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0여 년 전이다. 페미니즘 책을 내면서 ‘뭐하러…’ 하는 눈길을 받은 것이. 다 끝난 얘기를, 그것도 창업 초기 돈 없어서 쩔쩔매는 출판사가 보태냐는 안타까움이었으리라. 실제로 초판 1000부를 10년간 팔았다. 돌아보니 그렇다.

페미니즘이 그렇게 인기가 없었다. 조앤 W. 스콧의 책을 재계약할 수 있었던 건 모두 변한 세태 덕분이다. 가슴 아픈 일이 너무나 많았기에 반갑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다만 생식기의 차이 같은 ‘본질주의’ 논쟁에서 벗어나는 데 스콧의 책이 도움이 되리라는 확신뿐이다.

개정판을 내면서 〈페미니즘 위대한 역설〉(원제 Only Paradoxes to Offer)이라는 제목을 〈페미니즘 위대한 역사〉로 슬쩍 바꾸고, 국내 다른 페미니즘 책들처럼 표지를 파스텔톤으로 했다. 그래도 책 내용이 어렵다는 사실은 바꾸기 어렵다. 재출간을 위해 새로 본문 교정을 보고, 원서에 없는 소제목을 달면서 설핏 후회도 들었다. 이 어려운 책을 얼마나 사 본다고…. 하지만 개정판 초판 1000부를 5년 안에는 다 팔 수 있지 않을까.

〈페미니즘 위대한 역사〉조앤 W. 스콧 지음공임순·이화진·최영석 옮김앨피 펴냄
이 책이 던지는 쟁점은 진부하지만 새롭다. 이야기는 ‘인권’이라는 프랑스 대혁명의 기린아가 혁명을 성사시킨 뒤 헌신적 조력자였던 ‘여권’을 내팽개치는 것으로 시작된다. 여성은 인간(Hu-Man)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여성들에게는 두 갈래 길밖에 없었다. 남성으로서 ‘평등’해지거나, 여성으로서 ‘차이’를 주장하거나. 2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결론 나지 않은 이야기다. 어느 쪽을 택하든, 여성은 ‘성차’의 역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 역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안에 갇히고 벗어나야 할지(말지)를 묻는 책이다. 정치는 필수이고, 개인과 주체는 덤이다.

스콧 여사에게 다시 한번 한국어판 서문을 써달라고 청했지만, 파리테법(La Parité:남녀 공천 동수법)을 주창한 세계적 석학도 나이가 들었는지 “도무지 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라고 했다.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돌아보면 어느새 이만큼이나 왔다고 할까.

기자명 노경인 (앨피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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