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위해 이씨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지난 4월, 20일 만에 만화 300쪽을 그렸다. 오는 6월29일 ‘조색기’라는 제목으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을 통해 출판될 예정이다. 조색기(調色機)는 페인트의 색을 만드는 기계다. 흰색 페인트에 미량의 잉크 몇 방울이 떨어져 색이 탄생하는 것을 보고, 이씨는 자신의 병을 생각했다. “처음에는 우리 모두 흰색 페인트, 즉 병이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한번 잉크가 떨어지면 색깔이 생기고, 다시는 흰색으로 돌아갈 수 없다. 아무리 괴롭고 병든 색이더라도 어쨌든 고유의 색깔이니, 그 색깔로 잘 살아남는 방법을 강구하는 게 중요하다.”
〈조색기〉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나 감정 등 정신질환을 앓으며 겪은 에피소드를 다뤘다. 자신의 병을 바퀴벌레로 의인화해 어두운 주제를 재미있게 풀었다. 이씨는 “정신질환을 앓았거나, 앓고 있거나, 정신질환에 관심 있는 모두를 위한 책이다. ‘우리는 여기 있다. 이것은 계속된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조색기〉를 출판하기 전, 트위터 계정 리단(@seroqel)을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정보와 경험을 나눠왔다. 팔로어가 2000여 명이다. 지난해 6월부터는 ‘여성 정병러(정신질환자를 자조적으로 이르는 은어) 자조(自助)모임’을 열었다. 다양한 여성 정신질환자들이 모였다. 지방에서 온 사람이나 청소년도 참여했다. 어떤 날은 7~8명이 모여 오전 11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질환이 같아도 각자의 경험은 다양했다.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때로는 병을 견디고 살아가는 조언도 얻을 수 있었다.
다음 작품은 〈조색기〉에 담지 못한 ‘진짜 우울한 이야기’를 글 없이 그림으로만 표현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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