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배신
박산호 지음, 유유 펴냄

“인공지능이 번역 시스템에 도입된 시대, 우리가 갖춰야 할 것은 단어를 폭넓게 이해하는 능력이 아닐까?”

‘I was too yellow to confront bullies.’ 이 문장을 앞두고 갸웃하는 당신. 특별히 어려운 단어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해석이 잘 안 된다면 이 책에 도움을 구해보자. ‘yellow’는 노란색만 의미하지 않는다. ‘노랗게 되다’라는 동사 정도는 예상 가능한 범위인데 ‘겁이 많다, 소심하다’라는 뜻까지는 알기 쉽지 않다. 그렇게 위 문장을 해석해보면 ‘너무 겁이 나서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맞설 수 없다’가 된다.
15년간 외국 서적 60여 권을 한국어로 옮긴 저자가 원어민은 자주 사용하지만 한국인은 잘 모르는 단어의 다양한 의미를 수집했다. 단어와 친해지는 기분이 들어 유쾌하다. 저자의 권유대로 ‘아침에 커피를 마시면서, 지하철에서 시간을 때우면서, 자기 전에 짧은 글을 읽고 싶을 때’ 읽어볼 만하다.





폭정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조행복 옮김, 열린책들 펴냄

“권위주의는 권력의 대부분을 거저 얻는다.”

앞으로도 계속 민주주의가 순조로울 것이라는 무의식적 낙관론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가? 20세기의 독재와 홀로코스트 전문 연구자인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어느 순간 사회가 붕괴되면서 독재자의 폭정 밑으로 굴러떨어진 역사의 패턴을 수없이 되새겨왔기 때문이다.
그는 ‘트럼프 당선’이라는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 징후에 대해 “우리 시민들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폭정에 맞섰던 20세기 각국 시민들의 경험에서 추출한 ‘역사의 교훈 20가지’가 이 책의 줄거리다. 독재자에게 “미리 복종하지 말고” “제도를 보호하며” “사생활을 지키고” 무엇보다 “최대한 용기를 내라”고 권한다. 이 책은 현재 미국에서 트럼프에 대한 거부와 저항, 민주주의 옹호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통용되고 있다.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조홍민 옮김, 글항아리 펴냄

“도쿠가와 가문은 칼이 아니라 원예로 한 시대를 지배했다.”

에도(오늘날의 도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막부를 세운 곳으로 무장과 무사들의 도시다. 이 무장과 무사들은 식물 애호가들이었다. 우리 선비들이 매란국죽 4군자를 편애할 때 이들은 다양한 식물을 두루 즐겼다. 특히 무장과 무사들은 화려하게 피었다가 한순간에 지는 벚꽃의 무상함에서 무사의 미학을 찾았다.
전용 약초원을 둘 정도로 식물에 조예가 깊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척박한 땅 에도를 식물학의 보고로 바꾸었다.
에도는 원래 드넓은 습지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만으로 향하던 도네 강의 흐름을 태평양 쪽으로 바꿔 동쪽 습지대를 농경지로 탈바꿈시켰다. 소나무, 대나무, 고사리, 토란 등을 군사적 목적으로 기르고 이를 전쟁장비와 전투식량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지음, 동녘 펴냄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존재가 스스로 목소리를 낼 때, 세상은 딸꾹질한다.”

‘흰소리’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이는 트위터에도 좌우명으로 삼을 만한 문장들이 있다. “알지, 아름답게 살려면 X나 싸워야 한다”라는 문장도 그중 하나였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그 문장을 종종 떠올렸다. 이 책은 한 사람이 아름답게 살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온 흔적이고 증거다. 페미니즘이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는지에 대한 보고서라고 해도 무방하다. 페미니스트는 사실 피곤한 정체성이다. 그래도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영화배우 에즈라 밀러가 인터뷰에서 한 말마따나 “진실을 외면하고 행복한 사람보다 진실을 직면해서 슬픈 사람이 되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다는 건 상처받는 일이니까. 그 상처가 우리를 더 사람답게 살게 해주니까. 그래서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계속 불편하면 좋겠다.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자크 파월 지음, 윤태준 옮김, 오월의봄 펴냄

“미국 작가 로런스 위트너는 ‘그 전쟁이 미국 자본주의를 회춘시켰다’고 간결하게 논평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좋은 전쟁(Good War)’ ‘역사상 최고의 전쟁(The Best War Ever)’이라고 부르는 통념을 비판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진실을 보여준다. 왜 그렇게도 많은 미국의 파워엘리트들이 전쟁 전에는 파시즘에 호의적이었는지, 일본이 진주만 공격을 한 이유는 무엇이었으며, 20만~25만명이나 살상된 드레스덴 폭격을 굳이 실행한 이유는 무엇인지 따위 질문에 답한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이 파시즘과 군국주의에 대항한 미국의 위대한 성전, 즉 ‘좋은 전쟁’이 아니라 돈과 사업 관계, 그리고 이윤에 따른 충돌일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지금까지도 미국의 정책은 근본적으로 미국 산업과 ‘대기업(자본)’, 즉 미국 파워엘리트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재난을 묻다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서해문집 펴냄

“이 세상에 다시 오고 싶거든 안전하고 사고 없는 나라에서 태어나길 두 손 모아 기도한다.”

배가 기울었다. 해경은 SOS 타전을 무시했다. 사고 발생 뒤 10시간이 넘도록 구조에 나서지 않았다. 300명이 넘는 승객이 사망했지만 선장은 살아 돌아왔다. 세월호 이야기가 아니다. 1970년 12월15일 일어난 남영호 침몰 사건 이야기다. 이렇듯 참사의 역사는 반복된다.
세월호작가기록단이 수많은 ‘세월호들’을 추적해 기록했다. 남영호, 화성 씨랜드, 대구 지하철, 태안 해병대캠프 등에서 변주되고 반복되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짚었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지려면 반드시 끊어내야 할 구체적인 재난 사고의 ‘클리셰’를 보여준다. 동시에 충격적인 숫자로만 떠돌던 피해자들의 삶에도 귀를 기울였다. 과거 재난 피해자 가족들이 세월호를 계기로 함께 모인 ‘재난안전가족협의회’가 기록의 길잡이가 됐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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