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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의 국가보안법 ‘왕실모독죄’

2017년 04월 25일(화) 제501호
방콕·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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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왕실 호위 법규를 가지고 있다. 왕실모독죄로 수많은 타이인과 외국인이 기소되거나 수감되었다. 타이 국내 언론이나 외신도 예외가 없다.

‘살아 있는 부처’라 불리던 왕이 있었다. 지난해 10월13일 사망한 타이(태국) 국왕 푸미폰 아둔야뎃(라마 9세)이다. 입헌군주제인 타이에서 그는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타이의 수도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 내리자마자 푸미폰 국왕의 거대한 초상화와 애도를 표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건물마다 국왕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필자가 묵었던 호텔 로비에도 꽃으로 장식된 분향소가 있었다. ‘국왕은 어떤 분이셨느냐’고 물으면 방콕 시민 누구나 눈물을 흘리며 그의 업적을 술술 말한다. 거리에는 상복의 물결이 넘실댔다. 대형 쇼핑센터에는 검은 옷이 즐비했다. 어떤 이는 평생 볼 상복을 타이에서 다 보았다고 할 정도였다. 국왕이 서거한 뒤 1년 동안, 올해 10월까지 애도 기간이다.

국왕이 죽고 나서 50일 만에 왕세자가 즉위했다. 푸미폰 전 타이 국왕의 외동아들 마하 와치랄롱꼰(64)이다. 지난 1972년 후계자로 지명된 그는 44년 만에 왕좌에 올랐다. 짜끄리 왕조의 열 번째 왕, 라마 10세이다. 새로 즉위한 와치랄롱꼰 국왕에게는 구설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여성 편력으로 유명하다. 세 차례나 결혼했고 모두 이혼했다. 1977년 외사촌 소암사윌리 키티야카라와 첫 결혼을 했지만 배우 출신 유바디다 뽄프라세르스와 바람을 피우다가 소송 끝에 1993년 이혼했다. 이듬해 유바디다와 재혼했지만 2년 만에 그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영국으로 떠났다. 2001년 평민 출신 비서 스리라스미 수와디와 세 번째 결혼을 했지만 이마저 파국을 맞았다. 더구나 2014년 스리라스미는 친척들의 비리 의혹이 터져 왕족 칭호까지 박탈당하고 이혼해야 했다.

ⓒEPA
지난해 10월14일 방콕 시민들이 푸미폰 아둔야뎃 타이 국왕의 운구를 기다리며 그의 초상화가 새겨진 지폐를 들어 보이고 있다.

현재 국왕은 부왕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이다. 2009년 폭로 전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동영상은 전 국민을 기함하게 만들었다. 셋째 부인 스리라스미 왕세자비가 속옷 하의만 입고 왕자의 생일을 축하하는 외설적인 장면이었다. 이 동영상에서 왕세자비는 여러 신하와 함께 나체로 바닥에 엎드린 채 애완견과 함께 케이크를 먹는다. 지난해에는 와치랄롱꼰이 독일 방문 때 비행기 트랩에 오르며 입었던 의상 탓에 시끄러웠다. 독일의 타블로이드 신문 <빌트>는 와치랄롱꼰이 상반신을 훤히 드러낸 상의와 청바지 차림으로 독일 공항에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나가자 타이 왕실이 발칵 뒤집혔다. 타이 경찰은 사진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기사로 엉뚱한 곳에 불똥이 튀었다. 난데없이 방콕에 사는 한 가족이 경찰에 연행된 것이다. 노파완이라는 여성과 세 살배기 아들, 그리고 그녀의 친정아버지였다. 그들은 8시간 가까이 조사를 받았다. 죄목은 왕실모독죄. 홍콩에서 활동 중인 프리랜서 언론인 앤드루 맥그리거 마셜이 노파완의 남편이란 것 말고는 연행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마셜 기자가 SNS에 올린 와치랄롱꼰 왕세자의 사진이 독일 <빌트>지에 게재되었기 때문이다. 마셜 기자는 타이 정부와 악연이 있었다. 로이터 통신 아시아 특파원으로 일하다 2011년 프리랜서로 전환한 마셜은, 타이 군부의 2014년 쿠데타 이후 꾸준히 왕실과 군부를 비판해 타이 입국이 금지된 상황이었다. 타이 정부는 마셜 기자를 겁주기 위해 오랜만에 친정을 찾은 그의 아내와 아들, 장인을 왕실모독죄 혐의로 연행한 것이다. 타이에서 왕과 왕비, 왕세자와 섭정자 등 왕실 구성원은 물론 왕가의 업적을 모독하는 경우 최고 15년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이 법이 바로 형법 제112조 왕실모독죄이다.

