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자본주의 새로운 시작〉
폴 메이슨 지음
안진이 옮김
더퀘스트 펴냄
영국 유력지 〈가디언〉은 이 책(〈포스트 자본주의 새로운 시작〉)의 저자 폴 메이슨을 “마르크스의 훌륭한 후계자”라고 불렀다. 일리 있는 평가다. 둘 다 자본주의의 영원함을 믿지 않는다. 사회체제에 대한 기술의 파괴력을 신봉한다. ‘낡은 세계’ 내부에서 움트는 ‘새로운 세계’의 씨앗을 찾아내어 다루는 솜씨도 닮았다. 노동가치론 역시 두 사람의 공약수다.

다만 ‘자본주의 이후 체제(포스트 자본주의)’에 대한 전망에서, 메이슨은 마르크스보다 훨씬 유리한 처지다. 1883년 타계한 마르크스로서는 이후 130여 년에 걸쳐 전개된 자본주의 역사를 알 수 없다. IT(정보기술)가 생산력과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지켜보지도 못했다. 메이슨에게 IT는 “자본주의가 낳았지만 자본주의를 해체하고 완전히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낼” 기술적 토대다.

IT는 이미 ‘상품의 세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물질적 재화(예컨대 항공기 엔진)의 생산과정을 혁명적으로 바꾼 것은 물론 정보재(예컨대 아이튠즈 음원)라는 형체 없는 상품을 일상으로 만들어놓았다. 정보재는 대단히 독특한 상품이다. 한계비용이 0원으로 수렴하고(아이튠즈에 저장된 노래를 아무리 많은 사람이 다운로드해도 애플의 관련 비용은 일정하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소비할 수 있다. 정보재에는 일반적 상품의 가장 기본적 성질인 희소성이 없다. 애플 같은 거대 IT 기업들은 파일에 암호를 걸거나 복제를 법적으로 막는 식으로 정보재의 희소성을 억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당랑거철(螳螂拒轍:수레에 맞서는 사마귀)일 뿐이다. 생산관계(자본주의)가 생산력(IT)의 발전에 질곡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혁명의 전주곡일까?

다만 메이슨이 제시하는 변혁은 프롤레타리아 폭력혁명이 아니다. 낡은 체제의 틈새와 구멍들 속에 나타나는 새로운 리듬을 포착하고 그 변화를 실천적으로 추동하는 것! 지형이 달라지면 새 길이 열린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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