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벽지는 큰 도화지에 불과하다. 영감은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데, 그림 그릴 곳을 찾아 헤매는 건 두 꼬마 예술가에게 시간낭비일 뿐이다. 엄마의 잔소리를 피하려면 자기가 한 짓이 아니라고 발뺌을 해도 모자랄 판에, 이 대범한 꼬마 예술가들은 벽지에 그린 그림에 자신의 사인을 남기기도 한다. 훗날 누구의 예술작품인지 가려내기 위해서다. 또 엄마의 잔소리보다 자신의 예술작품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대체 누가 이 꼬마 예술가들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랑받고 있어!〉의 주인공은 페이페이와 마오롱롱 자매다. 타이완의 그림책 작가 린샤오베이는 주인공 자매를 자신의 조카들에게서 착안했다고 한다. 페이페이와 마오롱롱 자매는 꼬마 예술가들이다. 언니 페이페이는 늘 품고 다니는 스케치북에 자기만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동생 마오롱롱은 그런 언니를 동경하면서 동시에 경쟁 상대로 삼는다. 또 자매는 기꺼이 서로의 페르소나가 되어주기도 한다. 동생은 자신의 풍성한 버섯머리를 언니의 서툰 가위질에 맡기고, 언니는 미술학원의 아그리파처럼 동생의 그림 모델이 되어주면서 말이다.

어린 자매에게 바깥세상은 때때로 위협적이다. 창밖으로 휘날리는 커튼도, 길가의 쓰레기봉투도 무시무시해 보인다. 하지만 함께 손을 잡고 걸으면 무엇이든 재밌는 모험이 된다. 평범한 공원의 풍경도 자매의 스케치북 안에서 새로운 그림과 이야기로 다시 태어난다. 동생이 손가락을 다쳐서 언니가 밴드 위에 웃는 얼굴을 그려주자 신기하게도 동생의 손가락은 더 이상 아프지 않다. 가끔씩 언니는 동생이 귀찮고, 동생은 언니가 짓궂게 느껴질 법도 한데, 자매는 서로의 예술적 영감을 공유하며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사랑받고 있어!〉 린샤오베이 지음, 조은 옮김, 문학동네 펴냄
어린 시절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가 아무 데나 낙서를 하면 잔소리부터 늘어놓는다. 바닥에 흩어진 색종이 조각을 보면 청소 생각에 골치가 아프다. 하지만 아이가 잠이 들면 몰래 아이의 예술작품들을 훔쳐보며 혼자 웃는다.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팔불출처럼 자랑을 하기도 한다. 결국 어른이 되었다고 달라지거나 잊은 것은 아니었다. ‘모든 아이들은 예술가’라는 사실 말이다.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를 포장하면 포장할수록 어려워지고, 어려워질수록 포기하거나 굴복하게 된다. 아이들은 아직 포장을 할 줄 모른다. 그들에게는 금기도, 한계도 없다. 그저 자신이 보이는 대로 혹은 느끼는 대로 이야기할 뿐이다. 어쩌면 예술은 어른들에게만 어려운 것이 아닐까.

“너흰 감동을 줬어, 잘 그려주고 말겠어!”

언니 페이페이가 어느 날 생각한다. 자신의 그림이 어딘가 부족하다고 말이다. 위대한 화가들의 작품에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남긴 채, 동생 마오롱롱과 강아지 ‘노트’를 억지로 떼놓고 집 밖을 나선다. 자신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들을 무작정 찾아 헤맨다. 꼬마 예술가에게는 작은 개미도, 나비가 되려는 애벌레도, 아기 새에게 먹이를 물어다주는 어미 새도 모두 감동적이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어쩔 줄 몰라 하던 페이페이 앞에 나타난 것은 바로 우산을 든 동생 마오롱롱과 노트였다. 페이페이는 마오롱롱과 노트에게 울먹이며 말한다.

“마오롱롱, 노트, 고마워! 나한테 꼭 필요한 감동을 줬어. 너네 둘을 아주아주 잘 그려주고 말겠어!”

기자명 송아람 (만화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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