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19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안종범 전 수석에게 다섯 가지 지시를 내렸다. 안종범 업무수첩 ‘9-19-16 VIP’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 국감:삼성, 현대차 출석 않도록 정무위, 교문위, 기재위(그림 1)’ 그중 첫 번째가 특정 기업 인사들을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도록 하라는 지시였다. 바로 다음 날 청와대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실수비)에서도 같은 논의가 이뤄진다. ‘4. 국감, 증인선정, 국회 자료 요구(그림 2).’ 당시 국감은 9월26일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다.
박 전 대통령과 청와대는 국감에서 특정인의 증인 채택을 막을 권한이 없다. 국감 증인 채택은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각 상임위원회에서 의결한다. 그런데도 이 같은 지시를 내린 것은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을 이용해 기업 쪽 증인 채택을 막는 ‘방탄 국감’을 열라는 주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삼성과 현대차의 대표 격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야당의 요구가 있었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이 반대했다.
박 전 대통령이 증인 채택을 막은 시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2016년 9월19일은 박근혜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직전이었다. 이튿날인 9월20일 〈한겨레〉는 ‘K스포츠재단 이사장은 최순실 단골 마사지센터장’이라는 보도를 했다. 앞서 7월 TV조선은 미르재단과 관련한 기사를 내보냈다. 박 전 대통령이 굳이 삼성과 현대차를 지목하며 국감 증인을 막으라고 지시한 것은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의혹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삼성은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를 직접 지원했다. 현대차도 최순실씨의 지인(정유라씨 초등학교 친구의 부모) 회사 KD코퍼레이션을 지원했다.
안종범 전 수석은 재단과 관련한 기업들의 지원금을 수첩에 적으면서 삼성과 현대차를 가장 먼저 올렸다. 2015년 10월10일 업무수첩 기록과 10월19일자 기록에는 ‘SS 250, 현대차 150, SK 100, LG 100, Lotte 100’이라 쓰여 있다(그림 3). SS는 삼성을 뜻하고 숫자는 지원금 250억원을 의미한다. 이 기록 밑에는 ‘박상진 사장 삼성’이라고도 적혀 있다. 대한승마협회 회장을 맡았던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은 정유라씨를 직접 챙긴 장본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우표도 꼼꼼히 챙겨
삼성 현대차 국감 증인 채택 저지 지시 외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챙긴 국감 이슈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우표 발행 건이었다. 2016년 9월13일 안종범 업무수첩 ‘VIP’ 부분에 ‘1. 우정사업본부:기념우표 100주년 신경민(그림 4)’이라고 쓰여 있다. 같은 날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언론에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돌을 맞아 정부가 기념우표 60만 장을 발행한다”라고 비판했다. 신 의원은 “취임 기념을 제외한 대통령 주제 기념우표 발행이 중단된 시점에서 우정사업본부의 해당 사업이 적절한지 의문이 든다. 재검토를 요청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비판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이 특별히 신 의원을 지목하며 관련 사업을 챙기라고 안종범 당시 정책조정수석에게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우정사업본부는 ‘구미시의 요청을 받아 심의 단계에서 심의위원 전원 찬성으로 결정된 일이다’라며 우표 발행을 강행했다. 오는 9월15일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우표’가 발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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