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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만 참으면 보수가 살아난다?

2017년 05월 08일(월) 제504호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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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보수연합은 지역적으로는 영남, 세대로는 고연령층, 계층으로는 자산을 소유한 중산층을 축으로 한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이 세 축이 모두 흔들렸다.

미래의 역사가들은 2017년 대선을 무엇보다도 ‘보수가 패퇴한 선거’로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보수의 후퇴는 이번 대선에서 진정으로 중대한 변화다. 대통령 선거를 넘어, 1987년 민주화와 1990년 3당 합당으로 형성된 한국 정치 지형의 구조변동까지 가능하다는 분석도 있다.  

새누리당(현재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분열) 계열 보수 정당과 더불어민주당 계열 진보·개혁 정당의 대결 구도는 1990년 3당 합당 이후 한국 정치의 기본 축이었다. 이 진보·보수 구도로 치러진 다섯 차례 대선에서 보수는 1992년(김영삼), 2007년(이명박), 2012년(박근혜) 세 차례 이겼다. 1992년 대선부터 따져 보수 후보가 받은 최악의 성적표는 1997년 이회창 후보(당시 한나라당)의 38.7% 득표다. 이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경선에 불복하고 탈당한 이인제 후보(당시 국민신당)가 19.2%를 가져갔으므로, 보수 분열이 없었다면 득표율은 더 높았을 가능성이 있다. 보수 후보가 패배한 1997년(김대중), 2002년(노무현) 대선도 득표율 차이 3%포인트 이내의 초접전이었다.

이 법칙은 사실상 이미 깨졌다. 2017년 대선은 보수 후보가 선거운동 기간 내내 단 한 차례도 당선권에 근접하지 못한 민주화 이후 최초의 선거다. 2017년 대선 막판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홍준표 후보(자유한국당)는 20%에 가까운 지지율을, 유승민 후보(바른정당)는 한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두 후보의 지지율을 합산하고, 여기에 대선 당일의 결집효과까지 고려해도, 선두 후보와의 거리가 가깝지 않다.

ⓒ연합뉴스
4월11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보수 우파 대통합’을 촉구하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한 뒤 인사하고 있다.

‘재정렬(리얼라인먼트·Realignment)’이라는 정치학 용어가 있다. 정당과 지지층의 짝지음이 극적이고 구조적으로 재편성되는 사건을 일컫는 용어다. 이를테면 대구·경북이 더불어민주당 지지 기반으로 넘어가거나 30대 대졸자 유권자층이 자유한국당 표밭이 되는 식으로 심대하고 오래 지속되는 변화가 있을 때 이 용어를 쓸 수 있다. 그리고 이 ‘재정렬’이 확인되는 선거를 ‘중대 선거(critical election)’라고 부른다. 보수의 위기를 바라보는 연구자와 분석가들은 2017년 대선이 과연 이 ‘중대 선거’가 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보수의 위기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여파에 따른 일시적인 수세라면, 2017년 대선은 중대 선거가 아니라 그저 예외적인 선거가 된다. 비슷한 전례도 있다.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당시 대통합민주신당)는 26.1%를 득표했다. 진보·개혁 진영의 지지 기반이 붕괴한 듯 보였지만, 이후 2010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며 3년도 되기 전에 팽팽한 종전 구도를 복원했다. 지금 2007년 대선을 ‘중대 선거’라고 부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유권자의 태도는 크게 바뀌었지만, 그 변화가 오래 유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수 일각에서는 2007년의 그림을 기대하는 기류가 강하다. 보수에 몸담은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3년만 참자”라는 말이 인사처럼 오가곤 한다. 이명박 정부가 초기 실정으로 2010년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것처럼, 차기 정부가 집권 3년 동안 국정 운영에 실패하면 2020년 총선에서 보수의 부활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특히 국회 의석 분포가 차기 정부에 유리하지 않기 때문에, 보수 블록이 국정 과제에 비협조적으로 나올 경우 차기 정부가 좌초되기 쉽다는 정서도 있다.

