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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걱정 잔치’는 끝났다

2017년 05월 18일(목) 제504호
양정민 (자유기고가)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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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지?” 오랜만에 만나는 어른들이 건네는 첫인사는 대개 이런 식이다. “에구, 요만할 때 봤는데 벌써 학교에 간다니” 할 무렵부터 지겹게 들어온 인사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런데 그 나이가 ‘서른’이 된 시점부터는 나이 묻기가 더 이상 인사에 그치지 않는다. “너도 이젠 다 됐다”라거나(세상에, 저는 건전지도 아니고 3분 카레도 아닌데요?) “너무 고르지 말고 누구라도 잡아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서른을 기점으로 가치가 낮아졌으니 ‘주제 파악’ 하라는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30대가 되면 정말 그럴까? 사실 10대, 20대에는 서른 이후의 여자로 산다는 일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드라마에서는 서른 살만 넘으면 ‘노처녀’라 무시당하고, 여자 아이돌은 서른이 넘기 전에 결혼이나 할는지 한탄하는 내용의 노래를 불렀다. 포털 사이트를 열면 서른을 넘긴 여자 연예인의 기사에는 ‘이모, 아줌마, 퇴물, 나잇값, 주책’ 운운하는 악플이 달렸다. 말에는 힘이 있어서 다들 그렇다고 하면 정말 그런가 보다 여긴다. 서른, 불행한 거구나. 안 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20대를 보냈다.

하지만 막상 서른이 되고 보니 놀라울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사람이 제야의 종이 울리거나 생일이 지났다는 이유로 돌변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내 가치가 떨어졌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감기에 걸리면 낫는 데 시간이 좀 걸리고, 무한리필 식당을 가도 본전을 못 뽑는 게 이따금 서글플 뿐이다. 대신 나에 대해서, 그리고 나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서 한층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됐다고는 자부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게 어울리는 것,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정켈 그림

10대와 20대가 고스란히 담긴 ‘미니홈피’를 열면 과거의 내가 부끄러워서 차마 끝까지 글을 읽을 수 없다. 대학 서열에 집착하고, 여성혐오적인 만화를 퍼나르면서 나는 가상의 ‘된장녀’가 아님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 ‘새내기 여대생 패션’이라며 인터넷에서 권하는 대로 어색하게 코디한 전신사진은 또 얼마나 우스운지. 물론 그런 시행착오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이제는 웹툰 <패션왕>에서 초라해진 자신의 외모를 한탄하며, 남자에게 ‘번호 따이는’ 20대 여대생을 질투하는 서른 살 여자 캐릭터를 봐도 불안하지 않다. 오히려 어처구니없음에 웃음부터 나온다. ‘번호 따이는’ 것 말고도 여성이 행복에 이를 수 있는 길은 여러 갈래다. 가장 좋을 때라고 사람들이 입을 모으던 20대에도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았는데, 반대로 이젠 정말 큰일이라던 30대에도 별일 없이 살고 있다. 주위를 둘러봐도 가정에서, 회사에서, 학교에서 힘껏 자기 삶을 일구어가는 30대 여성들이 참 많아서 든든하다. 모임에서 자신이 겪은 성차별과 여성혐오에 대해 성토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일도 훨씬 잦아졌다.

생각보다 무난히 30대의 안개가 걷히니, 이젠 40대가 아득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유능하던 여자 선배들도 아이가 생기면 하나둘 회사에서 사라진다. 친구들끼리 모여 자기 직장에 여성 임원이 몇인지 꼽아보면 손가락이 많이도 남는다. 텔레비전에서는 억척 아줌마 캐릭터 외에는 40대 여배우를 쓸 줄 모르는 것 같다. 그래도 예전만큼 불안하지는 않다. 평탄한 길은 아닐지라도 앞서간 여성들이 길을 닦아주고, 우리가 또 그 길을 넓히면서 삶은 계속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우리는 서로에게 용기가 될 테니까. 누군가의 상상 속에서 서른 살 여자는 나이 듦에 공포를 느꼈을지 몰라도, 현실의 여자들은 서른에 이렇게 좀 더 용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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