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일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 리사 심슨이 만들어진 것은 아마 가벼운 의도에서였을 것이다. 깡촌의 무식한 시골뜨기들 사이에서 돌연변이 같은 똑똑한 캐릭터, 그래서 극이 막장으로 흘러갈 때 반론을 제기하고 갈등을 불러일으켜서 재미를 더해줄 만한 존재가 필요했을 거다. 그렇게 미국 중부 어딘가에 존재하는 작은 도시 스프링필드에 살고 있는 심슨 가족의 장녀이자 둘째인 리사 심슨이 탄생했다.

리사는 모든 과목에서 A를 받는 최고의 모범생이자, 테스트도 거치지 않고 합격한 멘사 회원이며, 불교 신자이고, 예술에 조예가 깊고 환경 파괴를 걱정하는 채식주의자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먼치킨’이라 할 수 있는 캐릭터인데 극중에서 리사의 대우는 영 시원치 않다.

누군가는 “〈심슨 가족〉 캐릭터 중에 그런 대우 안 받는 사람도 있어?”라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리사가 겪는 고난은 여타 등장인물들과 달라 보인다. 리사는 스프링필드 안에서 사건이 터져 나쁜 방향으로 흘러갈 때 그것을 저지하려는 유일하고도 상식적인 캐릭터로 나온다. 그러나 이런 리사의 행동은 다른 등장인물들과 자주 충돌하고 때로는 사건을 크게 만들거나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

스프링필드에 천사 모양의 화석이 발굴되자 사람들이 천사상을 집에 모시고 숭배하는 일이 벌어진다. 리사가 천사 화석이 실제로 천사가 아님을 밝히지만 주민들의 화를 돋워 스프링필드의 모든 과학 관련 건물이 파괴되는 참사로 이어진다(시즌 9-8화). 심지어 리사의 정치적 공정성이나 페미니즘 성향은 정도가 지나쳐 강박증 환자 같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공격하기도 한다. 가족과 마을 사람들에게 채식을 끊임없이 권유하다 결국 호머의 바비큐 파티를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린다든가(시즌 7-5화), 막내 매기가 자신보다 똑똑하다고 판정을 받자 질투심에 낱말 퀴즈를 하면서 일부러 틀린 의미로 알려주기도 하고(시즌 15-13화), 풋볼은 여자들이 하지 않는 운동이니까 반드시 참여하겠다고 들어간 플랜더스네 풋볼 팀에 여성 멤버가 이미 네 명이나 있어서 충격을 받는 등(시즌 9-6화), 리사는 극중에서 자신과 같은 상식인을 놀리고 풍자하는 캐릭터로 자주 소비된다.

〈심슨 가족〉은 무식하고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주로 풍자하지만 그런 이들을 무시하거나 비웃는 리사를 풍자하는 일도 많은데, 이는 대체로 전자보다 정도가 더 날카롭고 가혹하다. 이런 점은 현실에서 리사에 대해 시청자들이 가진 인식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실제로 등장인물 중 가장 큰 안티 팬덤을 거느린 캐릭터가 리사다. 시청자 대부분은 리사가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 사건을 해결하는 에피소드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간과한다(리사는 심지어 번즈 사장의 원자력발전소마저도 두 번이나 구해줬다!). 그건 아마도 시청자들이 〈심슨 가족〉이 가장 크게 밀고 있는 주제인 ‘재미’에 비중을 둔 에피소드만 주로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리사가 극중에서 받는 대우와도 다시 많은 부분 중첩된다. 가장 정상인이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홀로 존재하기에 잘못된 부분만 튀게 느껴지는 그런 사람 말이다.

미움은 받지만 불편한 진실 일깨워주는 존재

정치적 공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페미니스트, 자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미국인, 환경운동에도 관심이 많은 채식주의자,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양심적 지성인의 모든 부분을 몰아서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에 리사는 외롭다. 스프링필드에서 가장 불행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시작이 가벼웠다 한들 여덟 살짜리 여자아이가 짊어지기에는 너무 가혹한 현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기에 리사 심슨은 더욱더 빛이 난다. 제작진의 애정이 어려 있지만 놀림이 분명한 대우를 받아도, 리사는 좌절하지 않고 본인의 신념을 안고 계속 나아간다. 때로 처음 만들어진 의도를 훨씬 뛰어넘는 커다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사람들에게 반론을 제기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면, 리사 너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태클을 거는 사람일 거야. 1983년 5월9일 리사 심슨이 탄생했다.

기자명 중림로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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