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문제를 이해하려면 무기 개발사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핵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지금 세계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무엇인지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핵 개발은 순서에 따라 이루어진다. 핵분열폭탄(원자폭탄·원폭)의 연구와 실험에 이은 실전 배치, 핵융합폭탄(수소폭탄·수폭)의 연구와 실험에 이은 실전 배치라는 단계를 밟아나간다. 이 과정에서 핵무기를 실어 나를 효과적인 운반체를 만들면 무기체계가 완성된다. 운반체로는 전폭기, 잠수함, 탄도미사일 등을 들 수 있다. 운반체에 얹어 장거리를 실어 나르려면 핵폭탄의 무게와 부피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지금 북한은 수소폭탄을 잠수함과 탄도미사일에 장착해 대륙을 넘어 날려 보낼 수준에 도달했다고 주장한다.

알려져 있다시피 미국은 1945년 7월 뉴멕시코 사막에서 영국과 공동으로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행해 세계 최초로 원폭 실험에 성공했다. 핵 개발은 철저히 국익만을 위한 벌거벗은 레이스였다. 옛 소련은 맨해튼 계획에 첩자를 심어 정보를 수집한 뒤 미국보다 4년 늦은 1949년 실험에 성공했다. 적어도 10~20년은 핵 기술을 독점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미국은 충격을 받고 수소폭탄 개발에 박차를 가해 7년 만인 1952년 실험에 성공했다. 하지만 기술 격차는 더욱 좁혀져 소련은 그로부터 1년 뒤인 1953년 수폭 실험 성공 사실을 세계에 알렸다.

ⓒ한성원 그림
핵 개발에 협력하고도 기술을 공유하지 못한 영국은 배신감에 떨며 독자 개발을 선택했다. 협력 과정에서 습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1952년 원폭 실험, 5년 뒤인 1957년에는 수폭 실험까지 마쳤다. 미국은 유럽 각국에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으면 안전하다며 핵 개발에 나서지 말라고 종용했으나 프랑스는 독자 노선을 걸었다. 프랑스는 정보조직을 풀가동해 1960년 원폭, 1968년 수폭 실험을 마쳤다.

중국은 소련으로부터 핵 기술을 넘겨받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으나 국익은 이념보다 진하다는 걸 실감해야 했다.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커나갈까 두려워한 소련이 1959년 핵 협정을 파기했다. 중국은 ‘바지는 못 입더라도 핵폭탄은 만들라’는 마오쩌둥 국가주석의 명령에 따라 미국과 소련에 첩자를 보내 닥치는 대로 핵 기술을 빼내기 시작한다. 미국과 소련은 손을 맞잡고 중국을 응징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중국은 1964년 원폭 실험에 성공한 뒤 앞서가던 프랑스를 추월해 1967년 수폭 실험까지 마쳤다. 앵글로색슨, 백인, 기독교 국가의 핵 독점 공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중국이 핵실험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접한 일본 정치인 가운데는 공포에 떨기는커녕 황색인종도 핵을 가지게 됐다며 환호작약하는 이들이 많았다.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할 때마다 중동의 여러 도시에서 환영 모임이 벌어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핵은 요상한 물건이다.

1965년부터 국제사회는 핵 확산 금지를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1968년 세계 각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서명했다. 하지만 기왕에 핵을 가진 5개국 이상으로 핵이 확산되어서는 안 된다는 국제사회의 다짐은 금세 빛이 바랬다. 1974년 인도가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인도와 세 차례나 전쟁을 벌인 적이 있던 파키스탄은 사활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이 1979년 전투기 수출을 중단한 데 이어 통상 자체를 금지하겠다는 압력까지 넣었지만 파키스탄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서방 국가들의 온갖 협박과 방해를 뿌리치고 파키스탄은 1998년 원폭 실험에 성공했다. 핵 기술은 결국 이슬람 세계로까지 넘어갔다. 파키스탄은 작고 휴대하기 간편한 전술핵무기를 대량 보유 중인데, 이 나라에서 극단주의자들의 세력이 날로 커가고 있어 국제사회의 근심은 깊어간다. 기술의 연원을 추적해보면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고 인도에 핵 기술을 흘렸고, 중국이 이에 발끈해 파키스탄에 핵 기술을 전수해줬을 가능성이 높다. 파키스탄의 기술이 북한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되므로 미국과 중국이 북한의 핵실험에 흥분하는 데는 다분히 희극적인 요소가 있다.

북한 핵기술은 6개월마다 ‘신상’을 내놓는다

인도와 파키스탄에 이어 이스라엘과 북한, 그리고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이란, 리비아 등이 은밀히 핵 개발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과 북한은 이미 핵무기 보유국 반열에 올랐고, 이란은 미국과 협상에 따라 잠정 중단,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리비아는 핵 개발 계획을 사실상 폐기한 상태이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이란의 핵에서 다시 연기가 나기 시작해 핵은 국제사회에서 여전히 뜨거운 현안이다.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 것은 옛 소련의 몰락이었다. 핵무기를 중앙아시아 위성국가 여러 곳에 흩어놓았던 소련은 해체하면서 많은 무기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국제사회에는 핵무기 암시장이 열렸다. 북한은 이 암시장에서 일부 핵탄두와 잠수함 발사 기술(SLBM)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라진 핵탄두 가운데는 일본의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것과는 비교하기 힘들 만큼 파괴력이 강한 것들도 있다.

