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다머〉는 미국 최악의 연쇄살인마 제프리 다머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 더프 백더프의 말에 따르면, 책 한 권이 완성되기까지 무려 20년이 걸렸다. 저자는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 제프리 다머가 저지른 범죄가 세상에 알려진 뒤, 오랜 시간에 걸쳐 다머를 집요하게 추적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수집한 수많은 자료 중 일부라고 할 수 있는 다머의 학창시절만을 만화로 옮겼다. 저자는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재생산된 다머의 끔찍한 살인 행각 대신 그의 성장기에 초첨을 맞췄다.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다머와 학창시절을 공유했던 저자는, 뒤늦게나마 그를 살인마가 아닌 ‘친구’로 이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만화의 초반부에 다머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내가 본 가장 외로운 아이.” 학교에서 다머는 투명인간과 다를 바 없는 외톨이였다. 집에서도 외톨이였다. 부모는 다머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고 사소한 일로 자주 다퉜다. 이 불행한 소년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그나마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몸집이 부쩍 커진 다머는 뇌성마비 환자 흉내를 곧잘 냈는데, 그런 기이한 행동이 다른 친구들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친구들은 그의 행동을 우스갯거리로만 삼았을 뿐이다. 저자 자신도 다른 친구들과 다를 바 없었다고 고백한다. 가령 당시 그의 기이한 행동은 뇌성마비 환자가 아니라 엄마의 발작 증세를 흉내 낸 것이었는데, 저자는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다머에 대한 다른 친구들의 무관심은, 만화 속에 묘사된 다머를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죽은 동물을 수집하고, 지나칠 정도로 술을 마시며, 비틀린 성적 욕망을 가진 다머에게 그 누구도 먼저 다가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다머는 친구들과 어떻게든 가까워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친구들이 자기를 잠깐의 놀잇감으로 소비했다가 잊을망정, 다머는 친구들에게 기꺼이 웃음거리가 되어주었다. 정말 잔인했던 건, 어쩌면 다머가 아니라 그의 외로움을 이용한 친구들이었다. 그렇다고 다머의 잘못이 용서될 수는 없다. 저자는 감정을 감추지 않은 채로 묻는다. “빌어먹을 어른들은 그때 다 어디에 있었던 걸까?”

〈내 친구 다머〉 더프 백더프 지음, 강수정 옮김, 미메시스 펴냄

“내가 본 가장 외로운 아이”

가정과 학교, 그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할 수 없었던 다머가 지나가던 개를 죽이려다 끝내 놓아주는 장면은 무섭기보다 슬프다. “그때를 마지막으로 그는 두 번 다시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라는 섬뜩한 문장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저자는 그 장면에서 앞으로 다머가 저지를 비극을 모두 함께 방관한 것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비단 그 장면뿐 아니라 저자는 만화 곳곳에서 같은 호소를 반복한다. 그때 그 시절 누군가 다머에게 조금이라도 진정 어린 관심을 보였다면 어땠을까. 안타깝게도 실제로는 아무도 다머를 알려 하지 않았고 관심조차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저자는 결코 친구가 될 수 없었던 친구의 이야기를 만화로 만들었다. 그는 범죄자가 된 다머를 절대로 동정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만화 속에서 자신과 다머를 반복적으로 교차시키면서, 그 시절 다머에 대한 죄책감과 연민을 드러낸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온 자신의 평범한 유년 시절이 외로운 다머에겐 얼마나 괴로운 시간이었을까. 물론 〈내 친구 다머〉는 독자가 다머를 순순히 동정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딱히 잔인한 장면은 없지만, 이 투박한 그림체의 흑백 만화는 여간 섬뜩하지 않다. 그건 20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완성한 디테일의 힘일 것이다.

기자명 송아람 (만화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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