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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가 ‘디비졌다’

2017년 05월 16일(화) 제505호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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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계열 정당 후보자가 PK 지역에서 대선 득표율 1위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남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2위였지만 1위 홍준표 후보와 득표율 차이는 겨우 0.5%포인트였다.

아침부터 날이 궂었다. 우산을 나눠 쓴 노부부가 비에 젖은 골목에 들어섰다. 둘이 쓰기엔 우산이 너무 작았다. 권신자씨(가명·75)의 굽은 등 뒤로 빗물이 자꾸 흘러내렸다. 권씨의 발걸음은 투표소로 향했다.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서전로 57번길 29, 전포2동 제4투표소. 50㎡가 채 되지 않는 건물 1층 주차장에 조그맣게 투표소가 마련돼 있었다. “어데서 왔다꼬? 뭐할라 묻나?” 누굴 뽑을 생각이냐고 묻자 권씨가 손을 내저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일인 5월9일, 이 투표소를 찾은 주민은 총 1774명, 이 가운데 42.5%인 754명이 기호 2번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전포2동에서도 유독 오래된 주택이 많은 동네다.

전포2동 제5투표소는 제4투표소에서 걸어서 7분 거리인데도, 풍경이 달랐다. 서면 롯데캐슬스카이 아파트 101동 1층. 투표소 인근은 아이들 목소리로 시끌벅적했다. 두 아이와 함께 투표소를 찾은 김진주씨(가명·34) 역시 누굴 뽑았느냐는 물음에 쉽게 답하지 않았다. “애들 생각하고 투표하는 건 부모들 마음이 다 똑같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 김씨가 칭얼대는 아이들을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 제5투표소 전체 유효 투표수는 총 2795표, 이 가운데 1073명(38.4%)이 기호 1번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손을 들어주었다. 전포2동 전체 유효 투표수는 1만3349표, 이 중 득표율 1위는 37.78%를 얻은 문재인 후보였다. 2위 홍준표 후보는 노인들이 많이 사는 구역에서 지지를 얻었지만, 전포2동 전체를 놓고
ⓒ연합뉴스
대선 하루 전날 부산 서면을 찾은 문재인 후보. 젊은 지지자들이 많이 모였다.
보면 득표율이 34.47%에 그쳤다. 부산시 전체 득표율(문재인 38.7%, 홍준표 32%)과 비슷한 결과다.

PK(부산·울산·경남)가 ‘디비졌다’. 민주당 계열 정당 후보자가 PK 지역에서 대선 득표율 1위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비록 경남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2위에 그쳤지만, 1위 홍준표 후보와의 득표율 격차는 겨우 0.5%포인트였다. 지역별 개표 결과를 지도에 표기하면 부산과 울산은 푸른색(문재인 후보)으로, 경남은 붉은색(홍준표 후보)으로 표시된다. 하지만 부울경을 합한 득표율은 문재인 후보가 앞섰다. PK 전체 유효표 511만6710표 가운데, 문 후보는 총 193만4652표(37.81%)를 확보해 171만4577표(33.5%)를 얻은 홍 후보를 넘어섰다. 보수 표심의 이동을 노리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득표율 15.47%에 그쳤다.

PK 민심은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한 것일까? 대선 이틀 전인 5월7일부터 선거일인 5월9일까지 이 지역 주민을 만나 표심을 물었다. 지지하는 후보와 이유는 달랐지만, 공통적인 대목이 있었다. 세대에 따라 표심이 나뉜다는 것이다. 부산시 수영구 광안동에서 만난 강유석씨(42)는 “나이대에 따라 갈리죠 여기는. 60대 이상은 그대롭니다”라고 말했다. 사전투표에서 이미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강씨는 “아직도 어디서 문재인 좋다고 말을 못해요. 젊은 사람은 몰라도 나이 든 분들은 그대로니까”라고 덧붙였다.

세대 간 표심 차이는 유세 마지막 날인 5월8일 거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재인·홍준표 두 후보 모두 마지막 유세 일정을 부산에서 시작했다. 오전 10시20분 부산역 앞 유세장에 도착한 홍 후보는 전날 불거진 문용식 전 문재인 캠프 가짜뉴스대책단장의 SNS 발언을 물고 늘어졌다. 문 전 단장은 5월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PK 바닥 민심이 홍 후보에게 쏠리고 있다며 ‘패륜 집단 결집’이라는 표현을 썼다. 홍 후보는 “내일(5월9일) 부산시민 모두가 투표장으로 가서 친북 좌파 세력들 심판을 해야 한다. 자기 안 찍어준다고 패륜 집단이라고 하고 그런 못된 사람이 어디 있나”라고 외쳤다. 자유한국당 유기준·조경태·김정훈 등 부산 지역구 의원들도 “어버이날 최고의 선물은 홍준표를 찍는 것이라고 자식들에게 전하라”며 지원 유세를 펼쳤다.

ⓒ연합뉴스
5월3일 부산 비프(BIFF)광장로에서 홍준표 후보가 선거 유세를 벌이고 있다.
동서로 나뉜 경남 지역 ‘세대’ 표심


부산역 앞에 모인 홍준표 지지자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대다수가 50대 이상 중·노년층이었다. 유세장은 서울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의 풍경과 흡사했다. 고성과 욕설도 오갔다. 1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조원진 새누리당 후보의 유세차에 일부 지지자들이 소리를 질렀다. “저놈은 왜 아직도 사퇴 안 하나 몰라.” 조원진 후보가 대선에서 타깃으로 삼았던 ‘태극기 민심’은 이미 홍 후보에게 쏠려 있었다.