타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왕실 호위 법규를 가지고 있다. 타이 국민은 와치랄롱꼰 국왕의 온갖 스캔들을 공개 석상에서 입에 담을 수 없다. 그동안 왕실모독죄로 수많은 타이인과 외국인이 기소되거나 수감되었다. 2011년 타이 내에서 금서가 된 푸미폰 국왕의 전기를 번역해 인터넷에 게재한 혐의로 미국인 조 고든은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또 푸미폰 국왕을 비방하는 문자 메시지를 발송한 60대 타이인은 국왕모독죄 15년, 거짓정보 유포죄 5년 등 총 2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광범위한 검열과 단속


타이 국내 언론이나 외신도 예외가 없다. 당연히 왕실 관련 기사는 미담 일색이다. 하지만 2008년부터 영국 BBC와 <가디언> <이코노미스트>가 금기를 깨기 시작했다. 타이 정부는 2008년 BBC 방콕 통신원 조너선 헤드를 왕실모독죄로 고발했지만 외신의 입을 틀어막는 데는 힘겨워한다. <이코노미스트>는 2006년 쿠데타와 반정부 단체인 국민민주주의연대(PAD) 시위의 배후에 푸미폰과 왕실이 있다며 ‘왕과 그들’과 ‘타이 왕과 타이의 위기’라는 커버스토리 기사를 냈다. 물론 이 기사는 타이 내에서 배포되지 않았다. 정부가 사력을 다해 막았기 때문이다.

ⓒEPA
왕실을 비판한 영국인 저널리스트 앤드루 맥그리거 마셜의 아내인 노파완 씨(맨 왼쪽).

오프라인뿐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서도 광범위한 검열과 단속이 이어졌다. 2009년 타이 정부는 2300여 개 웹사이트의 접속을 차단한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1300여 건이 왕실 모독 관련이다. 타이 정부는 푸미폰 국왕 서거 후 SNS에 국왕과 왕실을 비판하는 게시물이 등장하자, 검색 업체 구글과 페이스북, 라인 등 SNS 업체에 왕실 모독 게시물 감시 및 삭제를 요구했다. 해당 회사들은 타이 정부에 꼬리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뿐 아니라 군 당국도 전담 감시 인력을 풀가동하고 있다. 국왕 서거 후 최근까지 왕실 모독 사건 25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돼 10명이 기소되었다. 타이 정부는 외국에 거주하는 왕실 모독 용의자까지 20여 명을 색출해 해당 국가에 추방 조처를 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유엔은 왕실모독죄를 폐지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타이 정부에 촉구했다. 유엔 발표는 지난해 12월 페이스북에 와치랄롱꼰 새 국왕에 관한 BBC 온라인 뉴스의 기사를 공유한 자투팟 분팟타라락사가 새 국왕 즉위 이후 최초로 왕실모독죄로 기소된 사건이 발단이었다. 자투팟은 여전히 수감 중이다. 지난 2월 ‘표현의 자유 특별조사위원’ 데이비드 케이는 “타이의 왕실모독죄는 국제 인권법과 합치하지 않는다. 공인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형벌을 가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이는 비판적 발언을 억제하는 정치적 도구다”라고 비난했다.

그의 지적처럼 왕실모독죄는 우리나라 국가보안법처럼 정적을 제거하는 데 악용되기도 한다. 2014년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군사정권은 수많은 사람에게 왕실모독죄를 적용했다. 구체적 규정이 없어서 군사정권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악용하기 딱 좋다. 왕실모독죄 폐지를 주장해온 쏨킷 릇파이툰 전 교수는 “2014년 쿠데타 이후 왕실모독죄로 한 달에 세 명꼴로 잡혀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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