핵탄두뿐만 아니라 원전이나 연구소, 병원 등에서 사용하던 핵물질도 함께 사라졌다. 이런 고위험 방사성 물질과 재래식 폭탄을 결합하면 이른바 ‘더러운 폭탄’을 만들 수 있다. 여행 가방만 한 크기의 이런 폭탄은 대도시의 여러 블록을 순식간에 오염시킬 수 있다. 사상자를 도우려고 뛰어드는 시민이나 의료진까지 위협하므로 말 그대로 더러운 폭탄이다. 이런 공격을 받은 도시는 여러 달 동안 공항·지하철·병원 같은 공공시설까지 폐쇄해야 한다. 테러리스트에게는 매력적인 수단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더러운 폭탄이 지상에서 터진 일은 없지만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을 뿐 시간문제’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유럽에서 체포된 IS 전사들이 핵물질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뛰었다는 증거가 여러 차례 수집되었다. IS는 2015년 5월 ‘핵물질을 구입하기에 충분한 자금을 확보했고 곧 영웅적인 결과를 끌어내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미국 대통령 가운데는 힘의 외교를 내세운 사람도 많지만 핵 확산 방지와 핵 추방을 위해 애쓴 이도 있다. 오늘날 세계를 위태롭게 만든 데에 미국 책임이 크다고 인정한 미국 대통령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버락 오바마다. 그는 지난해 5월 지구상에서 핵무기 공격을 받은 두 곳 중 한 곳인 일본 히로시마를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방문했다. 오바마는 재임 중 내내 핵무기 확산 방지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2010년 러시아와 전술무기통제조약(New START)을 맺었다. 일련의 핵 안보 정상회담을 열어 핵물질이 ‘나쁜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러시아에서 코카서스 산맥(캅카스 산맥)을 넘어 이란에 이르는 밀리터리 루트를 통해 핵물질이 이동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자금과 장비를 제공해왔다.

하지만 그 같은 오바마도 한 군데서만은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오바마의 감시와 경고 아래서도 북한은 핵 능력을 쉼 없이 키워왔다. 북한의 미사일은 한국이나 일본은 물론 미국 본토까지 위협하는 중이다. 북한의 핵 기술이 6개월마다 ‘신상’을 내놓을 정도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어서 미국 군사 전문가들은 트럼프 다음대의 미국 대통령은 정말로 미국 본토 방어를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북한 핵문제가 이렇게 커진 것은 오바마 대통령조차 이 문제가 워낙 다루기 까다로워 ‘구석에 처박아놓기(back burner)’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북한보다 이란 쪽에 주력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란은 오일과 가스를 수출해 먹고산다. 수출 금지와 국제 결제 시스템에서의 제외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이란은 최소한 북한보다는 국민의 눈치를 더 보는 편이다. 국제 제재가 강화돼 경기가 나빠지고 국내에서 불평의 소리가 나오는 걸 바라지 않는다. 핵 개발 동결 협상을 벌여 성과를 올리기에는 북한보다 이란이 훨씬 좋은 상대다. 북한은 이란에게는 먹히는 위협이 전혀 통하지 않는 나라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것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불행한 일이다. 그는 북한 핵이 문제라면 한국이나 일본도 핵을 개발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으로 말했다. 그는 이란과의 핵 협상 역시 폐기할 수 있다는 뜻을 비쳤다. 중앙아시아의 핵물질 거래를 규제하기 위해 편성된 예산마저 삭감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는 전 세계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유지하면서도 그에 따른 대가는 지불하지 않으려고 한다. 예사로 정치 문제와 경제 문제를 마구 뒤섞는 잘못을 범한다. 그의 장단에 맞추자면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과 사드 배치 비용, 그리고 한·미 FTA에 소파(SOFA) 협정까지 모두 한꺼번에 탁상 위에 올려놓고 일괄 협상을 해야 할 지경이다.

워낙 말이 왔다 갔다 해서 개별 사안에 대한 트럼프의 진의는 알 도리가 없다. 분명한 것은 체감하는 핵 위협이 커졌는데도 우리가 한·미 동맹이나 국제법에 기댈 수 있는 여지가 좁아졌다는 점이다. 지금 상황만 보면 한국은 이 눈치 저 눈치 볼 것 없이 핵 개발에 착수해야 정상이다. 프랑스처럼 과연 미국의 핵우산이 안전한지 의심해야 마땅하다. 미국이란 억지력이 약해져 북한 핵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된 일본이나 타이완, 그리고 아시아 여러 나라와 연대할 필요성도 커졌다. 모르긴 해도 일본의 아베 정권 내부에서는 미소 짓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트럼프가 북한 핵까지 비즈니스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한국이 독자적으로 움직일 여지가 커지는 이점은 있다. 빈사 상태인 한국 정부의 외교력을 살려낼 기회이다. 한국의 차기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의 직접 접촉 창구를 열어야만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북한을 적대해 우리는 북한의 김정은 정권에 대해 무지하기 짝이 없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주변국이 모두 핵 경쟁에 나서더라도 핵 보유국 지위를 우선 굳건히 하는 게 김정은의 확고한 뜻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그다음이어야 한다. 기막히게도 우리는 김정은에 대해 일본의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나 미국의 전직 프로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먼이 전해준 이상을 알지 못한다.

참고한 활자:〈X이벤트〉(반비), 〈이코노미스트〉 〈타임〉 〈군사연구(軍事硏究)〉 〈워싱턴포스트〉

기자명 문정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