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37%’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사IN〉 대선 여론조사에서 양강 구도를 형성한 문재인 후보(더불어민주당)와 안철수 후보(국민의당)는 각각 37.5%와 37.2%를 얻었다. 오차범위 내의 접전이다. 같은 ‘37%’ 안에 담긴 다른 의미를 읽으면 여론이 판단하는 두 후보의 강점과 약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투표일까지 두 후보의 선거 전략도 여론 지형도에 따라 맞춰갈 가능성이 높다. 여론 지형도에 드러난 전략적 변수들을 풀어본다.

■ ‘적폐’ 전선은 안철수의 영토?

문재인 캠페인의 핵심 키워드는 ‘적폐 청산’이었다. 민주당 경선의 최대 전선은 ‘문재인의 적폐 청산 대 안희정의 대연정’이었다. 본선에서 문재인 캠프는 방향 전환을 시도했다고 하지만, 캠페인에도 관성이 작동한다. 문재인 캠프는 안철수 후보를 ‘적폐 연대’라고 불렀다. 전략이든 관성이든 적폐 키워드를 본선 무대까지 끌고 왔다.

적폐 전선은 문재인 후보를 고립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번 조사에서 〈시사IN〉은 “차기 대통령이 ‘적폐 청산’과 ‘국민 통합’ 중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둬야 한다고 보나?”라고 물었다. 응답자의 56.8%가 ‘국민 통합’의 손을 들어줬다. ‘적폐 청산’은 39.1%에 그쳤다(아래 〈표 1〉).
 

ⓒ시사IN 이명익


적폐 청산은 전형적인 ‘진영 내의 열광과 진영 외의 냉소’를 부르는 이슈로 고립되고 있다. 민주당 지지층만 따로 보면 적폐 청산 59.5%, 국민 통합 38.8%다. 민주당 경선에서 이 화두가 힘을 발휘했던 이유다. 그 결과 문재인 지지층에서도 적폐 청산 62.1%, 국민 통합 36.4%로 비슷한 추이가 나타난다. 하지만 경선의 관성이 본선을 집어삼키고 있는데, 문재인 후보의 방향 전환은 기민하지 않다.

문재인 캠프가 적폐 전선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이유는 있다. 안철수 지지층의 구성은 이질적이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 민주당 계열 지지층과, 마땅한 후보를 찾지 못한 보수층의 전략적 지지가 만난 위태로운 조합이다. 이 조합을 깨트릴 수 있다면 대선은 문재인 후보가 이긴다. 적폐 공세는 이질적인 안철수 지지층을 깨트릴 무기라는 가설도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여론 지형은 이 가설을 기각했다. 적폐 청산 자체가 민주당 진영 이슈로 고립되고 있고, 국민 통합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다수파들이 안철수 후보로 결집했다. 안철수 후보 지지층에서는 국민 통합 72.9%, 적폐 청산 23.5%다. 적폐 청산론이 먹혀들기 쉽지 않은 지형이다.

결정적으로, 적폐 청산론은 ‘밀어내는 이슈’다. 문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이 “내가 적폐란 말이냐”라고 반발하기 쉽다. 이질적인 안철수 지지 연합에 결집력을 더해주는 꼴이다. 물론 문재인 지지층의 결집력도 올려준다. 하지만 서로 결집력이 올라가는 방향으로 갈 경우 대선 결과는 예측할 수 없는 접전 양상이 지속될 수 있다.

