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9세 청년에게 물었다. “취업 준비할 때 뭐가 제일 힘들어요?” “아르바이트와 병행하려니 시간적 여유가 없어요(37.6%)” “경력을 쌓기 어려워요(38.2%)”라는 대답도 많았지만, 가장 많은 청년들이 “돈이 부족해요(41.5%)”라고 답했다(2015년 12월, 서울연구원 ‘청년활동실태 및 정책수요 조사’).

대한민국 청년들은 지금 악순환에 빠져 있다. 금수저 출신 청년이 아니라면 걸려들 수밖에 없는 악순환, 바로 ‘돈이 없어서 돈을 못 버는’ 현상이다. 지난해 7월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가 돌린 설문조사 용지에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한 24세 청년은 ‘청년으로서 생활하기에 가장 어려운 점’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돈이 없어서 취업을 하려 함→취업하는 데에 어느 정도 스펙이 필요→스펙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함→공부할 돈이 없음→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함→돈은 버는데 공부할 시간을 빼앗김→공부를 못해서 취업 실패. 배우고 싶어도 돈 걱정부터 해야 하는 게 너무 슬퍼요.”

ⓒ시사IN 윤무영

이에 대한 응답이 청년 현금지원 정책(청년수당)이다. 지난해부터 서울시와 성남시 등에서 도입한 청년수당 정책이 대표적이다. 이제껏 나라가 예산을 들여 청년을 돕는 방식은 주로 일자리를 알선하거나 취업 훈련 기회를 제공하는 식의 ‘간접’ 지원 방식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도입한 한 해 예산 3000억원짜리 청년취업성공패키지 사업이 대표적이다. 돈은 돈대로 들고 청년들의 취업과 삶의 질 개선에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오자 다른 길을 찾자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청년들의 손에 ‘직접’ 돈을 쥐여주는 방법이다.

청년수당 도입을 두고 이견도 만만치 않았다. ‘포퓰리즘이다’ ‘놀고먹는 이들에게 돈을 주겠다는 것이냐’ ‘젊은 시절부터 복지병에 걸려 나라를 망칠 것이다’ 따위 온갖 비판이 쏟아졌다. 청년 지원 확대라는 큰 틀에는 공감하지만 ‘물고기를 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게 낫다’라며 현금 지원 방식에 우려를 나타내는 사람도 많았다. 이런 반대 여론을 업고 지난해 박근혜 정부는 서울시 청년수당과 성남시 청년배당 시행에 발목을 잡기도 했다.

하지만 청년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공감대도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물고기 잡는 법을 터득했다 한들 청년들이 앉아 있는 저수지에는 물고기 씨가 말라 있다는 것을, 변변한 낚싯대 하나 없이 메마른 저수지에 내몰린 청년들이 점점 낚시터에서 버틸 기운조차 소진돼가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낚시에 성공하기까지를 ‘견디는’ 데에 청년 개인의 ‘노오오오력’을 넘어 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잘 알고 있었다. 물속에 물고기(일자리)들이 다시 풍성해지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그날이 오기까지 굶주림을 견뎌내게끔 청년들에게 밥 한 끼 정도(청년수당)를 먹여주는 것도 나라가 할 일이라는 데 공감했다.

1년 사이 이런 공감대가 퍼져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직권취소 처분을 내리며 반대하던 보건복지부는 지난 4월 서울시 청년수당 사업에 최종 동의 의견을 통보했다. 성남시 청년배당 정책에 무효 소송을 제기하며 시행을 막던 경기도도 올해 7월부터 ‘청년구직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청년들에게 현금을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할 예정이다. 대전시, 광주시, 부산시 등으로도 청년수당 정책이 퍼져나가고 있다. 사실상 이제 인정투쟁은 끝났다. 지금부터는 ‘어떤’ 청년수당이 청년들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정면승부의 시간이다.

호응 높은 가운데 ‘선별 지원’ 한계도

 

가장 사업 규모가 크고 또 세간의 관심이 높은 게 서울시 청년수당이다. 보건복지부의 반대에 막혀 지난해 8월 미취업 청년 2831명에게 첫 달치 50만원을 입금한 것을 끝으로 사업을 접어야 했던 서울시는 지난 5월2일 다시 청년수당 신청자 모집 공고를 냈다. 만 19~29세의 서울시 거주 미취업 청년 5000여 명에게 한 달에 50만원씩, 최대 6개월을 지원할 계획이다. ‘구직활동 및 사회참여 의지가 있는 청년’이라는 신청 자격 조건이 붙어 있다.


