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이야말로 지금, 여기의 작품이 더 재밌다. 이를테면 배삼식. 그의 작품을 만나지 않았으면 나는 아직까지도 이국의 말들에 갇혀 희곡의 기쁨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먼 데서 오는 여자〉는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에 대한 이야기다. 추모 시설은 혐오 시설이라는 이유로 부지 선정에만 몇 년이 걸렸고 그마저도 ‘추모공원’이라는 이름 대신 ‘시민안전테마파크’로 설립된 그것은 재난 공동체로서 우리의 부끄러운 현재다. 작품은 참사에서 딸을 잃은 부부가 기억과 애도를 위해 겪어야 했던 수모와 모욕을 재현하는데, 그 떨림과 음색과 대사는 그 자체로 우리 사회가 잊지 말아야 할 소리다.
〈3월의 눈〉은 노부부의 애틋하고 애잔한 대화다. 생의 끝에 다다른 부부가 나누는 그리움과 회한의 말들이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흩어지고 이지러질 때, 그 서글픈 적막의 순간에서 인생의 진실을 본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이 모든 ‘말’들의 향연! 그것은 분명 만인의 작품인 ‘고전’은 줄 수 없는 내밀한 기쁨이자 감동의 완전체다. 지금, 여기가 더 재밌는 게 희곡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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