대통령 후보나 참모들이 그러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후보들은 사회가 지향해야 할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아직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경제와 안보만을 반복해서 얘기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경제가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고, 안보를 위해 외교와 국방정책 그리고 남북관계 설정을 어떻게 하겠다고 주장하는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

ⓒ시사IN 조남진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 중 숨진 청년을 추모하는 메시지와 국화꽃이 승강장 주변을 가득 채웠다.

무조건적 경제 우선주의는 구태 정치의 반복일 뿐

외교·안보 정책과 남북관계, 복지, 환경과 같은 핵심적 정책에서 새로운 정치 지향점을 제시해야 한다. 무조건적 경제 우선주의는 구태 정치의 반복이고 ‘헬조선’이라는 자조는 계속될 것이다. 모든 문제를 돈과 연결해서 판단하는 물질 제일주의가 낳은 현상이 바로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적폐이다. 성공 제일주의, 물질 만능주의가 가져온 사회적 병리현상을 지난 수십 년간 보아왔다. 이제는 인간 중심의 사고, 다음 세대가 생존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도 생각하는 철학을 가진 정치를 하여야 한다.

새 대통령은 물질 가치를 앞세우는 속물 정치인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최우선에 두는 철학을 가진 사람들로 정부를 구성하여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활성화와 기후변화에 대비한다는 미명 아래 환경 파괴와 토건 중심의 경제정책을 시행하다가 강산을 오염시키고 떠났다. 박근혜 정부는 자신의 불통과 비선 실세 중심의 폐쇄적 정치를 하다가 파면당했다. 반면교사로 삼을 현재의 역사이다. 촛불집회에서 우리는 깨어 있는 시민만이 정부를 긴장시키고 민주주의의 역진을 막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다시는 반민주적 정치집단이 등장하지 않도록 시민들의 감시가 앞으로도 필요한 이유이다.

기자명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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