문재인 후보 관점에서는, 안철수 지지층의 이질성이 부각될수록 승리가 가까워진다. 그리고 적폐 이슈가 부각될수록 안철수 지지층의 이질성은 가려진다. 이것은 마치 대북정책의 고전적인 ‘봉쇄론’ 대 ‘관여론’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적폐 청산론은 말하자면 ‘봉쇄론’이었다. 강한 압박으로 상대 진영이 허물어지도록 밀어붙이는 이슈다. 하지만 압박이 내부 결집을 강화하는 대북 봉쇄론의 딜레마가 고스란히 반복됐다. 안철수 지지층의 이질적 연합은 깨러 들어갈 때 결집하고 느슨하게 만들 때 풀어헤쳐진다. 봉쇄·긴장보다 침투·이완이 효과적이라는 햇볕정책의 접근법과 비슷하다. 적폐 청산론으로 전선을 크게 긋고 몰아치기보다는, 차라리 안철수 후보의 자격을 따져 묻는 검증 공세가 견고하지 않은 안철수 지지층을 이완시킬 가능성이 높다.

 

 

 

ⓒ시사IN 이명익

 


이렇게 보면 안철수 캠프도 할 일이 분명해진다. 문재인 후보와 문재인 캠프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적폐 청산론에 묶어놓아야 한다. 4월13일 대선 후보 초청 토론에서 안 후보는 문 후보에게 “저를 적폐 세력의 지지를 받는다고 비판했는데, (저를 지지하는) 국민 모독 아니냐”라고 말했다. 적폐론으로 두들겨 맞을수록 지지층 결집이 강화된다고 보면 안 후보로서는 이 전선을 계속 활성화해야 한다. 문 후보는 ‘적폐 정치세력’과 ‘일반 국민’을 구분하면서 응수했다. 정론일지는 몰라도 직관적이지는 않았다. 적폐 청산론이라는 전장 자체가 불리한 구도에 문 후보 자신을 가둔다.

■ 홍준표는 잊어라, 둘 다

두 캠프 모두,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변수는 없는 셈으로 치고 전략을 짜야 하는 구도다. 홍 후보의 선전은 문재인 후보에게는 호재다. 홍 후보가 두 자릿수 득표율만 기록해도 안 후보의 승리는 쉽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잘한 결정이라는 응답층은 전체 응답자 중 80.8%다. 이들의 대선 주자 지지율만 따로 떼어보면, 문재인 45%, 안철수 36%로 차이가 제법 난다. 만약 홍 후보가 탄핵이 잘못된 결정이라고 생각하는 응답자(전체 응답자 중 13.1%)를 대부분 표로 가져간다면, 이 45% 대 36% 격차를 메우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홍준표 후보의 선전 여부는 문재인 캠프가 개입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니라 홍 후보 자신에게 달려 있다. 문재인 캠프로서는 외부 변수에 기대어 전략을 세울 수는 없다. ‘탄핵이 잘못한 결정’이라고 응답한 13.1%의 대선 후보 지지율은 홍준표 40.6%, 안철수 41.1%로, 모름·무응답을 제외하면 거의 반반씩 가져간 상태다. 그 결과가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 7%다.

이 7%도 견고하지 않다. “반대하는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현재 지지 후보 외에 다른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홍 후보 지지자의 41.9%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지지층의 40% 이상이 전략 투표로 지지를 바꿀 의향이 있다는 것은 지지층 충성도가 낮다는 의미다. 그리고 홍 후보 지지층이 ‘당선을 막고 싶은 후보’는 문재인 후보일 가능성이 높다. 홍 후보 지지층의 추가 붕괴와 안 후보 지지율의 추가 상승 여력도 남아 있는 셈이다. 문재인 캠프는 ‘홍준표의 보수 표 잠식’을 상수보다는 불확실한 변수로 생각하고 일단 잊는 편이 낫다.

안철수 캠프는 홍준표 변수를 잊어야 할 이유가 더 확실하다. 적폐 청산론이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안 후보가 그 구도에 가둬지지 않기 때문이다. 안철수 지지층 중 40.8%는 ‘가장 대통령으로 적합하지 않은 후보’로 홍준표 후보를 꼽았다. 안 후보가 홍 후보 쪽으로 접근하는 순간, 지지층의 40%가 흔들릴 위험이 있다.

