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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밥 먹여주는 시대

2017년 04월 19일(수) 제501호
김은남 기자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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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교육 걱정 없는 초등사용설명서④ 독서교육

사교육 걱정 없는 초등사용설명서
제1강(3월14일) 구본창 아깝다 학원비-학원 상품 분별 능력 기르기
제2강(3월21일) 최수일 초등수학 완전정복-수포자 예방을 위한 재미있는 수학공부
제3강(3월28일) 김승현 초등영어 완전정복-영어, 이젠 이렇게 하세요
제4강(4월4일) 백화현 초등독서 완전정복-독서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독서가 가능해진다
제5강(4월11일) 김형태 초등학생을 위한 스마트폰 리얼스토리
제6강(4월12일) 윤다옥 멀지 않은 사춘기, 우리 아이 발단단계와 관계 맺기
제7강(4월25일) 윤지희 사교육 걱정 없이 우리 아이 키우기



아이가 책을 많이 읽고 자라면 좋겠다는 건 웬만한 부모들의 바람이다. 그러나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 내지 중학생이 됐는데도 독서를 권하는 부모는 드물다. 당장 눈앞에 닥친 시험에 우선비중을 두게 되는 것이다.
이게 정말 아이를 위한 길일까. ‘사교육 걱정 없는 초등사용설명서’ 네 번째 강사로 나선 백화현씨는 독서가 이미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가 됐다고 잘라말한다. 독서야말로 존재의 뿌리를 튼튼하게 해줄뿐더러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힘이라는 것이다. 교사에서 독서운동가로 변신한 그의 강의를 지상중계한다.

교사 출신 독서운동가인 백화현씨는 독서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나아가 독서교육은 개인이 아닌 국가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백화현(독서운동가, <책으로 크는 아이들> 저자)

나는 독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이며,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생각한다. 사실 초등학교 때는 웬만한 아이들이 거의 다 책을 읽는다. 부모님도 그걸 권장한다. 그러나 중학교에 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당장 독서보다는 코앞에 닥친 시험을 걱정하게 돼 있다. 우리의 수업이나 평가 시스템 자체가 독서를 못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독서를 멀리한 채 학원 뺑뺑이를 도는 게 과연 아이를 위한 길일까? 단순히 독서가 아이 인성에 도움이 되고 안 되고를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독서는 앞으로 아이가 먹고 사는 문제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게 오늘 내가 강조하고픈 얘기다.

먼저 ‘왜 독서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내게 독서는 무엇보다 존재의 뿌리를 튼튼하게 해주는 행위다. 독서 하면 책을 읽는 행위만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데 제대로 된 독서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토론을 하는 일련의 행위를 통해 완성된다. 이렇게 읽고 쓰고 토론하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

주변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앞만 보고 달려간다. 돈과 명예, 그리고 지위를 향해 정신없이 질주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누군지, 왜 사는지, 이 세상은 무엇이고 또 내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지,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왜 학교·학원을 다니는지, 대학은 왜 가야 하는지 질문을 던질 틈도 없이 숨가쁘게 살아간다. 그러나 이럴 때 책을 읽으면 나보다 앞서 훨씬 깊이 고민하다 간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의 고민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뭔가 잡히는 게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존재의 뿌리는 결국 자존감이 튼튼할 때 탄탄해진다. 그렇다면 자존감은 언제 어떻게 탄탄해질까. 자기를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때다. 생각해 보시라. 남편이 날마다 친구 와이프 음식 솜씨며 옷 맵시를 칭찬하면, 시어머니가 날마다 이웃집 며느리와 나를 비교하면 좋으시겠나.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때 자부심이 생기고 행복해지면서 살 맛이 나는 존재다.

물론 남이 나를 인정해 준다고 모든 게 해소되는 건 아닐 것이다. 철이 들고 나면 스스로 삶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 답을 스스로 찾고 나면 남들이 뭐라 해도 나만의 철학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가면서 자존감이 충만해진다. 이를 도와주는 것 또한 독서다. 삶의 이유를 찾고, 삶의 철학을 갖도록 돕는다.

