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목적지를 말하자 서울 중랑구 토박이라는 백발의 택시 기사가 계속 물었다. ‘그런 데’를 혼자 왜 가느냐고 했다. 요새 이상하게 거기로 가자는 사람이 많다고도 했다. 대답이 없자 혼자 중얼거렸다. “거기 망했는데 이상하네….” 서울 중랑구 망우로70길 103.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곳은 놀이공원이다. 정확히는 용마랜드라는 놀이공원이었다.

사람들은 용마랜드가 망했다고 했다. 어느 언론에서는 경영난 때문이라고 했고, 또 어디서는 시설 노후화 탓이라고 했다. 우범지대라는 소개도 빼먹지 않았다. 물론 ‘영광의 시절’도 있었다. 1985년 개장한 용마랜드는 당시로서는 최대 규모의 눈썰매장과 야외수영장을 갖춘 명실상부한 지역의 대표 테마파크였다. 여러 언론을 종합하면 용마랜드는 ‘대충’ 2011년께 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용마랜드 입구를 지키는 현준수 대표(61) 처지에서는 이 같은 기사들이 일일이 고치기 귀찮아 내버려두는 ‘절반의 진실’이다. 현 대표는 1996년 용마랜드를 인수했다. 인수 직후 리뉴얼에 들어갔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디지로그(digilog)형 테마파크로 변경할 계획이었다. 자동차 경주, 해저 탐험, 패러글라이딩 등을 영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기 위한 투자가 진행됐다. “지금 가상현실(VR) 같은 말이 뜨고 있는데, 20년 전에 그걸 구현하려고 했으니 얼마나 빨랐던 거예요.”

현씨가 대표로 있는 다해레일시스템은 1982년 설립됐다. 1996년 용마랜드를 인수하면서 사무실도 이곳으로 옮겼다. 현씨는 ‘대한민국 테마파크계의 원로’다. 다해레일시스템이 걸어온 길이야말로 한국 테마파크의 역사다. 국내 놀이공원이며 테마파크라면 관여하지 않은 곳이 없다.

용마랜드 리뉴얼 공사는 순조로운 듯 보였다. 지금이야 웬만한 놀이공원에서 볼 수 있는 용마랜드의 회전목마는 미국 찬스 사 제품으로 당시에는 국내에 한 대밖에 수입되지 않은 ‘희귀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공사는 1999년에 중단됐다. 3000평(약 9900㎡) 규모의 용마랜드가 속한 부지는 4만8000평에 달하는 평산 신씨 문중 땅의 일부를 전대(재임차)해서 쓰는 것이었다. 용마랜드 밖에서 짓고 있던 스포츠랜드가 준공 취소되면서 같은 부지에 속한 용마랜드 역시 허가가 취소됐다. 인수하겠다는 투자자가 나서지 않는 이상, 이미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던 현 대표 처지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현씨가 사활을 걸고 뛰어들었지만 20년간 ‘한 번도 제대로 영업해보지 못한’ 용마랜드가 최근 테마파크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반전은 2013년 가수 백지영씨가 싱글 앨범 〈싫다〉의 뮤직비디오를 용마랜드에서 찍으면서 시작됐다. 이후 크레용팝·아이유·방탄소년단·레드벨벳· 엑소·갓세븐 등 유명 가수들이 앨범 재킷 사진이나 뮤직비디오를 찍은 장소로 입소문을 탔다. JTBC 드라마 〈무정도시〉, SBS 드라마 〈황금의 제국〉, 영화 〈표적〉 등을 촬영하기도 했다.

ⓒ시사IN 신선영관광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배경인 회전목마는 용마랜드의 트레이드마크다. 유명 가수들이 이곳에서 화보를 촬영하기도 했다.

SNS가 이끈 ‘제2의 전성기’

용마랜드에는 20년 전 세월이 그저 멈춰 있기만 한 게 아니라 ‘늙어가며’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자고 나면 때려 부수고 새로 짓는 ‘토건공화국’에서 20년의 세월을 간직한 공간은 새로운 세일즈 포인트가 됐다. 현씨는 “여기가 지금 거대한 야외 스튜디오가 됐거든요. 요즘은 이것도 테마파크의 주제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평일 30명, 주말 100명 이상이 단지 사진 촬영을 목적으로 용마랜드를 방문한다. 입장료는 없지만 시설이용료 명목으로 현금 5000원을 받는데도 찾아오는 발걸음은 점점 더 느는 추세다. 딱히 편의시설도 없고 카드 결제도 되지 않는 불편함을 이들은 기꺼이 감수한다. 일단 입장하면 머무는 시간은 자유라는 점도 ‘출사족’들에게 인기다.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사장님도, 코스튬플레이(코스프레)를 즐기는 이들도 스튜디오 대신 용마랜드를 찾는다.

한류 스타의 영향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SNS가 용마랜드의 ‘제2 전성기’를 이끌었다. 방문객도 국적을 가리지 않았다. 5월10일 오후만 해도 미국에서, 타이완에서, 싱가포르에서 여행자들이 찾아왔다. 가이드북에 따로 소개된 곳도 아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보고 왔다”라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싱가포르의 한 여행사는 아예 용마랜드에서 웨딩 촬영하는 상품을 판매하기도 한다고 현 대표가 귀띔했다. 낮 시간에 붐비는 만큼이나 조명이 켜진 밤 시간을 이용한 웨딩 촬영이나 프러포즈용 대관도 많다. 방문객이 몰리면서 관리인의 얼굴도 덩달아 밝아졌다. 사진 찍는 이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찍기 좋은 포인트를 알려주거나 직접 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현 대표도 덕분에 몇 년 새 사진 실력이 늘었다.

2015년 독립 잡지 〈더쿠(THE KOOH)〉는 제6호를 발행하며 덕후의 습성 중 하나인 ‘배회’를 주제로 삼았다. ‘서울 미스터리 가이드북’을 표제로 이상한 장소 열 곳을 뽑아 소개했는데, 그중 한 곳이 바로 용마랜드다. 소개대로 입구는 과연 을씨년스럽고, 어딘가 모를 스산한 기운도 느껴진다. 그러나 부식된 철문을 열고 한 걸음 들어가는 순간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현지인에게도 관광객에게도 용마랜드는 서울을 재발견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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