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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은 ‘콜라남’이라고 불릴까?

2017년 04월 28일(금) 제501호
이민경 (작가)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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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SNS를 켜니 생소한 듯 생소하지 않은 단어 하나가 화제였다. ‘안경 몰카.’ 한 걸그룹 멤버가 자신의 팬 사인회를 찾은 남성 팬의 안경을 벗게끔 유도했다. 해당 남성은 몰래카메라 기능이 있는 안경을 쓰고 팬 사인회를 찾았는데, 걸그룹 멤버가 그걸 잡아냈다. 나는 솔직히 ‘안경 몰카’ 사건 전만 해도 그가 속한 걸그룹을 알지 못했다.

나는 이번엔 볼펜·단추·리모컨같이 온갖 물건으로 위장한 몰래카메라에 딱히 분노하지 않았다. 대신 그 짧은 순간에 안경 몰카를 알아채고, 그러고도 화내거나 얼어붙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법을 익힌 그 걸그룹 멤버의 삶을 잠시 상상했다.

꿈, 열정, 재능이라는 말이 자주 따라붙는 직업일수록 일이 일로 인정받기 어렵다. 게다가 사랑까지 받는 직업일 때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도 엄연히 노동은 노동이다. 걸그룹과 노동권이라는 말을 나란히 놓자니 영 어색하다. ‘피나는 노력’ ‘부상투혼’ ‘남심저격’ 같은 말이 더 어울린다. 그렇다면 걸그룹 멤버는 과연 안전하게 일하고 있을까. 여성이라는 점에서 나와 같고, 얼굴이 널리 알려졌다는 점에서 가장 크게 다른, 그들의 삶을 안전과 연관 지어 생각해본 건 처음이었다.

ⓒ정켈 그림

때마침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하나 왔다. ‘도서관에서 웬 놈이 여자들한테 콜라를 뿌렸다더라’는 내용이었다. 경찰에 입건된 남성은 도서관뿐 아니라 캠퍼스 여기저기서 여성들에게 물과 콜라를 뿌렸고, 그 이유를 “여학생들이 공부는 안 하고 밖으로 돌아다녀서 기분이 나빴다”라고 밝혔다. 강남역, 자취방, 도서관에 이르기까지 익숙한 공간에서 안전한 감각이 한번 깨지는 사건이 생기면 그 뒤로는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을 염두에 두고, 대비하지 않았던 것을 대비해야 했다. 늘 두려움을 동반하지는 않더라도 항상 피곤하다. 게다가 그 사건이 다른 성별의 삶에 변화를 불러오지 않는다면 엄청나게 부당한 일이다. 이번에 나는 두렵지는 않았다. 대신 쓸데없는 게 궁금했다. 저 사람은 ‘콜라남’이라고 불릴까?

늦은 저녁을 먹는데 단체 카카오톡 방에 사진이 하나 올라왔다. 강아지를 찾는 전단인데, 한 번 보고는 왜 올라왔는지 몰랐다가 두 번째 보고서야 알았다. 강아지의 특징을 애타게 설명하는 문구 사이에 이런 문장이 끼어 있었다. ‘남자친구가 화나서 유기시킴.’ 이번에는 화가 났다. 그러나 오래가지는 않았다. 여기까지, 전부 두 시간 안에 일어난 일이다.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니다”라는 시시한 이야기


안경, 콜라, 강아지. 이는 곧 몰래카메라, 여성 대상 범죄, 데이트 폭력이다. ‘이제 더 놀라운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예상을 매일같이 가볍게 뛰어넘으며 내 안에 쌓이는 이야기들은, 이보다 더 신속 정확할 수 없을 만큼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럴수록 새로운 사례가 쌓일 때, 분노가 나를 한 번씩 건너뛰거나 그리 오래가지 않는 일이 늘어난다. 그런데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니다”라는 시시한 말에 왠지 점점 더 차갑게 분노하게 된다. 이 세 가지 일만 해도 일반화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개별적 사건이라는 말들이 벌써 수없이 따라붙었다. 그랬다면 좋겠지만 나는 이 알고 싶지 않은 일들을 오늘 처음 알지 않았다. 더 무너질 게 남았나 싶은 순간에마저 끊임없이 깨졌던 안전함에 대한 감각과 맞바꿔 쌓아 올린, 우리의 무수한 일화가 만든 이 단단한 기시감. 이를 ‘없는 것’으로 만드는 일만은 두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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