2시간 뒤 서면역 인근에서 열린 문재인 후보의 유세 현장은 정반대 분위기였다. 1000여㎡를 가득 채운 인파 대다수가 20~30대 젊은 층이었다. 문 후보가 등장하기에 앞서 연단에 오른 안민석·김영춘·최인호 의원 등은 홍 후보가 자신의 장인을 ‘영감탱이’라고 지칭한 문제를 언급했다. 다른 지역과 달리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 대한 언급이나 비판은 찾기 어려웠다. 문 후보도 이날 “촛불과 박근혜 탄핵·구속을 거치면서 ‘저 사람들, 무슨 염치로 표 달라고 할 수 있겠나’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아무런 반성 없이 오로지 정권 연장만을 위해 국정 농단 세력들이 다시 뭉치고 있다”라며 홍 후보를 견제했다. 그는 “부산이 일어서면 역사가 바뀐다. 사상 최초로 영호남에서 지지받는 동서 화합 대통령 누굽니까”라는 말도 덧붙였다. PK를 기반으로 지역주의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선거 결과, 세대별 지지 성향의 분리는 경남 지역으로도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문재인 후보가 고르게 표를 얻은 수도권·호남과 달리, PK는 해당 지역의 연령대별 인구 분포에 따라 표심이 달랐다. 문 후보가 홍 후보에게 앞선 창원시(의창구·성산구·진해구)·김해시·거제시·양산시는 경남에서도 상대적으로 젊은 인구가 밀집한 지역이다. 경남 서부 지역은 여전히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젊은 층이 몰려 있는 동부 공업도시·배후도시 지역은 표심이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부산에서 개인택시를 운행하는 신충남씨(72)도 “홍준표가 정치를 오래 한 사람이라 그나마 낫겠다 싶은데, 창원이랑 사천으로 넘어간 자식들(40대)은 이번에 문재인 찍겠다고 하더라. 요즘에는 부산에 살던 젊은 사람들이 죄다 김해·양산·창원·거제 등지로 많이 나간다”라고 말했다. 5월8일 부산시민공원에서 만난 민철환씨(62)는 PK 지역이 TK(대구·경북)에 비해 인구 유출입이 잦다고 설명했다. “거제·창원 이런 데는 워낙 공장이 많으니까 서울서 내려온 사람도 많다. 부산도 옛날부터 먹고살려고 여기저기서 넘어온 사람들이 꽤 많다. 고향이 부산 아닌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부산시민들에게 민주당 후보의 선전은 조금씩 익숙해져가는 풍경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0대 총선 때 부산 지역 18개 선거구 가운데 5곳에서 당선자를 배출했다. 인근 지역인 김해·양산에서도 총 3명이 당선되었다. 지역주의가 점차 옅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사전투표에서 홍준표 후보를 찍었다는 안기원씨(가명·68)는 “옛날에는 한나라당 깃발 들면 다 찍어줬는데, 사람들이 지난번 총선 때 한번 뽑아봤으니까 문재인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사라진 것 같더라. 50대만 돼도 우리랑은 생각이 많이 다르데. 나는 여전히 (문재인 후보가) 좀 찜찜하던데…”라고 말했다.

대선 득표율만 따져도 지역주의 구도가 점차 완화되는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산·울산·경남에서 각각 29.86%, 35.27%, 27.08% 득표율을 기록했다. 10년 뒤인 2012년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가 얻은 득표율은 각각 39.87%, 39.78%, 36.34%로 이전보다 상승했다. 이번 제19대 대선(부산 38.7%, 울산 38.1%, 경남 36.7%)이 다자 구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PK에서 민주당 후보에 대한 거부감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PK가 갑자기 ‘디비졌다’라기보다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지지층이 조금씩 확장된 셈이다.

“그래도 여전히 문재인은 좀 찜찜하던데…”


이런 흐름은 대선 전부터 조금씩 감지되었다. 선거운동 기간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가 대세론을 형성했다. 5월8일 구포장터에서 만난 한 50대 여성은 “아직 누굴 찍을지 결정을 못 내렸다. 그래도 기왕 투표하는 거 될 사람 밀어주는 게 낫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사표 방지 심리 역시 PK 지역주의에 균열을 내는 데 일정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대선 직전에 치러진 4·12 재·보궐 선거 결과도 문재인 후보 캠프에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경남 양산시 제1선거구에서 김성훈 후보가 경남도의원으로 선출됐다. 김해·거제·양산 등지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소속 기초의원이 4명이나 당선됐다(재·보궐 선거가 열린 PK 지역은 총 9개, 자유한국당 3명, 바른정당 1명, 무소속 1명 당선).

그러나 PK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이 앞으로도 계속 확장될 것이라고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탄핵으로 인한 조기 대선에다, 부산 출신 대선 후보라는 조건에도 여전히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층이 만만찮다는 점 또한 이번 선거에서 드러났다. 이번 대선에서 PK 대전이 치열했던 만큼 내년 지방선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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