유권자 지형의 재편성 징후 뚜렷

하지만 2017년 현재 보수가 처한 상황은 ‘3년 인내’만으로 극복될 만큼 간단치는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반대를 넘어, 유권자 지형의 재편성 징후가 여럿 발견되기 때문이다. 한국 보수 연합은 지역적으로는 영남, 세대로는 고연령층, 계층으로는 부동산 등 자산을 소유한 중산층이 주축이다. 이 세 축이 모두 균열 징후를 보인다.

ⓒ연합뉴스
1월24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바른정당 창당대회에서 소속 의원들이 국정 농단 사퇴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무릎을 꿇었다.

지역적으로는 영남의 두 기둥 중 한 축인 부산·울산·경남(부울경)의 이탈이 뚜렷하다. 문재인 후보(더불어민주당)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부울경 지역 지지율 1위를 놓치지 않았다. 한국갤럽의 대선 전 마지막 여론조사(5월1~2일 조사)를 보면 문 후보는 전국 지지율(38%)보다도 부울경 지지율(42%)이 높다.

세대로는 확고한 보수당 지지층이었던 50대가 ‘스윙 세대’로 변모하고 있다. 민주화 시기에 젊은 시절을 보내며 정치의식이 형성된 이른바 ‘386 세대’들이 50대에 진입하면서, 50대 전반과 후반의 정치 성향이 갈리고 있다. 50대 전반의 정치 성향이 눈에 띄게 진보적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보수화되는 경향보다는, 젊은 시절의 진보적 정치 체험을 유지하는 경향이 이 세대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마지막 균열, 자산 소유 중산층의 이탈 징후야말로 의미심장하다. 지역 축·세대 축의 균열과 달리, 이 마지막 균열은 이념과 노선상의 균열을 암시한다. 박근혜 정권 시절 보수가 분노한 이슈로 손에 꼽는 의제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였다. 교과서 이슈는 보수 정부가 강성 권위주의로 퇴행하고 있는 증거로, 또한 보수 정당은 그것을 제어할 의지가 없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국가주의 성향이 강한 고령 보수층에서는 큰 문제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자산 소유 중산층에게는 분명 과도한 퇴행으로 비쳤다.

박근혜 정부는 ‘오른쪽 한계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민주화는 북한이라는 강한 압력을 옆에 두고 전개되었기 때문에, 민주화의 축인 중산층이 극단주의를 용인하지 않는 태도가 특히 강하다. 통합진보당은 ‘왼쪽 한계선’을 넘은 것으로 간주된 탓에 중도 보수적 중산층이 해산에 찬성했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의 강성 권위주의는 중산층의 ‘오른쪽 한계선’을 넘어갔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권위주의적 대응과 교과서 파동 등을 거치며 그런 불만이 두껍게 축적되어 있었다. 그래서 최순실 스캔들에 대한 분노와 촛불집회의 결집력이 그토록 강하고 오래 유지되었다고 본다.”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는, 체제 전환 중인 국가에서는 권위주의와 민주화 세력 양쪽에서 일종의 ‘온건파 동맹’이 형성될 때 민주화가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민주화 역시 강성 권위주의와 좌파 급진주의 양쪽을 배제하면서 온건파 동맹을 형성하고 유지해온 과정이 있었다. 이 기본 구도를 수호하는 중산층 정서가 용인하는 한계선을, 박근혜 정권이 결정적으로 넘어버렸다.

이 자산 소유 중산층의 정서를 잘 보여주는 지역이 서울의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다. 2012년과 2016년 총선에서 강남 3구의 투표 성향 변화는 흥미롭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강남 3구는 당시 새누리당에 정당 투표 52%를 몰아줬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이 비율이 35%로 떨어졌다. 물론 20대 총선에서는 국민의당이라는 유력한 제3당이 표를 잠식했으므로, 두 숫자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서울 전체에서 새누리당이 얻은 정당 득표에 대비하여, 강남 3구에서 새누리당이 얼마나 더 많이 득표했는지 계산해보았다. 이렇게 하면 국민의당 변수를 걸러내고 강남 3구의 보수당 결집력 변화를 볼 수 있다.

