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후보 시절 시리아 내전 등 해외 분쟁에 미국이 관여하지 않겠다는 ‘미국 우선주의’ 공약을 발표했다. 대외 문제에 불개입·불간섭을 선호하는 ‘트럼프 독트린’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4월6일 시리아 공군기지 공격을 통해 중동의 대표적 난제인 시리아 내전에 불쑥 뛰어들었다. ‘트럼프 독트린’이 뿌리째 흔들리게 되었다는 의미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공격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도 있다. 미국의 동맹과 우방을 포함한 전 세계 많은 나라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고립주의를 내심 우려해왔다. 그러나 이번 시리아 공격으로 그런 우려가 조금 해소됐다는 것이다. 영국 런던 소재 유럽개혁연구소의 찰스 그랜트 소장은 〈뉴욕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많은 유럽인들이 걱정한 만큼 트럼프가 고립주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라고 말했다. 공화당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트럼프가 미국의 지도력이 갖는 중대함을 이해하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리아 공격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외 개입 반대론자인 극우 인사 스티브 배넌 백악관 고문을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전격 배제한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AP Photo4월4일(현지 시각) 시리아 정부군 소속으로 추정되는 전투기의 공습에 쌍둥이를 잃은 한 아버지가 침통해하고 있다.

하지만 대외 분쟁 불개입 원칙을 고수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갑작스레 태도를 바꾼 데 대한 불안감과 우려도 적지 않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NSC 서구 담당국장을 지낸 마크 파이어스타인은 AP 통신과 인터뷰하면서 “트럼프가 어떤 통일적 이념이나 구상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있어 이번 시리아 공격만으로 미국의 대외정책 방향을 파악하기는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이른바 트럼프 독트린이라는 이념적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평가하지만 확고한 원칙 없는 유연성이 오히려 불안감을 키운다는 뜻이다.

미국 대외정책의 키워드는 ‘유연성’

시리아 내전은 알아사드 독재정권에 맞서 여러 반정부 세력이 2011년 3월 ‘아랍의 봄’을 기점으로 본격 무장저항에 나서면서 발발했다. 지금까지 내전에서 40만여 명이 사망하고 480만여 명이 난민으로 전락했다. 설상가상으로 내전 초기부터 러시아가 시리아 정부를 적극 지원하면서, 시리아 내전은 러시아의 협조가 없으면 해결이 불가능한 국제분쟁으로 번졌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3년 8월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으로 14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하자, 시리아에 대한 군사 공격을 막판까지 고심하다 철회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결국 군사 공격 대신 오바마 행정부는 러시아를 끌어들여 ‘시리아 정부의 자진 화학무기 철거’라는 합의를 끌어내는 것으로 만족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3년 당시 오바마 행정부에 “(시리아 정부에 대한) 응징 공격을 하지 말라”고 촉구했던 장본인이다. 대선 후보 시절에는 시리아 내전을 미국이 절대 피해야 할 ‘수렁’이라고 지목했다. 대신 시리아 내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최우선 목표로 삼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던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공격 결정으로 지지자는 물론 다른 나라 정부들까지 혼란에 빠뜨린 것이다.

ⓒU.S. Navy4월6일(현지 시각) 지중해 동쪽 해상에 있는 미 해군 소속 구축함 포터함이 시리아의 알샤이라트 공군기지 공격을 목표로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이날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 59발이 발사됐다.

정작 트럼프 대통령 자신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그는 시리아 공격 직후 “우리의 가치와 목표에 따른 결정이다. …완고한 이념의 길(이른바 ‘트럼프 독트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을 단호히 거부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스스로를 아주 유연한 사람으로 생각한다”라며, 향후 미국 대외정책의 키워드로 ‘유연성(flexibility)’을 제시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시리아 내전 불개입을 주창하던 그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이다.

외교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성이다. 오바마 행정부 2기 당시 국방부 부차관을 지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 캐서린 힉스는 〈뉴욕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외교정책에는 아직 독트린이라고 할 만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분명히 드러나는 대외정책의 특성들은 하나같이 트럼프의 기질과 일치한다. 예측 불가능하고, 본능적이며, 미숙하다”라고 꼬집었다.

이런 난맥상은 트럼프 행정부 외교안보 참모들 간의 이견을 통해 드러나기도 한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4월9일 CBS 방송에 출연해 “시리아 정책에서 우리의 우선순위는 여전히 IS 격퇴다”라고 말했다. IS를 제거한 뒤 휴전 및 선거(바샤르 알아사드를 포함)를 통해 시리아 국민이 시리아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반면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대사는 같은 날 CNN에 나가 “알아사드 대통령을 권좌에 두고서는 정치적 해결이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틸러슨과 달리 알아사드를 먼저 제거해야 한다는 말이다. 허버트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같은 날 〈폭스 뉴스〉에 출연해서 틸러슨과 헤일리의 중간 지점에 해당될 만한 발언을 남겼다. ‘IS를 우선적으로 격퇴해야 하지만, 알아사드 정권에 대한 추가적 군사조치도 가능하다’ 정도로 요약된다. 이와 관련,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최고위 외교안보 참모진 간의 불협화음은 혼돈스러운 트럼프의 결정 과정에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결과다”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EPA향후 미·러 관계도 주목된다. 4월12일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러시아를
방문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과 양자회담을 하고 있다.

결국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시리아 내전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불쑥 시리아를 공격한 기세를 감안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 교체 등 지속적인 개입을 염두에 둔 것 같다. 그러나 지상군 투입 등으로 알아사드 정권을 전복시킬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번 시리아 공격은 트럼프 행정부가 확전을 염두에 두었다기보다 알아사드 정권에 강력히 경고하는 의미가 담긴 제한전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로이터 통신의 피터 앱스 국제문제 칼럼니스트는 4월10일자 논평에서 “이번 시리아 공격의 메시지는 북한, 그리고 북한의 주된 지원국인 중국을 향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군사적 위협을 통해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자국의 핵 및 미사일 개발을 멈추거나 지연시키길 바란다”라고 주장했다.

향후 미·러 관계의 향방도 중대한 관심거리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은 물론이고 취임 후에도 미·러 관계를 개선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온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을 공격해버린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러시아가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 증거를 은폐했다”라고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문제로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세르게이 라바로프 외무장관을 만났지만 “양국의 신뢰 수준이 낮다”라며 현격한 이견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전 대통령의 대외정책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는 시리아 공격 직전 요르단의 압둘라 국왕을 접견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행정부로부터) ‘엉망진창(mess)’을 물려받았다”라고 투덜거린 바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중동 및 북한 정책을 비난한 것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제2의 이라크 사태를 우려해 시리아 내전에 대한 군사 개입에 신중한 편이었다.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난 오바마가 아냐(I’m not Obama)’란 기조가 시리아에 대한 공격은 물론 여러 복잡한 외교정책 현안에 대한 트럼프의 대응을 이해하는 데 핵심 열쇠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향후 미국의 대외정책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는 대외 문제 불개입 기조의 ‘트럼프 독트린’이 아니라, 트럼프 특유의 ‘유연성’과 ‘난 오바마가 아냐’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한 유연성은 이번 시리아 전격 공격 결정에서 나타난 것처럼 그의 예측 불가능한 기질과도 일맥상통하고, 이는 결국 트럼프 대외정책 방향의 정확한 예측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위험하다”는 게 CSIS 힉스 부소장의 지적이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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