산은 산이고, 아이는 아이일 뿐

내 경우에도 책이 준 가장 큰 미덕은 내 중심을 탄탄하게 잡게 해줬던 점이었다. 우리 큰아이는 공부를 못했다. 처음에는 그걸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다. 우리반 아이들이 공부를 못할 때면 “괜찮아, 공부 못한다고 기죽을 것 없어. 사람은 누구나 다른 존재고 각자 잘하는 게 있어”라고 격려하던 나였지만, 막상 내아이가 공부를 못하게 되니 잠이 오질 않았다. 도대체 얘는 왜 이럴까 싶으면서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런 데 대한 답을 독서를 통해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은 백인백색이라 아이들에게 말해 왔던 게 진짜 내 생각이었을까? 혹시나 남의 생각을 내 생각인 양 착각하고 살았던 건 아닐까?’ 묻고 또 물으면서 내 철학을 찾아갈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찾은 해답은 ‘아이는 내가 아니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내 입장이 아닌 아이 입장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연습을 하면서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은 병법에서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키울 때도 너를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 나만 알고 고집하면 아무 것도 안된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아이는 아이일 뿐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부모님들께도 이제는 자신있게 말씀드리고 싶다. 어찌 보면 아이를 키우는 일은 아주 쉽다. 나를 버리면 된다. 오직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시라.  

나아가 독서는 스스로 배울 수 있는 힘을 주며, 더 나은 사회를 꿈꾸게 한다. 내가 몰랐던 걸 책을 통해 습득하게 되는데다 이 세상의 구조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열심히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사회 구조 차원에서 문제를 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아가 더 나은 사회를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이를테면 오늘날 부모들이 아이를 학원으로 내모는 건 결국 ‘밥 문제’ 곧 생존 문제 때문일 것이다. 하루 종일 학교·학원을 뺑뺑이 도는 식으로 공부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알고, 그런 아이가 불쌍하다고도 생각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가 공부를 잘하기 힘들테니까, 나아가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좋은 대학에 가거나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도 힘들테니까 아이 등을 떠미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달라진 시대의 밥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독서라고. 나는 산업화 시대 한복판을 살아온 사람이다. 고등학교 때 잠깐 존재론적인 고민에 빠져 방황했지만 고3때 어머니가 쓰러지시는 것을 보고 다시 마음을 다잡아 재수를 한 결과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고 임용고시를 통과해 교사가 될 수 있었다. 그때는 교과서와 문제집만 열심히 풀고도 대학에 갈 수 있었으니까.          

ⓒ시사IN 자료
독서는 아이의 인성뿐 아니라 미래의 ‘밥’ 문제도 해결해 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창의성과 소통능력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산업화 시대는 그런 시대였다. 윗사람 또는 시험관이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이해력이 있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인내심과 성실함, 책임감만 있다면 큰 걱정없이 먹고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상징되는 지식 정보화 시대다. 사람들의 취향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왜 그런지,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끊임없이 변화에 맞춰가야 한다.

그러려면 지식정보가 토대가 돼야 한다. 창조라는 게 무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독서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거다. 독서는 읽기 능력뿐 아니라 창의성과 평생학습 능력을 길러주고, 타인과 협력할 수 있는 힘도 키워주니까. 지식 정보화 시대야말로 ‘읽기의 시대’이자 ‘창의성의 시대’ ‘평생학습의 시대’, 나아가 ‘협력의 시대’라 하지 않나.

독서는 개인이 아닌 국가의 문제

그렇다면 지식 정보화 시대에는 독서야말로 밥과 인성 두 가지를 가질 수 있게 해줄 수단이다. 독서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라고 내가 주장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이걸 개인에게만 맡겨두면? 자연스럽게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난다. 좋은 독서 환경을 갖춘 데서 자란 아이들과 달리 책이 읽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점점 더 책에서 멀어지면서 불평등이 심화되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게 또 밥의 문제로 이어지게 돼 있다.   

그런데도 다들 시대가 달라졌다는 걸 뼛속 깊이 인지하지는 못하시는 것 같다. 지식 정보화 시대 내지 4차 산업혁명의 의미를 제대로 안다면 정부나 지도자들이 학교를 지금 같은 시스템으로 유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찌감치 이것부터 부숴놨을 것이다. 부모들 또한 하루 빨리 수능부터 폐지하라고 다 데모하고 일어났을 것이다.

내가 이런 얘기를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다양한 선진국을 돌아다니며 교육이 실제로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눈으로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미국에 드와이트학교라는 데가 있다. 상류층이 밀집해 있다는 뉴저지주 잉글우드 지역 사립학교다. 그런데 이 학교의 경우 초등학교 1,2학년에는 사서교사와 함께하는 수업이 일주일에 한 시간씩 의무적으로 배치돼 있었다. 이 시간이면 주로 사서교사가 책을 읽어주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이 수업을 참관하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책을 다 읽어준 뒤 아이들에게 소감을 말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한국 같으면 이 시간에 교사가 일정하게 개입을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흥부전>을 기껏 읽어줬는데 아이들이 “놀부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돼야 해요” “흥부처럼 아이를 막 낳으면 안될 것 같아요” 이런 말을 하면 곤란하지 않나? 그런데 드와이트학교 사서는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하건 “톰은 그렇게 생각하는군요” “제인은 그렇게 생각하는군요”라는 식으로 다 받아줬다. 우리나라 교사들처럼 객관적인 코멘트는 전혀 하지 않았다.
 
