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미군 X밴드 레이더 기지 반대·교토 연락회’ 회원들이 X밴드 레이더(AN/TPY-2) 기지를 둘러보고 있다.

지난 4월28일 〈산케이신문〉 계열사인 후지 뉴스 네트워크(FNN)는 “일본에도 (사드를) 배치할 필요성이 있다”라고 강조한 해리 해리스 미국 태평양사령관의 발언을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FNN는 안보 이슈와 관련해 사실상 아베 정권의 ‘관보’ 구실을 하는 매체다.

하지만 해리스 사령관의 이 같은 주장이 일본의 차기 지도자 선택에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 국민적 이슈로 떠오를 가능성도 높지 않아 보인다. 자위대가 안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음에도 “군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믿는 일본에서, 사드 도입은 안보가 아닌 경제 이슈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즉, ‘평화 유지의 존폐가 걸린 문제’가 아니라 ‘예산 문제’로 접근해 배치를 당연시하는 것이다. 아마도 ‘군사적 억지’ 전략에 저항해온 원내 35석의 일본공산당만이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보일 것이다. 태평양전쟁 패전 이후 오늘날까지 일본의 보수 정치를 주도해온 자민당은 무기 체계와 관련한 모든 쟁점을 가급적 예산 문제로 치환했다. 논쟁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다. 또 자민당의 안보 노선은 한·미·일 삼각동맹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지닌 일본 재계의 이익과도 연동된다.

일본에서는 10년 전부터, 사드 무기 체계의 일부인 X밴드 레이더를 이미 가동 중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퇴임을 3개월 앞두고 있던 2006년 6월, X밴드 레이더가 아오모리 현 샤리키(車力) 항공자위대 주둔지에 처음 배치됐다. 그때도 언론은 크게 주목해서 보도하지 않았다. 일본의 메이저 언론사가 사드 배치 문제를 공론화한 것은 현 부총리인 아소 다로가 총리로 재임하던 2009년 4월5일, 북한이 광명성 2호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강행한 뒤였다. 2009년 7월5일 〈마이니치신문〉은 일본 정부가 전국 순간 경보시스템(J-ALERT) 외에 미사일 방어력 강화를 위해 사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일본 사회에 파문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두 가지는 성격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전국 순간 경보시스템은 통신위성과 전국 지자체의 방재 행정 무선, 그리고 유선방송 전화를 연결해 주민들에게 실시간으로 긴급 정보를 전달하는 구조이다. 소방청이 개발과 정비를 주도한 이 시스템은 시험운용을 거쳐 2007년 2월9일 일부 지자체에서 활용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에게 피난이나 예방 조치 등을 알려 피해를 최소화하고 지자체의 위기관리 능력을 향상한다는 취지에 따라 소관 부처는 총무성이 맡았다. 즉, 치안·안전 분야에 최대한 중점을 둔 시스템 덕에 주민들은 대규모 자연재해, 탄도미사일 공격 등과 같은 정보를 직접적으로, 최대한 빨리 전달받게 되었다.

사드는 전국 순간 경보시스템과는 다르다. 먼저 소관이 방위성이다. 방위성은 1954년 7월1일 창설된 이래 총리성·내각성의 외국인 방위청으로 이어오다가 아베 신조가 처음 총리 취임 4개월째를 맞은 2007년 1월9일 방위성으로 격상되었다. 이는 일본의 재무장과 관련해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당시에도 아베는 ‘안전보장의 법적 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를 열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헌법 제9조(평화헌법)에 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마이니치신문〉의 사드 배치 관련 보도를 놓고 이상기류가 포착되자 바로 다음 날 방위성은 차관 발표를 통해 “구체적인 (사드 배치) 검토는 하지 않고 있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그로부터 2개월 뒤 들어선 민주당 정권은 국정 난맥에 빠졌다. 관료들과의 협조에 실패하고 국정 운영도 우왕좌왕했다.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맞아 ‘위기관리 능력 부재’라는 비판에 직면하며 민주당 정권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사드 등 무기 체계 도입을 둘러싼 환경에도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북한의 로켓 발사 실험과 핵실험이 빈번하게 이뤄지면서 ‘일본판 북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자민당이 내세우는 군사안보 노선, 이른바 ‘적극적 평화주의’ 정책의 자양분이 되었다.


ⓒEPA지난해 10월 열린 일본 자위대 연례 열병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사열하는 모습.


‘안보 장사’ 아베 정권 사드 배치 서두를 듯


2012년 말 정권을 탈환한 아베 신조는 이듬해인 2013년 2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만난 정상회담 자리에서 X밴드 레이더 두 기를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2012년 16회였던 미·일 합동군사훈련은 2013년 24회로 늘어났다. 이와 함께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개편하려는 아베의 야망도 구체화되어갔다.

지난 1월13일, 아베의 최측근인 이나다 도모미 방위장관이 사드가 배치된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를 시찰했다. 이나다 방위장관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망은(忘恩)의 무리”라고 막말을 퍼부었으며, “일본의 독자적 핵 보유를 단지 논의나 정신론이 아닌 국가 전략으로 검토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던 ‘화려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일본의 사드 배치 기정사실화로 이어질 수 있는 일련의 움직임과 관련해 아파나시예프 주일 러시아 대사는 “사드의 일본 배치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군사 균형을 무너뜨리고 북동아시아의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해 경제적 기대를 하고 있는 러시아의 이 같은 경고가 실질적인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식 업무를 시작한 5월10일, 사실상 일본 경단련(한국의 ‘전경련’에 해당)의 기관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친북 노선으로 한국은 끝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문재인 대통령의 새 대북정책이 기존 한·미·일 동맹의 ‘북한에 대한 포위망 구축정책’에 어긋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주된 내용이었다. 문재인 정부를 바라보는 일본 내의 보수적 시각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한국 내 사드 배치 문제를 재논의하면, 아베 정권은 이를 근거로 일본 내 사드 배치를 더 신속하게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1+1 스캔들(아키에 스캔들, 쓰키지 어시장 이전 문제 등), 일본판 테러방지법인 공모죄(테러 등 준비죄 법안)에 대한 국민적 저항 등 복병을 만나게 된 아베 정권으로서는 ‘안보 장사’로 이 난국을 벗어나려 할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이 어떤 태도를 취하든 아베를 필두로 한 일본의 이른바 ‘적극적 평화주의’ 세력은 한동안 남는 장사를 하게 되리라는 사실이다.

기자명 홍상현 (〈게이자이〉 한국특파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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