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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대통령님, 유기견을 부탁드려요

2017년 05월 18일(목) 제504호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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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기되는 반려동물이 연간 9만 마리로 추정된다. 사회적 기업 ‘도기더치’는 커피 라벨에 유기견을 모델로 세워 사회의 편견을 바꾸고자 한다.

늘 거센 파도 한가운데 놓인 기분이었다. 집은 가난했고 부모는 꼭 그만큼 바빴다. 가난이 사랑을 앗아갔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레 말수가 줄었다. 부모를 믿을 수 없게 되자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를 믿을 수 없었다. 청소년기의 어느 한 시절을, 박도현씨(28)는 일부러 기억하지 않는다.

부모는 조금 늦게 박씨의 마음에 도착했다. 가난한 살림의 구멍을 겨우 다 메우고서야 보였다. 아들의 무너진 마음 앞에서 부모는 전전긍긍했다. ‘어떻게 해야 아들을 도울 수 있을까’ 궁리하던 부모에게 지인이 강아지 한 마리를 소개해 입양했다. 얼버무려진 시간 속에서도 박씨는 강아지 ‘사라’를 만났던 날만은 또렷이 기억한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많은 것을 바꿨다. 박씨는 단언한다. “제 삶은 사라를 입양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어요. 제가 뭘 하든, 언제 집에 돌아오든 항상 쫓아다니고 좋아해주니까…. 저는 사라한테 사랑받는 법을 배웠어요. 덕분에 사랑 주는 법도 알게 됐고요.” 갓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봄에 만나 지금까지 사라와 박씨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사라는 박씨의 진로마저 바꿔놓았다.

ⓒ박도현 제공
‘땅콩’(왼쪽)은 번식장에서 종견으로 살다가 구조됐다. 땅콩과 박도현씨(오른쪽)가 라벨용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대학에서 조경을 전공한 박씨는 졸업 후 놀이터 시공업체에 취직했다. 업무 특성상 여러 지방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유기견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낯선 현장에 몇 달씩 체류하면서 처음으로 실태를 체감했다. 유기견은 있기만 한 게 아니라 많았다. 집과 학교를 오가면서는 미처 보지 못하던 세상이었다. 첫 현장에서 만난 강아지는 사라와 같은 몰티즈(말티즈)였다. 흰색 털이 회색으로 변해 덥수룩했던 녀석이 자꾸만 박씨 눈에 밟혔다. 현장 근처 숙소에 머무는 동안 사료를 챙겨줬다. 공사가 끝나고 헤어지던 날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필이면 비가 많이 내렸다. 건물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녀석을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박씨에게 경남 창원은 그 강아지로 기억하는 도시가 되었다. 창원뿐만이 아니었다. 그다음 현장에서도, 또 그다음 현장에서도 박씨는 유기견을 만났고 돌봤다.

사라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박씨도 여느 사람들처럼 무심히 지나쳤을지 모른다. 돌아서면 잊어버릴 수도 있었을 테다. 그러나 ‘사라오빠’는 그럴 수가 없었다. 박씨는 결국 2015년 사표를 냈다. 입사 6개월이 채 안 된 때였다. 유기견을 위해 할 일이 있을 것 같았다.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유기견의 존재를 알리고 입양될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을 모색했다.

설문조사부터 시작했다. “유기견이라고 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는지 물었어요. ‘노견’ ‘못생김’ ‘잡종’ ‘병든’ 이런 키워드들이 잡히더라고요. 당연히 그런 강아지라고 해서 유기해도 되는 건 아니죠. 그런데 버려지는 데는 정말 이유가 없어요. 이른바 ‘품종견’이나 ‘개린이(개+어린이 합성어로 강아지를 뜻함)’도 유기돼요.” 유기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조사 결과를 보니 갈 길이 먼 듯했다.

ⓒ시사IN 신선영
박도현씨는 커피 특성과 유기견의 성향을 맞춰서 모델을 세웠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7월 기준으로 반려동물 돌봄 인구는 1000만명을 넘어섰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버려지는 반려동물 수도 늘어났다. 유기 동물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동물단체들은 유기되는 반려동물이 연간 9만 마리에 이를 것이라 추정한다. 대부분은 거리를 떠돌다 사고를 당하거나 굶어 죽는다.

운이 좋은 녀석들은 구조되어 보호소에 들어가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다. 박씨가 유기견 시설 봉사활동을 다니며 보니 보호소마다 격차도 컸다. “견사를 청소하려고 케이지를 열면 안겨서 안 떨어지려고 애쓰는데 정말 마음이 아파요.” 보호소로 이송된 유기 동물 중 절반은 입소 1년 안에 안락사하거나 자연사로 생을 마감한다. 동물보호법에 따라 공고 후 열흘 넘게 주인이 찾아가지 않는 유기 동물은 소유권이 지자체로 넘어가 안락사시킬 수 있다.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거나 입양의 행운을 누리는 유기견은 소수다.

개를 돕는 게 왜 ‘사회적’이냐고요?

