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직업교육 시스템은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고 불린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현장실습과 교육기관에서 받는 이론교육을 병행한다(듀얼 시스템). 그동안 아우스빌둥은 다른 나라에서도 성공적인 직업교육 모델로 평가받아왔다. 독일 정부도 아우스빌둥을 해외에 적극 홍보했다. 지난 3월 메르켈 총리의 미국 방문에 동행했던 경제사절단은 아우스빌둥을 홍보했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딸 이방카 트럼프를 독일로 초대하기도 했다. 지난 3월 인도의 20개 회사가 독일 대사관 주도로 아우스빌둥 시스템에 대한 협의서에 서명했다. 같은 달 한국 교육부와 한독상공회의소, BMW그룹 코리아와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도 아우스빌둥의 한국 도입을 약속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아우스빌둥은 산업을 발전시켜야 하는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높은 청년실업률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나라에서도 주목받아왔다. 최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직업교육의 비중을 강화하는 공약을 제시했다. 두 후보의 공약은 유럽의 직업교육 제도들을 모델로 했다. 그 가운데 아우스빌둥도 한국 교육제도를 바꿀 대안 모델로 소개되었다.

ⓒAP Photo독일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그룬트슐레(위)는 4년제다. 독일에서는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5~6학년생들에게 일찌감치 진로를 결정하게 한다.
아우스빌둥이 해외에 보급되면 그 국가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아우스빌둥의 근간이 되는 독일의 사회적 환경을 살펴보아야 한다. 아우스빌둥은 독일의 중등교육 시스템을 토양으로 삼아 뿌리를 내렸다. 독일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그룬트슐레(Grundschule)는 4년제로 이루어져 있다. 그룬트슐레를 졸업하고 나면 독일의 학생들은 한국 중·고등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하웁트슐레(Hauptschule), 레알슐레(Realschule), 김나지움(Gymnasium) 과정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하웁트슐레는 5~6년 과정으로 직업을 위한 예비교육에 중점을 둔다. 5년 과정을 마치고 나면 아우스빌둥을 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게 된다. 레알슐레는 6년 과정으로 하웁트슐레보다 좀 더 전문적인 직업교육에 진입할 수 있는 중등교육 과정이다. 졸업 후 공무원, 간호사, 사무직 등의 직업교육 과정에 진입할 수 있다. 반면 김나지움은 한국의 중학교와 인문계 고등학교를 합친 교육과정으로 볼 수 있다. 8년 과정으로 한국의 수능에 해당하는 아비투어라는 졸업시험을 통해 대학 입학 자격을 얻게 된다.

독일 중등교육 시스템은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에게 일찌감치 진로를 결정하게 한다. 한국에서라면 학부모들이 당장 반발할 것이다. 내 아이의 잠재성을 너무 빨리 판단하고 결정했다고 여길 것이다. 독일에서는 반대로 본다.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절약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중등교육 시스템이 아우스빌둥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웁트슐레 졸업생의 경우 빠르면 한국 학제로 고등학생 때 직업교육을 시작한다. 직업교육의 경우 대부분이 시작 단계에서 특정 사업장에 소속되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급여가 지급될 뿐 아니라, 교육 후 자연스럽게 취업으로 연결된다.

ⓒ시사IN 전혜원독일 직업교육은 대부분 시작 단계에서부터 특정 사업장에 소속된다. 사진은 독일 카를제버링 직업학교.
대학 입학 자격 갖춰야 직업교육 기회도 커져

그런데 최근 독일에서도 아우스빌둥에 대한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에서는 아우스빌둥 자리를 찾는 100명당 아우스빌둥 자리 104개가 제공되었다. 주간지 〈슈피겔〉 보도에 따르면 아우스빌둥 새 학기가 시작된 지난해 9월30일 4만3500개의 아우스빌둥 자리가 주인을 찾지 못했다. 작년보다 4.5%포인트 증가한 수치이다. 정부가 발표한 통계수치만 보면 아우스빌둥 자리를 찾는 사람에게는 유례없이 좋은 상황이다. 하지만 통계에 가려진 현실이 꼭 장밋빛인 것은 아니다.

지난 4월5일 베를린 지역 신문 〈타게스슈피겔〉은 독일의 아우스빌둥 상황에 대해 두 가지 목소리를 보도했다. 독일상공회의소(DIHK)는 지속적인 인력 부족으로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이나 난민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독일노조연맹의 부대표는 전혀 다른 주장을 했다. 독일상공회의소에 등록된 아우스빌둥 자리 세 개 중 두 개가 원천적으로 하웁트슐레 졸업생에게는 닫혀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 의미에서 본다면 하웁트슐레 졸업생도 직업교육을 받을 자격을 갖췄다고 볼 수 있지만, 고용주들이 하웁트슐레 졸업생에 비해 레알슐레 졸업생에게 자리를 주려는 경향이 높다고 한다. 고용주들이 좀 더 전문적인 학력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또한 아우스빌둥 과정에 있는 사람 중 대학 입학 자격을 갖춘 학생의 비율(28%)이 처음으로 하웁트슐레 졸업생 비율(26%)보다 높았다.

ⓒ뉴시스3월6일 아우스빌둥 한국 도입 양해각서가 체결됐다. BMW·메르세데스가 9월부터 정식 운영할 예정이다.
독일의 대학진학률은 2005년까지만 해도 37% 수준이었다. 현재는 거의 50%에 달한다. 지난달 〈슈피겔〉에 따르면 대학 졸업자들의 실업률은 약 2.5%로 직업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실업률(약 5%)의 절반 정도다. 40대 대졸자의 경우 평균적으로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사람보다 2.5배 높은 소득을 올리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최근 25년간 대졸자의 숫자가 증가했고 대졸자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임금 격차도 뚜렷하게 증가했다. 최근 20년간 전체 일자리 중 대졸자를 위한 일자리 비율도 급격히 증가했다.

아우스빌둥은 대학을 나오지 않더라도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직업시장의 구조 덕에 성공했다. 사회에서 제 몫을 하는 직업인으로 인정하는 독일 사회의 인식도 아우스빌둥의 보이지 않는 버팀목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아우스빌둥을 성공시킨 근본 토양이 독일 안에서 흔들리고 있다.

기자명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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