19대 총선에서 강남 3구는 새누리당에 서울 전체 평균 대비 125%만큼 표를 몰아줬다. 하지만 이 비율이 20대 총선에서는 116%로 떨어진다. 여기에 더해 투표율도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강남 3구의 투표율은 19대 총선에서는 서울 전체 대비 1%포인트 더 높았다. 하지만 20대 총선에서는 서울 전체 대비 1%포인트가 오히려 낮았다. 20대 총선에서 자산 소유 중산층은 보수 정당에 분명히 표를 덜 주었고, 투표를 더 많이 포기했다. 탄핵이라는 대형 이벤트가 등장하기 전부터 자산 소유 중산층의 이탈과 균열 징후는 뚜렷이 감지되었다.

ⓒ연합뉴스
5월2일 홍준표 후보(왼쪽)와 유승민 후보가 마지막 텔레비전 토론을 기다리며 나란히 서 있다.

강남 3구 중산층의 보수 결집력 약해져


보수 유권자의 균열은 정치 엘리트들에게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 특히 박근혜 정권의 강성 권위주의가 불러온 중도 보수층의 이탈은 심각한 위험신호였다. 박근혜 탄핵 찬성 의원들이 주축이 된 새누리당 분당과 바른정당 창당은 부분적으로 그 귀결이었다. 바른정당은 기본적으로 ‘반기문 둥지 만들기 프로젝트’였지만, 바탕에는 박근혜 정권의 강성 권위주의에 대한 중도 보수 유권자의 이탈이라는 지각변동이 깔려 있었다.

이렇게 해서, 2017년 대선은 보수 본류 정당과 후보가 둘인 채로 선거전에 돌입했다. 1997년 이인제 후보나 2007년 이회창 후보(당시 자유선진당)처럼 보수 출신 유력 후보가 추가된 선거는 있었지만, 이번처럼 보수 본류 정당이 분열되어 주도권을 다투는 선거의 의미는 또 다르다.

아래 <그림>은 한국 정치에서 핵심 이슈로 간주되는 ‘경제’와 ‘남북관계’를 두 축으로 해서, 주요 후보들의 위치를 표시한 개념도다. 문재인 후보는 경제는 시장 자유보다 정부 개입 성향에 더 가까운 공약이 많다. 남북관계는 압박보다는 교류를 우선한다. 1사분면 유권자 대부분을 흡수하고 있다. 심상정 후보(정의당)는 문 후보와 같은 1사분면에 있으면서 문 후보보다 더 급진적이다. 유권자의 숫자는 많지 않지만 진보 정당 후보 나름의 시장을 확보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국민의당)는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말이 압축하듯 4사분면에 위치한다. 하지만 안 후보의 선거 캠페인은 호남의 전통적 야권 표와 갈 곳 잃은 보수 표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숙제를 받았다. 안철수 캠페인은 안보 이슈에서 ‘교류’와 ‘압박’ 양쪽으로 어정쩡하게 걸쳐야 했는데, 이것은 중요한 약점 중 하나였다.

문제는 두 보수 후보다. 홍준표 후보는 전통적으로 보수 포지션인 ‘시장 자유’와 ‘대북 압박’이 조합된 3사분면에 홀로 자리 잡았다. 다른 국면이었다면 중도 표를 공략하면서 대선 승리를 노려볼 수도 있는 위치다. 하지만 2017년 대선에서는 중도 보수 표도 자유한국당 후보를 가능한 대안으로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자유한국당 후보는 3사분면에서도 더 극단적인 구석으로 향해 지지 기반을 발견하는 길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노선이 과할 정도로 선명한 홍 후보는 자유한국당으로서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승리를 노리는 포지션으로 보기는 어렵다.


