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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 할 것은 희생과 통합

2017년 05월 16일(화) 제504호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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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렉시트 국민투표 일주일을 남기고 영국 노동당 소속 조 콕스 하원의원이 지역구에서 총에 맞았다. 범인은 ‘반역자에게 죽음을, 영국에 자유를’이라고 외친 백인 우월주의자였다.

다들 설마하니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고, 영국이 유럽연합(EU)을 떠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는데 그 일이 정말로 일어났을 때, 그러니까 지난해 6월23일, 브렉시트가 국민투표로 통과되었을 때 사무실 변호사 중 한 명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런던에서 멀리 떨어진 자기 고향 근처에 있는, EU를 떠나는 쪽에 찬성한 동네들은 다들 너무너무 가난하다고. 런던이나 그 근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네랑은 너무 다르다고. 거기 사는 사람들은 EU에 남는다고 해서 어떤 장점이 있는지 아는 바가 없다고.

당시 투표 결과를 ‘EU에 남겠다’를 파란색, ‘떠나겠다’를 빨간색으로 표시한 지도를 보면 대비가 매우 뚜렷하다. 런던 및 그 근교는 파랗다. 그 이외 지역은 온통 빨갛다(그리고 다시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는 파란색이지만 이건 잉글랜드에 대한 반감이 섞인 탓이 크다. 즉, 피치 못하게 마음에 안 드는 잉글랜드와 한통속으로 묶여서 고립되느니 차라리 악착같이 유럽에 붙겠어, 이런 감정이랄까). 외국인을 자주 접할 수 있고, 유럽에서 쉽사리 건너올 수 있는 외국 관광객들이 뿌리는 돈이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고, 외국 자본 및 인력이 주는 효용이 매우 뚜렷한 지역, 즉 EU 구성원으로 남아 있음으로써 확실히 누릴 것이 있는 지역들만 남기를 원했다는 이야기다. 그렇지 않은 곳들은 EU에 남는 것에 대한 실용적 설득이고 이념적 당위성이고 뭐고 다 그냥 싫은 거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외국인, 주로 동유럽 사람들은 그나마 부족한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것 같아서다. 정말 그들이 하는 일을, 그들이 받는 임금 수준으로 자기들이 할 것인지는 별론으로 하고 말이다.

ⓒEPA
영국 런던 의회광장에 마련된 조 콕스 의원 추모공간에 한 시민이 꽃을 놓고 있다.
조 콕스는 영국 중부 웨스트요크셔에 있는 지역구 배틀리·스펜의 노동당 소속 하원의원이었다. 영국이 EU에 남는 쪽을 지지했던 그녀는 지역구에서 투표 캠페인을 활발히 펼쳤다. 살해당하던 날인 2016년 6월16일, 지역구 중 한 곳인 버스톨의 공공도서관 앞에서 주민과의 만남 행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그녀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 한 남자가 다가와 총을 쏘았다. 근처를 지나가던 노인이 이를 막으려고 하자 남자는 노인도 칼로 찔렀다. 다시 콕스에게 다가간 남자는 총을 더 쏘고 칼로 여러 번 찔렀다. 남자는 냉정을 잃지 않았고, “영국이 먼저야” “영국이 늘 먼저야” “영국의 독립을 지켜라”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건 영국을 위해서야!”라고 외쳤다. 남자는 콕스를 다시 한번 살펴보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천히 거리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경찰이 덮쳤을 때 그는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체포되었다. 그는 물론 살인죄로 기소되었다. 첫 번째 공판기일에 판사가 이름을 묻자 살인범은 “내 이름은 ‘반역자에게 죽음을, 영국에 자유를(death to traitors, freedom to Britain)’이다”라고 말했다.

