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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에게 건네는 ‘조금 특별한 애정’

2017년 05월 20일(토) 제504호
김현 (시인)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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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태어난 자식에게 갖게 되는 애정과 별개로 처음 얻은 조카에게 갖는 애정이 있다. 그 애정을 조금 다른 식으로 표현한다면 조카의 삶은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5월에는 어버이와 스승, 종교와 역사, 부부와 어린이에 관하여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다. 지난해 이보라씨와 조일영씨가 신생아 조수아를 키우고 있을 무렵,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가 방영됐다. 작가인 딸이 엄마의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인생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되는 내용의 드라마였다.

수아는 보라·일영과 함께 어울려 지내는 친구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생겨난 아기다. 우리는 수아의 성장을 지켜보며 오랜만에 먹고사는 기쁨과는 또 다른 생의 기쁨에 빠졌다. 그건 노력하지 않아도 얻게 되는 새로운 기쁨이었다. 우리는 다들 살뜰한 이들이 되어 첫 조카를 챙겼다.

처음으로 태어난 자식에게 갖게 되는 애정과는 별개로 처음으로 얻게 된 조카에게 갖는 애정이 있다. 이 땅의 조카바보들은 때마다 책과 완구와 문구를 챙기는 것도 모자라 조카의 유치원 발표회에, 졸업식에 초대되고 심지어 참석한다.

나는 조카바보로 살지 않는다. 다만, 때마다 조카들의 책을, 조카들의 레고를, 조카들의 책가방과 실내화 주머니를, 조카들의 꼬까옷을 챙길 뿐이다.

ⓒ시사IN 윤무영
대형마트 장난감 코너에서 아이들이 블록 장난감을 고르고 있다.

조카들에게 나는 좋은 삼촌이 아니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고 조카들이 생각해도 그럴 것이다. 기껏해야 명절에 한 번 만나는 게 고작인데도 나는 조카들에게 곁을 쉬이 내주지 않는다. 나는 어린아이들의 소란스러움이 불편하고 어린아이들 때문에 나의 잠이나 휴식이 망가지는 것이 싫다. 나는 어린 조카들이 어서어서 자라서 사춘기에 접어들고 말수가 적어지고 생각이 많아지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일에 몰두하기를 바란다. 아마도 나는 그때쯤 조카들과 진짜 교류를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을 기대한다. 부모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나, 부모에게서 들을 수 없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나, 자기 삶은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니까 나는 다만, 조카들이 부모가 화목하게 일구어놓은 가정을 스스로 떠날 때까지 아픔 없이 평화롭게 지내길 바랄 뿐인 사람이다.

수아를 챙기는 허종윤씨와 조경민씨는 서로 다른 이모가 될 것이다. 짐작건대 종윤이는 수아가 담대한 아이로 성장토록 조언하는, 겉은 거칠고 속은 연약한 이모가, 경민이는 수아가 몽상과 로맨스를 아는 아이로 자라나도록 본인이 먼저 많이 먹고 많은 꿈을 꾸는 이모가 될 테다. 나는 수아가 내가 살지 못한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조언하는 (삼촌보다) 이모가 되고 싶다. 이를테면 언젠가 조카바보가 되는 삶이 더 다정한 삶이라는 것을, 또는 엄마나 아빠처럼 노래방 테이블에 올라가는 기쁨을 아는 인생이야말로 살맛나는 것임을, 또는 모든 폭력과 혐오와 차별에 각자의 방식으로 맞설 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성장한다는 것을, 이모들로서 우리는 이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한 다음에 아마도 부모와는 또 다르게 수아에게 요청하게 될 것이다. 수아야 이모랑 맥주 한잔 하자, 수아야 이모랑 여행 좀 가자, 수아야 이모랑…. 그러고는 수아에게 듣고 싶다. 내가 이모들 자식이야? 그런 건 이모 자식들한테 하자고 그래. 그럴 때 마치 걸려들었다는 듯이 외치고 싶다. 야, 우리가 널 업어 키웠어!

보라와 일영이는 수아를 키우면서, 나와 친구들은 본인 인생에 상의도 없이 관여된 조카들을 지켜보면서, 아마도 수없이 많은 인생의 상투적인 면모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인생의 클리셰에 익숙한 부모와 이모들이 되어 자식에게, 조카에게 ‘우리 인생을 좀 뻔하지 않게 살자’라고 말하는 어르신들이 된다면, 우리 모두의 인생은 한결 친애할 만한 것이 되지 않을까. 그러니 수아야, 현서와 현우야(둘은 내 혈연 조카이다), 늘 부모와 이모와 삼촌들의 허를 찌르는 인생을 살아주길. 그 인생이 너희를 부모와 자식과 조카들에게서 잠시 멀어지게 할지라도 담대히, 꿈꾸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길. 우리가 종종 잊더라도, 마치 너희가 그걸 배우며 자랐음을 증명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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