홍준표 지지층 7% 중에서도 전략 투표를 고려하는 41.9%는 구애가 아니라 압박에 반응한다. 굳이 과도한 구애를 하지 않아도, 문재인 대 안철수 양강 구도가 박빙으로 흐를수록 보수 표 추가 유입이 가능하다. 오히려 보수 표에 과도한 구애를 할수록 최대 위협 요소인 지지층의 이질성이 두드러질 위험이 있다. 압박의 성공 가능성은 양강 구도를 유지하는 데 달려 있다. 본격 시작된 검증 공세를 버티면서 투표일까지 끌고 가느냐가 관건이다.

■ ‘찍으러 나갈 이유’를 누가 먼저 줄까

비슷한 지지율이라도 현실에서는 투표 동기가 더 강한 쪽이 이긴다. 이번 대선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라고 답한 적극 투표층은 85.5%다. 적극 투표층만 따로 놓고 보면 대선 후보 지지율은 문재인 41.5% 대 안철수 38.1%로 전체 여론 대비 문 후보 쪽으로 기운다. 문재인 지지층이 ‘찍으러 나갈 이유’를 좀 더 강하게 느낀다는 징후다. 안철수 지지층의 높은 이질성은 ‘반(反)문재인’이라는 접착제로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다. 특정 후보에게 반대하는 전략 투표는 진심 투표보다 투표장에 갈 동기부여가 더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 선거에서는 나이가 많을수록 투표율이 크게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20대의 적극 투표 의향이 이례적으로 높다(81.2%). 각 세대의 적극 투표 의향은 최저 81.2%(20대)에서 최고 87.4%(40대)로 큰 차이가 없다. 60세 이상 세대가 눈에 띄게 높지도 않다(85.9%). 2040 세대와 5060 세대의 지지 성향이 각각 문재인 대 안철수로 갈린 세대 투표 현상이 뚜렷한 이번 대선에서 세대별 적극 투표 의사가 ‘평탄화’된 것은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는 후보에게 희소식이다.


정치권 인사들은 이번 대선을 박근혜 탄핵이라는 정치 이슈가 압도하는 대선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적폐 청산이냐, 국민 통합이냐’라는 전선도 거기서 파생됐다. 하지만 여론 지형은 여전히 고전적인 주제에 더 주목한다.

이번 대선에서 후보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무엇인지 물었다(위쪽 〈표 2〉). 응답자의 25.6%가 ‘경제성장과 일자리 문제의 해법이 있는 후보’를 꼽았다. ‘불평등을 줄이고 사회 안전망을 강화할 후보’를 꼽은 응답이 18.9%로 뒤를 이었다. 성장·일자리·불평등이라는 먹고사는 문제가 여전히 핵심 관심사였다. ‘국민 통합을 이뤄낼 후보’ 15%,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청산할 후보’ 14.2%, ‘투철한 안보관을 가진 후보’ 7.9%, ‘권력기관을 개혁할 후보’ 7.5% ‘한반도 평화와 남북 협력을 추진할 후보’ 3.8%였다. 전반적으로 경제 관련 이슈가 대내외 정치 이슈를 압도했다.

 

 

 

 

ⓒ사진공동취재단3월2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성장·일자리 이슈를 꼽은 응답층에서는 안철수 후보가 상대적 강세였다(안철수 지지 46.5% 문재인 지지 29.8%). 불평등·사회안전망 이슈를 꼽은 응답층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상대적 강세였다(문재인 지지 48.5%, 안철수 지지 28.8%). 먹고사는 문제에 뚜렷이 강세를 확보한 후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4월14일자 한국갤럽 조사를 봐도, 먹고사는 문제는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은 고지다. “경제 문제를 가장 잘 다룰 것 같은 후보”를 묻는 질문에는 문재인 26%, 안철수 29%, 없음·유보 29%였다. 없음·유보 응답이 상당히 높다. 각 후보 지지자들도 경제 문제가 나오면 확신이 크지 않다. 문재인 지지층에서 ‘문 후보가 경제 문제를 가장 잘 다룰 것’이라고 답한 응답은 61%, 안철수 지지층에서 ‘안 후보가 경제 문제를 가장 잘 다룰 것’이라고 답한 응답은 60%였다. 두 후보 지지자 중에서도 약 40%는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를 경제 문제의 최적임자로 꼽기 망설인다는 의미다.