1·2차 심사를 거쳐 선정된 청년들은 체크카드 형태의 청년보장카드를 지급받는다. 취업 시험 응시료나 학원 수강비 등 구직활동 ‘직접비’는 물론이고, 식비·교통비와 같은 ‘간접비’에도 청년보장카드를 쓸 수 있다. 이번에 서울시 청년수당 지급을 신청한 취업준비생 박 아무개씨(29)는 “월 30만원이 넘는 학원 수강료 등 구직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부담스럽다. 청년수당을 받게 된다면 돈 걱정 없이 취업 공부에 집중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기대가 크다”라고 말했다.

청년들 호응이 높은 가운데 한편에서는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취업 청년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꽤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 하는 선별 복지정책의 요소를 여럿 갖추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서울시 청년수당은 기준 중위소득 150% 이하 가구의 청년으로 신청 자격이 제한되어 있다. 가구소득·미취업 기간·부양가족 수를 점수로 환산해 순위를 매기고(정량 평가), 선정 심사위원회가 지원 동기·월별 활동목표 등을 적은 지원서를 검토한 뒤(정성 평가) 대상자를 선정한다. 수당을 받는 중에도 활동 결과 보고서를 통해 ‘구직활동 및 사회참여 의지’의 초심을 지속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연합뉴스2016년 8월3일 서울시청 청년정책담당관실 청년활동지원팀 직원들이 문의 전화를 받는 등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청년수당 선정 심사에 참여한 청년단체 오늘공작소 신지예 대표는 “지원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불행한 환경에 있는지를 계획서나 보고서에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구조였다. 참여자에게 낙인 효과를 안기고 행정적으로는 모든 사례를 일일이 검토하는 비용이 큰, 기존 선별 복지의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서울시 측은 “지난해 제기된 문제점을 올해 사업에서 많이 보완했다”라고 밝혔다. 신청과 활동 과정에 드는 ‘증빙 노동’을 최소화했다는 것이다(왼쪽 상자 기사 참조). 또한 청년수당은 ‘꿈을 지닌 청년들의 사회 진출을 촉진’하는 특수 목적의 청년복지 사업이기에 최소한의 활동 증빙 과정은 필요하다는 방침이다.


이런 ‘조건’을 떼고 청년 누구나 수혜를 받는 게 성남시 청년배당이다.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된 청년배당은 성남시에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세 청년이라면 소득, 취업 여부, 구직 여부에 관계없이 누구나 받을 수 있다. 1분기당 25만원씩 ‘성남사랑 상품권’으로 지급된다. 매 분기 1만여 명의 성남시 청년들이 동사무소에 들러 청년배당을 받아갔다. 향후 재원을 늘려 19~24세 청년으로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성남시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가끔 설문조사나 수요조사를 돌릴 뿐, 청년배당을 받은 ‘이후’를 묻지도 확인하지도 않는다. 청년들은 청년배당금으로 구직에 필요한 학원비나 책값을 내기도 하지만, 마트에서 생필품을 사거나 식당에서 밥을 사먹거나 생활비에 보태라며 부모한테 주기도 한다. 서울시 청년수당도 구직과 연계된 직접비 이외의 사용처 제한을 최소화했지만 사후 보고 절차 때문에 ‘자기 검열’이 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청년배당과 차이가 난다.

 

청년에게 주는 돈이라면 마땅히 조건이 붙어야 할 ‘구직 연계성’이 청년배당에 부족하다는 비판이 일었지만 성남시 측은 이렇게 답한다. “취업 준비는커녕 당장 생계 꾸리기도 힘든 청년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다. 지자체는 취업 이전에 청년들의 삶 자체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청년수당, 꿈을 위한 하루 3시간 참조).” 서울시의 청년수당이 청년을 ‘취·창업 준비생’ 내지는 ‘진로 모색자’ 정도로 본다면, 성남시의 청년배당은 청년을 ‘취약계층’으로 바라보는 셈이다. 지난 박근혜 정부하에서는 공동전선을 형성해 함께 싸웠지만 사실 서울시 청년수당과 성남시 청년배당은 출발 지점부터 다른 정책이다.

청년배당도 여러 한계점이 지적된다. 성남 지역 내 가맹점에서만 사용 가능한 상품권으로 지급돼, 지역경제 활성화의 부수 효과는 얻을 수 있을지언정 청년들이 느끼는 효용감은 현금보다 낮다. 지난해 청년배당을 받은 성남시의 한 청년은 “받고 사용하려고 하자마자 빠르게 실망했다”라고 말했다. “토익 책을 사려고 찾아봤는데 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는 지역 서점이 너무 영세해 토익 책이 없더라(송하진·우성희, 조건 없는 공적 재정지원을 받은 청년들의 삶 경험 탐구, 2016 청년허브 연구공모사업).” 1분기 25만원, 한 달 8만원 남짓한 돈이 청년들의 삶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재원이 한정돼 있다면 차라리 더 절박한 청년들을 골라 더 큰 액수를 주는 게 낫지 않겠느냐(서울시 청년수당 신청자 박 아무개씨).”