왜 그랬냐고 수업이 끝난 뒤 물었더니 사서 왈, 이 수업의 목표는 ‘아이들에게 책의 재미를 온몸에 심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책이 재미있어야지 스스로 읽게 되고, 평생 읽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 그런가? 정답을 잘 맞추는 아이는 늘 칭찬을 받고, 엉뚱한 대답을 하는 아이는 “다시 생각해 보렴” 하는 얘기를 듣게 된다. 그러다 보니 책이 재미가 아닌 긴장 내지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 학교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이 되면 도서관에서 검색하는 방법을 기본적으로 가르치면서 모둠별로 독서·토론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교과서가 있기는 하지만 교사들이 교과서로 수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대신 도서관에 있는 책이나 인터넷에 있는 정보들을 검색하면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간다는 것이다.

중고등학생이 되면 훨씬 더 넓은 도서관으로 옮겨가 수업을 받게 되는데, 도서관 내에 작은 모임방이 여러 개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 자기 모둠끼리 시끌벅적 토론한 내용을 벌인 다음 수업시간에 이를 발표와 리포트로 이어가고, 교사들은 이를 평가하고 있었다. 당연히 ‘1번’ 또는 ‘4번’처럼 사지선다형이나 똑같은 답을 요구하는 일은 없었다.    
핀란드는 미국보다 훨씬 더 훌륭했다. 돈 많은 사람들이 몇 천만원씩 내고 이런 교육을 받는 미국과 달리 핀란드는 공교육 시스템으로 같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었다. 내가 방문한 종합학교의 경우 가난한 지역에 있는 일반 종합학교였는데도 초등 1,2학년은 반별로 학생 10~15명에 교사 두 명이 배치돼 있었다. 읽기, 쓰기, 셈하기를 저학년 때 충분히 익힐 수 있게끔 이들 교사가 학생 한 명 한 명을 세심하게 케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에서만이 아니었다. 핀란드인에게 독서는 일상이었다. 핀란드에서는 대개 4시~4시반이 퇴근시간인데, 이 시간이 지나면 퇴근을 하고 난 아빠들이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이동도서관도 있었다. 이동버스 정류장마다 책을 실은 버스가 정차하면서 몇 시에는 이 마을, 몇 시에는 저 마을 하는 식으로 온 마을을 돌고 있었다. 노르웨이에서는 버스 대신 배가 책을 실어나르며 사람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21세기는 유목의 시대라더니, 사람뿐 아니라 도서관도 유목의 시대에 접어든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런가 하면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조이스 초등학교는 도서관 공간 배치 자체가 ‘도서관은 학교의 심장‘이라는 철학을 구현하고 있었다. 본래 이 학교는 극빈지역에 자리잡고 있어 성적도 꼴등이고 폭력이 난무하기로 소문나 있었다고 한다.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이민자 자녀도 많았다. 그런데 이 학교에 부임한 교장선생님이 독서를 통해 아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읽기 능력을 키워줘야겠다고 결심한 뒤 도서관 벽을 헐어버리는 혁신적인 실험에 나선 것이다. 실제로 이 학교 도서관에서는 문을 열면 곧바로 5학년, 6학년 교실로 통하게 돼 있었다. 저학년은 아예 교실에 서가를 꾸며 책을 집어넣어 준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접근성을 최대한 끌어올려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 접하도록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진국 독서교육을 보고 충격받다

이들 현장을 보며 ‘선진국이 괜히 선진국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다. 이들은 이미 미래를 내다보고, 미래사회가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아이들을 길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걸 보고 돌아와 며칠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부터 바꿔야 하나 싶어서였다. 근대화에 뒤졌던 우리는 한 발 앞섰던 일본에 식민 지배까지 당한 역사적 경험이 있다. 그 피해가 얼마나 컸던가? 양반들은 그나마 먹을거리라도 있었지만, 일반 백성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갈 뿐이었다. 그런데 거대한 패러다임이 바뀌는 오늘날 똑같은 일이 벌어지려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앞을 가렸다. 