유승민 후보의 포지션은 더 좁았다. 이 신생 보수당의 대선 주자는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안철수 후보의 포지션(4사분면)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도 더 구석으로 내달렸다. 2017년 대선에서 유 후보는 대북정책은 홍 후보나 다름없이 냉전적이고, 경제는 문 후보 이상으로 개입주의였다. 유권자가 많다고 보기는 어려운 위치에 자리 잡았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에 들어가기 직전 발표된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홍 후보는 대체로 20%에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했다. 한국 보수의 핵심 지지층이자, 강성 권위주의 성향 지지층은 거의 복원됐다. 반면 안 후보가 자리 잡고 있어 비좁은 4사분면 중에서도 더 구석으로 내달렸던 유승민 후보는 지지율 정체에 시달렸다. 바른정당 의원 13명은 5월2일 집단 탈당과 자유한국당 입당을 선언했다. 이후 탈당을 보류한 의원들이 나타나고, 자유한국당에서도 강성 탄핵 찬성파 의원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친박계가 반발하는 등 5월4일 현재 어지러운 정국이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큰 흐름은 분명하다. 중산층과 중도 보수를 새 지지 기반으로 생각하고 분당을 감행했던 바른정당은 대선에서 신규 지지 기반 확보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에 따라 보수 핵심층인 강성 권위주의 세력이 15% 안팎의 쪼그라든 결집력으로도 다시 주도권을 회복하고 있으며, 바른정당 일부가 그 힘에 휩쓸려 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강성 권위주의 블록이 다수파를 점한 그 공간은 중원으로의 확장이 사실상 봉쇄된 막다른 골목일 가능성이 있다. 보수는 지지층 균열과 정당 균열이라는 ‘이중의 균열 상태’를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받아들었다.

서울대 박원호 교수(정치학)는 이렇게 말했다. “정당 귀속감은 사실 생각보다 공고하고 잘 안 바뀐다. 그래서 원래 55대45 구도에서 45대55 구도로 뒤집히기만 해도 아주 중대한 사건이다. 선거전 초기처럼 홍준표 후보가 선거비용 보전선인 15%를 밑돌아야만 큰 변화라고 생각하는 건 일종의 착시다. 보수 정당 후보들의 득표율 합이 40%를 밑돌기만 해도 엄청난 변화다. 보수가 소수파인 구도가 이후 몇 차례 선거에서 이어진다면 그건 ‘재정렬’로 볼 수 있다. 그 중요한 징후 가운데 하나가, 홍 후보가 동성애 이슈를 들고 나오며 미국 공화당이 즐겨 썼던 ‘문화전쟁’을 시도한 것이다. 기존 한국 정치에서는 주 전선이 아니었던 이슈다. 이걸 주요 보수 정당 후보가 들고 나와서 기존 전선을 재구성하려 하고 있다. 보수 우위의 유권자 정렬이 그대로였다면 할 이유가 없는 시도다.”  

이번 대선에서 드러나고 있는 보수의 열세 구도는 앞으로도 지속될 구조 변동인가 아니면 탄핵에 따른 일시적인 휘청거림인가. 보수는, 마치 2007년 이후 진보가 그랬듯이 예전의 연합을 복원할 수 있을까. 딛고 서 있는 지지 기반이 다들 취약하기 때문에, 대선 이후의 정치 지형 변동이 대단히 복잡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박원호 교수는 “대선 이후에 다당제 구도와 선거제도의 불일치가 어떻게 정리될지가 중요하다. 지금의 다당제 구조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헌법과 선거제도가 바뀔까? 그게 아니라면, 다시 진보·보수 양당의 중력에 3당과 4당이 버티지 못하고 흡수되면서 양당제로 돌아가게 될까? 만약 전자라면,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은 한국 정치의 ‘중대 선거’로 기록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반대로 차기 정부가 마치 이명박 정부 때처럼 집권 초기에 민심을 잃는 실수를 했다가는, 쪼그라든 보수가 의외로 쉽게 원래의 지지 기반을 회복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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