‘박근혜 정권 심판’은 분노한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나갈 동기로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대선 구도가 ‘문재인 대 안철수 양강 구도’로 재편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되는 등 심판 이슈가 어느 정도 해소되고 있다. 다시 ‘찍으러 나갈 이유’를 놓고 경쟁이 벌어질 공간이 열렸다. 먹고사는 문제는 가장 근본적 과제인 동시에 가장 해법을 제시하기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 북한, 보수의 뜨거운 감자?

여론은 북한 문제 해법으로 제재와 교류 중 무엇을 선호할까. 거의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경향이 있다. 이번 조사에서도 ‘제재 강화’ 46.1%, ‘교류 강화’ 44.5%로 팽팽하게 나왔다(아래 〈표 3〉).

문재인 지지층은 비교적 갈등 요소가 적다. 문재인 지지자만 따로 보면 제재 강화 27.7%, 교류 강화 66.6%다. 그런데 안철수 지지층은 사정이 복잡하다. 제재 강화 57%, 교류 강화 34.7%로, 제재론에 기울어 있기는 하지만 교류론도 크기가 만만치 않다.

안철수 지지층의 이질성 문제는 북한 문제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지지층의 한 축을 이루는 보수층은 제재 강화 71.1%, 교류 강화 23.5%로, 확고한 제재파다. 그런데 또 다른 축인 호남은 제재 강화 36.1%, 교류 강화 57.7%로, 전국에서 교류 강화 지지세가 가장 높다. 교류 지지가 절반이 넘는 광역권은 호남밖에 없다. 두 축이 연합한 결과, 안철수 지지층은 대북 정책 노선에서 위태로운 이질성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보수·진보 양강 구도에서 안보 이슈는 진보 후보의 약세 전장으로 간주되곤 했다. 제재론과 교류론의 여론 기반은 비슷하다 하더라도, 안보 문제를 이유로 투표장에 가는 유권자는 보수가 더 많아서다. 하지만 2017년 대선의 독특한 양강 구도에서, 안보 이슈는 좀 더 복잡한 문법에 놓이게 되었다. 안보가 쟁점으로 떠오를 경우, 오히려 양강 중 보수에 더 가까운 후보가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지지층의 이질성 문제가 극적으로 드러나는 이슈인 데다가, 대북 정책의 특성상 중도적인 해법을 제시하기도 간단치 않다.

안철수 후보는 가능한 ‘왼쪽’의 표를 붙들어두면서, ‘오른쪽’ 표는 구애보다는 압박을 통해 당겨와야 하는 처지다. 그런데 대북 문제는 여론이 양자택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교류론으로 접근하는 순간 제재론 세력의 용인 범위를 넘어설 수 있다. 이러면 보수의 전략 투표는 작동하지 않고, 이질적 지지 연합은 해체될 수 있다.

안철수 캠프 관점으로 보면, 북한 문제가 지지층의 이질성을 끌어올릴 위험을 피해야 한다. 핵심 이슈로 떠오르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이슈에 따른 개별 대응을 이어가면서 전반적으로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드 배치 문제와 같은 각론에는 찬성으로 선회하면서 “대북 제재와 대화를 병행해 평화를 만든다는 궁극적인 목표가 중요하다”(4월13일 대선 후보 초청토론)는 식으로 전체 기조를 가져가고 있다. 안 후보의 지지층 구성을 고려하면 사실상 외길에 가깝다. 좌우 양쪽에서 끊임없이 추궁당할 길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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