교육 선진국들은 수업 시간에 교과서 대신 책과 정보를 적극적으로 탐색하며 활용하는 추세다.


사실 현재로서 떠올릴 수 있는 대안은 교과서를 한쪽으로 치우고 평가 방식을 바꾸는 정도다. 교과서 대신 도서관의 수많은 책과 인터넷 속 정보를 활용해 살아 있는 공부를 하게 하고, 이미 정해져 있는 정답이 아닌 자기만의 생각을 말하게 하고 이를 평가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과연 가능하겠나. 백번을 양보해, 정책은 자유학기제 도입하듯 극적으로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정책을 바꾼들 현장에서 이를 감당할 수가 없다. 이런 교육을 위해서는 교사 스스로가 준비돼 있어야 한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은 물론 글을 쓰고 토론을 이끌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교사들은 그렇게 교육받고 선생님이 된 것이 아니다.

앞으로 정책이 바뀌고 교사들이 준비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고 가만있을 수는 없다.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수밖에. 가정에서는 부모님이 먼저 책을 읽고 사회적으로는 독서 인프라를 조성하게끔 요구하는 등 독서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기본이다. 내가 급한대로 한 가지 제안하는 것은 책모임 내지 독서동아리를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부모님들도 아이에게 어떻게 독서교육을 시킬지 혼자 고민할 일이 아니다. 아이들이 그룹을 만들어 책을 읽고 쓰고 토론하게끔 지원하셨으면 한다.

우리 큰아이의 경우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작은아이의 경우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무려 십 년 가까이 친구들과 함께 책모임을 진행했다. 책모임은 일요일마다 우리집에서 진행됐는데, 일단 탄력이 붙고 나니 내가 할 일은 거의 없었다. 나는 그저 모임이 있을 때마다 간식을 대주고 자리를 비켜줬을 뿐이다. 그 자리에 있으면 내 자식 못난 꼴이 눈에 들어와 못마땅하고, 아이 또한 부모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초창기만 해도 무슨 책을 고를지 우왕좌왕하던 아이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테마를 정해 책을 읽는다든가, 벤다이어그램이나 마인드맵을 그리며 독서 소감을 나누는 식으로 자기들끼리 활동을 만들어 갔다. 때로는 독서여행을 직접 기획해 떠나기도 했다. 그렇다고 책모임에서 아주 수준높은 대화가 오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아이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위안을 받는 듯했다. 책모임에 오면 뭔가 채워지는 느낌도 있고, 평상시 친구들과 잡담 나눌 때와는 달리 정신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까.

책모임은 결국 아이들의 인생행로마저 바꿔놓았다. 공부에 뜻이 없어 시골에 가 농사를 짓겠다던 큰아이는 책모임을 통해 공부가 재미있어졌다며 대학에를 진학했다. 현재는 지방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만화 스토리작가 지망생으로 글을 쓰고 있다. 공부는 잘하지만 사회성이 약했던 둘째 또한 책모임을 통해 사회성을 키웠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판타지 소설 대신 다른 책들도 폭넓게 읽게 되면서 성적이 쑥쑥 오르더니 이른바 명문대에 제 힘으로 합격했다.

책모임 30만개를 꿈꾸는 까닭

그러니 여러분께서도 선택하시라. 학원을 열심히 보낼 것인지, 독서모임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것인지. 이런 독서모임을 전국적으로 30만개까지 만들어보고 싶다는 것이 나의 꿈이다. 가정, 학교, 기관, 직장 등 어디라도 좋다. 이 일을 하고 싶어 다니던 학교도 그만뒀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 제 얘기를 듣고 ‘우리아이한테 독서를 빨리 시키고 독후감도 쓰게 해 봐야지?’ ‘책 모임도 해 봐야지?’ 하면서 괜히 마음이 급해진 부모들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부모 마음이 아니라 아이 마음이 그래야 한다. 아이가 그런 마음이 돼야 하는 것이다. 나비를 붙잡고 싶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이가 주인공인 그림책이 있다. 아이가 붙잡으려 들수록 나비는 더 먼 데로 도망을 간다. 지친 아이는 결국 할머니가 만들어준 꽃향기 나는 이불을 덮고 잠이 든다. 그러자 나비가 제발로 아이를 찾아온다.
 
마음이 조급해질 때면 이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부모 자신을 다독일 수 있으면 좋겠다. 존 F. 케네디는 이렇게 말했다. “배움이 없는 자유는 위험하고, 자유가 없는 배움은 헛되다”고. 아이 스스로 배움을 좋아하는 존재로 성장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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