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일

너른 개인의 취향만큼이나 사람을 매혹시키는 서사도 그 종류가 다양하다. 진부하긴 하지만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이야기의 얼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한 발짝씩 걸음을 옮기는 성장기이고, 다른 하나는 워낙 대단한 능력을 타고나 은근한 여유까지 갖춘 고수의 서사다. 전자는 나날이 자라는 인물의 변화를 목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후자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2008년 5월25일, ‘성장형 캐릭터’로 분류할 수 있는 다섯 소년이 나타났다. ‘미래지향적’이고 ‘블링블링한’ 패션을 한 말간 얼굴의 소년들은 “누난 너무 예뻐”라고 속삭였다. 컨템퍼러리 밴드라는 수식어가 인상적이었던, ‘빛나는’ 샤이니(온유·종현·키·민호·태민)의 탄생이었다.

대기하고 있는 연습생만 한 트럭은 될 정도로 규모가 큰 기획사에서 데뷔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통과의례를 마쳤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이들 역시 다듬어지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서툶과 미숙함이 있었다.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은’ 채로 데뷔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건 바로 그들 자신이었다. 노래와 춤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기꺼이 휴식을 반납했다. 데뷔 후에도 그들은 데뷔를 준비하던 그때처럼 연습실에서 살며 실력을 갈고 닦았다.

더 좋은 무대를 펼치고 싶다는 바람으로 하루 10시간 넘는 레슨을 즐겁게 받아들일 만큼 열심이었던 이들의 기량이 좋아지지 않을 리 없었다. 기본이 탄탄해지자 더 많은 시도와 실험이 가능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밀도 높은 댄스곡 ‘루시퍼’를 거뜬히 소화하더니 2012년 ‘셜록’에서는 그림자 안무를 하면서도 흔들림 없는 호흡으로 노래했다.

처음에 새 노래와 안무를 받으면 항상 “이게 돼? 정말?” 하고 반신반의했던 그들은, 거듭된 연습으로 “이것도 돼!”라는 경지에 이르기를 반복했다. 스탠딩 마이크를 활용한 안무로 더 큰 몸동작이 필요했던 ‘드림 걸’도, 완곡하고 나면 쓰러지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격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에브리바디’도 무대 위의 그들에겐 더 이상 불가능한 장벽이 아니었다.

매번 피치를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존재감을 각인시켜온 샤이니였기에, 대중들은 ‘이미 최대치를 보여준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샤이니는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긴장을 풀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4집 정규 앨범 〈오드〉는 샤이니가 성장형 캐릭터를 뛰어넘어 고수의 단계로 발돋움했음을 확인시켜주는 앨범이었다. 멤버가 직접 가사를 붙인 타이틀곡 ‘뷰’를 부르면서 샤이니는 스스로를 강단 있게 몰아붙이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레 풀어두는 솜씨 역시 수준급이라는 것을 무대에서 증명했다. 입을 쩍 벌리게 할 만한 고음이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 현란한 안무는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동안 쌓아온 기본기에 약간의 변주를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움을 전달하는 단계로 우뚝 섰다.

분 단위로 순위가 매겨지는 음원 차트 덕에 노래의 수명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더 이상 앨범의 노래를 통째로 듣는 시대도 아니다. 그러나 샤이니는 꾸준히 자신들의 세계를 한 앨범 안에 담아내며 첫 곡부터 끝 곡까지 귀 기울이게 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대중과의 ‘오해’를 풀기 위해 기획했다던 정규 3집 〈미스컨셉션 오브 유〉와 〈미스컨셉션 오브 미〉가 대표적이다.

꿈에 그리던 이상형(드림 걸)이 사실은 ‘음악’이었다고 고백하더니, 나중에는 아예 음악과 ‘결혼’(매리드 투 더 뮤직)했다고 선언하는 패기. 가지고 있는 재능에 녹이 슬 찰나도 허락하지 않는 철저함과, 말이 필요 없는 실력으로 무장한 샤이니라서 가능한 도발이 아닐까.

성장하는 캐릭터가 고수가 되기까지, 변하지 않은 게 하나 있다면 어쨌든 결과물이 흥미로운 팀이라는 것이다. 출발점부터 컨템퍼러리 밴드로 정체화한 이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시대성을 공유하는 세련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종현은 한 인터뷰에서 ‘샤이니는 어떤 팀인가요?’라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 적 있다. “잘한다, 멋있다 그런 느낌이라기보다 ‘얘 같은 애는 어디에도 없어’ 하는 느낌? 그런 애들 다섯 명이 모여 있는 팀(〈GQ〉 2010년 10월호).” 그 대답은 여전히 유효하다.

기자명 중림로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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