살인범은 53세 백인 남자였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해 조부모 집이 있는 버스톨로 왔다. 조부모가 모두 사망한 뒤 그는 그 집에서 20년간 혼자 살았다. 시가 저소득층을 위해 제공한 방 세 개짜리 집이었다.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본 일도 없고 편히 이야기하거나 서로 방문할 단 한 명의 친구도 없었다. 공공도서관에 자주 드나들었지만 사서와 인사를 하지도,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이웃들은 그를 이상하지만 위험하지는 않은 사람으로 기억했다. 조용하고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길 잃은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곤 했다. 이웃들은 정치적이거나 차별적 이야기를 그에게서 들어본 일이 없다고 했다.

ⓒEPA
2016년 6월16일(현지 시각) 수사관이 조 콕스 노동당 하원의원 살해 현장을 검증하고 있다.
그러나 동네의 택시 기사들은 그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유색인 기사에게는 돈을 내면서 반드시 인종차별적 욕설을 내뱉는 것으로 잘 알려진 손님이었다. 그가 홀로 틀어박혀 있던 집에서 경찰은 서가에 가득한 네오나치 및 백인우월주의 서적들과 나치의 기념품들을 찾아냈다. 인종주의에 대한 그의 관심은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조립식 권총, 인종주의 서적, 나치 문건들을 주문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밝혀졌다.

그녀의 희생도 브렉시트를 막지 못했다

그는 백인들이 점점 핍박받는 세상이 되어간다고 생각했다. 유색인들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적’ 보다 더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반역자’, 즉 백인 진보주의자들과 언론이었다. 그는 인종 갈등과 관련해 흑인을 편드는 언론에 대한 불만을 미국의 잡지에 투고하곤 했다. EU 가입 후 주위에 외국인 숫자가 늘어나자 그의 불만과 불안은 더 깊어졌다. 그는 자신이 사는 공영주택도 외국인 난민들에게 빼앗길 거라고 걱정했다. 콕스와 같은 진보적 정치인들은 자신을 돕기는커녕 외국인 편을 들 거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콕스는 열렬한 EU 옹호론자였다. 그에게는 콕스가 처형해 마땅한 전형적인 ‘반역자’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 콕스가 외국인이나 유색인과 결탁해 영국 백인을 ‘배신’한 것이 아님은 당연한 이야기다. 그저 영국인이 아닌 사람들도 사랑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살해당한 지역구에서 노동계급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공장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학교에서 비서직으로 일했으니 케임브리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이다. 학교를 졸업하자 기아 문제 퇴치를 위한 국제 구호단체에서 활동했고 그 경험을 토대로 정치에 입문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한결같이 ‘좋은 사람’으로 기억했다. 지인들은 그녀가 ‘평생을 같이 지내고 싶어지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총에 맞고 칼에 찔려 쓰러져서도 콕스는 자기를 도우려 달려오는 보좌관들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나를 공격하게 내버려두고 당신들은 피하라고 외쳤다. 콕스의 남편은 그녀가 평생 믿고 추구했던 이상, 즉 인권과 국제적 연대에 대한 강력한 옹호 때문에 죽었다고, 아내의 이름이 분열이 아닌 통합의 상징으로 쓰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콕스의 죽음 이후 대대적인 추모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다섯 살, 세 살 두 아이를 둔 젊고 전도유망한 여성 정치인의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 여론은 EU 잔류를 지지하는 쪽으로 급격히 돌아섰다. 다들 무난히 잔류하는 쪽으로 결과가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그녀의 죽음 일주일 후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영국은 48대52로 EU를 떠날 것을 선택했다. 그녀의 지역구마저 떠나자는 쪽이 다수를 차지했다.

지난달,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대교에서는 차량을 이용한 테러가 발생했다. 누가 범인인지, 과연 무슬림인지 아닌지에 대하여 추측이 무성할 때 조 콕스의 남편은 자신의 SNS를 통해서 중요한 것은 범인의 이름이 아니라고 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임무를 수행하다가 살해당한 경찰관의 이름이라고. 미움과 폭력이 아니라 희생과 통합을 상기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저런 대인배는 아닌지라 기록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굳이 적자면, 콕스의 머리와 가슴에 총 세 발을 쏘고 열다섯 번 칼로 찔러 죽인 사람의 이름은 토머스 메이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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