유기견에 대한 정보가 ‘애견인’을 넘어 일상적으로 이야기될 수는 없을까. 박씨는 커피에 주목했다. 기호식품이지만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커피 상품의 모델로 유기견을 쓰면 어떨까. 때마침 더치커피가 선물 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다. 더치커피는 차가운 물을 이용해 12시간 이상 우려내야 얻을 수 있어서 ‘커피의 와인’이라 불린다. 더치커피 병에 보호소의 유기견을 모델로 한 라벨을 만들어 붙여보자 싶었다. 모델로 나선 유기견이 입양되면 라벨 모델을 바꾸는 식이다. 브랜드 이름은 ‘도기더치(doggy dutch)’로 정했다. 사업계획서가 금세 완성됐다. 그 길로 바리스타를 찾아가 커피를 배웠다.  

때마침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사회적 기업 설립 지원사업 공모’에 선정되어 1년간 1500만원의 투자와 멘토링을 받을 수 있었다. 일정한 심사를 거쳐 최대 4년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데, 2년차인 올해는 선정되지 못했다. “애초에 어떻게 선정됐지 싶을 정도로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어요. ‘개를 돕는 게 왜 사회적이냐’라는 질문도 받았고요. 아직까지 유기 동물 문제는 사회문제로 인식되지 못하는구나, 이 상황을 대체 누가 만들었는데…. 부차적이고 작은 문제구나, 속상하고 안타까웠죠. 현행법상 반려동물은 생명이 아니라 ‘물건’이라서 그럴까요?”

그래도 지원금으로 한 번에 20ℓ 분량의 더치커피를 내리는 기구를 갖추고 홈페이지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더치커피를 내리는 데 사용하는 원두의 특성과 모델 강아지의 성향도 맞췄다. “크고 점잖은 견종은 무겁고 흙 맛이 나는 케냐AA로, 애교 많은 소형 견종은 깔끔한 수프리모로, 발랄한 강아지는 신맛이 있는 예가체프 원두로 만든 더치커피의 모델을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돈 주고 사진가를 섭외해 라벨을 만들었다. 여느 사진이 다 마찬가지지만 애정 없는 사진은 티가 났다.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물이 나오기 여러 번, 고민을 털어놓자 유기견 보호소를 통해 만난 몇몇 봉사자가 선뜻 박씨를 돕겠다고 나섰다. 그중 한 유기견 모임에서 알게 된 ‘조부장님(닉네임)’은 큰 힘이 되었다. 취미로 사진을 찍는 조부장님은 찍기 까다로운 피사체인 강아지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모델’이었던 유기견 속속 입양

라벨에 담을 수 있는 강아지는 소수다. 시간이 많이 드는 더치커피 특성상 대량생산이 어렵고, 라벨 인쇄소가 대량 출력만 가능해 다양하게 찍어내기도 어렵다. 그러나 굳이 ‘모델’이 되지 않더라도 정성껏 찍은 사진 한 장만 있으면 온라인 홍보와 입양 과정이 훨씬 수월하다. 조부장님과 함께 두어 달에 한 번씩 보호소에 촬영하러 갈 때면 최대한 많은 유기견을 카메라에 담아온다.

다행히 지난 1년간 도기더치 라벨 모델을 한 유기견의 상당수가 입양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는 ‘땅콩’이다. 이른바 ‘강아지 공장’인 번식장에서 종견으로 살다가 버려진 1.8㎏의 티컵 말티즈다. 구조 당시 무리한 번식 활동으로 인해 치아 몇 개가 빠진 상태였다. 철분 부족과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견생 4년차’에야 처음으로 가족을 만난 땅콩의 견주는 지금도 박씨에게 종종 사진을 보내 안부를 전한다.

‘사업’이라고 벌였지만, 실제 생계는 교재 편집 일로 이어가고 있다. 따져보면 수입보다는 지출이 더 많다. 사업 안정화를 위해 고민이 많다. 그 와중에도 도기더치로 생기는 수익은 유기견 관련 단체 활동에 사용했다. 여러 단체와 함께 바자회를 여는 식이다. 론칭 초기 행사장에 커피를 들고 나가면 이름 탓인지 ‘개가 마시는 커피’로 오인하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그래도 도기더치 라벨 속 유기견을 보며 “이렇게 예쁜 강아지가 유기견이에요?”라고 되묻거나 입양 정보를 묻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프로 영업러’가 된 듯 뿌듯해진다.

열세 살이 된 사라는 얼마 전 심장 문제로 큰 수술을 받았다. 박씨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생명을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자세를 생각한다. 동물을 다루는 태도야말로 한 나라의 문명 척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유기견을 입양해 청와대에서 기르겠다”라는 약속을 저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유기견 대신 ‘퍼스트 도그’가 된 진돗개 ‘새롬이’와 ‘희망이’, 그리고 그 자식인 강아지 다섯 마리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국면에서 외려 유기견이 될 운명에 처했다. 현재 새롬이와 희망이는 종견장으로 보내지고, 강아지 일부는 일반 가정에 입양되었다고 알려졌다. 동물보호 시민단체인 케어·동물자유연대·카라는 제19대 대통령에게 유기견 퍼스트 도그를 추천하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어쩌면 세계 최초로 유기견이 퍼스트 도그가 될 수도 있다. 그날이 오면 유기견에 대한 인식도 조금은 달라질까.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구호가 상식이 되는 날을 박씨는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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