최근 청년수당 정책을 도입한 다른 지자체들은 대부분 서울시 청년수당 모델을 선택했다. 대전광역시 청년취업희망카드, 경기도 청년구직지원금, 부산광역시 청년구직촉진지원카드, 광주광역시 청년드림사업 등은 그 명칭과 지급 금액은 다르지만 ‘일정 자격 조건을 지닌 취업 준비 청년’에게 ‘구직활동 지원’ 명목으로 돈을 지급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아래 표 참조). 한 지자체 청년정책과 관계자는 “지역에서 한정된 예산으로 정책을 짜는 처지에서 목적이 모호하고 불분명한 성남시 청년배당보다 ‘취업에 절박한 청년을 돕는다’는 목표가 뚜렷한 서울시 모델을 따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중앙정부의 정책 기조는 어떤 방향일까

‘얼마나’ 절박한 청년들을 정책 대상으로 삼느냐는 지자체마다 다르다. 대전시가 그나마 ‘기준 중위소득 150% 이하 가구 청년’으로 서울시와 함께 신청 자격이 가장 느슨한 축에 든다. 경기도·부산시·광주시(2기)는 기준 중위소득 70~80% 가구 청년에 한해 신청을 받는다. 인천시의 인천형 청년사회진출지원사업은 기준이 더 빡빡하다. 기준 중위소득 100% 이하 청년 가운데 정부의 취업성공패키지 프로그램 참여자에 한해 구직활동 지원비와 취업성공 수당을 지원한다. 경북 청년복지카드는 정책의 결이 많이 다르다. 미취업 청년이 아닌 연봉 3000만원 이하의 도내 중소기업 종사 청년에게 문화 여가 활동·자기계발 지원금조로 청년수당이 지급된다.

‘구직 연계성’을 정책 목표에 두더라도, 그것에 너무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데에는 많은 지자체가 공감하고 있다. 청년수당을 도입한 지자체 대부분이 사용처 제한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꼭 학원 수강료, 교재비, 면접 의상비 같은 ‘직접’ 구직 관련 지출이 아니더라도 식비·교통비·문화여가비 등 ‘간접’ 지출에까지 사용처를 열어뒀다(물론 도박·총포류·유흥비 등은 제외됐다). 시험공부도 밥을 먹고 기운을 내야 할 수 있고 면접도 KTX 비용을 들여야 보러 갈 수 있고 취업 실패로 우울한 마음을 영화관 나들이 같은 걸로라도 추스를 여유가 있어야 미취업 청년이 ‘숨 쉴 구멍’이 생긴다는 것을 이제 이해하게 된 것이다. 대전시 김용두 청년정책담당관은 “궁극적 목적은 취업이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에서의 청년의 삶을 생각하며 정책을 짰다. 생활비를 지원받으면 아르바이트 시간이 줄고, 그만큼 시간이 확보되면 취업 준비에 집중할 수 있는 선순환이 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특히 지자체는 ‘해당 지역’ 청년들의 삶을 기준으로 삼아 청년수당 정책을 짰다. ‘총론’이 비슷해 보여도 ‘각론’을 들여다보면 조금씩 다른 이유다. 광역지자체 가운데 가장 이른 2014년 7월부터 청년정책 전담 부서를 만들고 관련 조례를 구축해온 광주광역시는 오랜 기간 지역 청년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의견을 수렴하는 데 공을 들였다. 광주시 청년정책과 곽상희 주무관은 “중앙정부에서 시행하는 청년 정책은 매우 일괄적이고 매뉴얼화되어 있다. 각 지역에서는 청년들과 감수성을 함께 나누면서 사각지대를 찾아내 보완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 결과 포착한 사각지대가 ‘일한 경험이 없거나’ ‘교통비로 고민하는’ 광주시 청년들이었다. ‘일 경험+월 10만원 수당’으로 구성된 1기와 한 달 6만원짜리 교통카드를 지급하는 2기로 청년수당 프로그램을 순차적으로 짰다. 광주시는 향후 부채 청년, 주거 빈곤 청년들을 위한 청년수당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다.

맞춤형으로 진행되는 지역별 제도 못지않게, 중앙정부가 관련 정책 기조를 어떻게 세우고 또 국민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가도 앞으로의 청년수당 정책의 앞날을 결정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청년구직촉진수당 도입을 공약했다.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미취업 청년들(청년 NEET 포함, 18~34세 적용)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공공고용 서비스에 참여하는 등 자기주도적 구직활동을 증빙하는 경우, 구직 과정에서 생계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준의 청년구직촉진수당을 도입하고 한국형 실업부조로 발전시키겠다”라고 공약집에 적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 공약을 추진해 나갈지는 미지수다. 일부 언론에서 “기존 정부 사업인 취업성공패키지를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라고 보도했지만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바가 없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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