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질문이 전부다. 그 자체가 수많은 답을 끌어안고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천재로 불리는 이론물리학자이며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에르빈 슈뢰딩거는 말년에 과학사에 길이 남을 만한 의문을 던졌다. ‘원자는 왜 이토록 작아야만 했을까.’ ‘사과는 왜 땅에 떨어지는가’라는 아이작 뉴턴의 발상에 지지 않는 신선한 물음이었다.

그가 이런 질문을 던진 까닭은 원자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우리 몸은 원자에 비해 왜 이렇게 커져야만 했는지, 결국 생명이란 무엇인지 이 질문을 통해 접근해가기 위해서였다. 슈뢰딩거가 찾은 해답은, 생명이란 현상은 한없이 복잡해서 현상에 참여하는 입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오차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생명 현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질서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원자에 비해 우리 몸집은 터무니없이 커졌으리라고 이해했다. 전자 기기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반도체 용량이 갈수록 작아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러면서 그는 “생명 현상은 결코 신비롭지만은 않다. 물리와 화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라고 호언하기도 했다.

물리학자인 그가 1944년에 내놓은 책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현대 생물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때까지 생물학도들에게 생명이라는 현상은 넓은 바다에 떨어진 작은 부유물과도 같았다. 태풍과 조류의 방해를 받으면서도 끝내는 중력의 인도 아래 심해로 가라앉으리라는 확신을 할 수 없었다. “함부로 과학의 잣대를 인간 세상에 들이대지 말라”는 아인슈타인의 충고 역시 과학도들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슈뢰딩거의 저서는 후학들에게 다시 과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의 책은 유전자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내 노벨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 프랜시스 크릭, 모리스 윌킨스를 비롯한 수많은 학자들의 지침서가 되었다. 언젠가는 금융위기와 전쟁의 원인까지도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은 물리학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들이야말로 슈뢰딩거 키즈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책은 지금도 수많은 젊은 과학도들의 머리맡에서 영감을 불어넣는 중이다.

ⓒ한성원 그림

슈뢰딩거의 말을 뒤집어보면 결국 자연에서 오차 혹은 오류나 실수는 예사로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이다. 종의 멸종을 부를 만한 오류가 아닌 한 이런 비정상은 진화를 추동해가는 동력이기도 하다. 그것은 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유전자가 스스로를 복제하는 방식은 너무나도 많으며 난잡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혼란스럽다. 유성생식은 유전자가 스스로를 복제하고 번식하는 극히 많은 방식 가운데 한 가지일 뿐이다. 박테리아는 죽은 개체와도 유전자를 교환하는 변태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얌전하게 유성생식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종에서도 엽기는 흔하다. 진드기는 종류에 따라서는 환경에 맞춰 예사로 무성생식을 감행한다. 무역선 컨테이너에 묻어온 진드기 암컷 한 마리가 순식간에 낯선 초원을 점령할 수 있는 이유이다. 러시아의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개체 안에 배아를 겹겹이 간직했다가 수컷 없이도 얼마든지 후손을 토해낼 수 있다.

보통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음양인, 즉 양성구유는 동물왕국에서는 흔하다. 그보다는 수가 훨씬 적지만 암수 모자이크, 이를테면 색상과 사이즈만 보면 암컷인데 생식기는 수컷인 경우도 있다. 조류·갑각류·나비 가운데 완벽하게 중앙선을 중심으로 왼쪽은 암컷, 오른쪽은 수컷인 개체도 발견된다.

찬성이냐 반대냐의 대상이 아닌 까닭

세상의 많은 교회가 ‘신이 실수하실 리 없다’고 믿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의 배아가 태아가 되고, 소년·소녀로 자라면서 남성과 여성이란 요소는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을 때가 많다. 성별을 정확히 구분해야 하는 문제로 골치가 아픈 곳 중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의무분과위원회가 있다. 한국에서도 예전에 신체 조건이 월등한 여성 프로축구 선수를 둘러싸고 시비가 일어난 일이 있는데, 국제경기에서도 이런 갈등은 흔하다. IOC 의무분과위원장 아르네 융크비스트가 솔직하게 털어놓은 바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데 과학적으로 타당하며 실험적으로 증명된 기술은 없다.

성은 여러 가지 요소의 결합이다. 염색체(X 혹은 Y), 해부학적 특징(내·외부 성기), 호르몬(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의 비율), 심리(스스로 규정한 성 정체성), 문화(사회적으로 정해진 성 행동 양식) 등등. 이런 것들이 질서 있게 남성이나 여성 한 방향을 가리킨다면 좋겠으나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100명 중 한 명꼴로는 혼란을 느낀다는 연구가 있다. 미국에는 이렇게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인구가 최대 300만명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이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도 50만명 가까운 이들이 비밀을 안고 산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생물학적 동물인 동시에 사회적 동물이기도 해 양상이 사뭇 복잡하다.

19세기 초반 프로이트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지배 성향이 지나친 아버지, 과잉보호하는 어머니, 불우한 가정, 남자나 여자 형제가 많은 집안, 성적 충격 등이 성 정체성 장애를 초래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그런 식으로 믿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성별 문제를 이해하는 데 과학은 아직 위성에서 지구를 바라다보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길 위를 지나다니는 자동차의 번호판까지 식별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는 몰랐던 것을 많이 알게 된 것도 사실이다.

인간 배아가 6주나 8주가 지나면 여성 성선과 남성 성선의 구분이 뚜렷해진다. 이때 Y염색체의 SRY 유전자가 작동해야 남자아이는 고환, 전립선, 성기를 갖추게 된다. 반대로 SRY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자궁과 클리토리스, 여자 성기가 발달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 SRY는 변덕이 심하다. 개입해야 할 때 잠잠하고 그러지 않아야 할 때 불쑥 끼어든다. 그런 경우 XY 배아가 남성으로, XX 배아가 여성으로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다. SRY 유전자와는 무관하게 XY 배아세포가 남성호르몬의 신호에 거의 무감각해 이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 경우에도 남성 성기가 전혀 발달하지 못해 아이는 자기가 여성이라고 생각하며 자란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남성 혹은 여성의 성징이 억제됐다가 사춘기 때 갑자기 본래 가진 성기와는 반대 성의 특징이 쓰나미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어제까지 여자인 줄로만 알았던 아이의 턱에서 수염이 자라고 팔다리 근육이 울퉁불퉁해진다. 아이와 부모는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해부학적인 성기의 차이는 임신 후 2개월 안에 발생한다. 뉴로사이언스 네덜란드 연구소에 따르면 두뇌에서의 성적 구분은 임신 후반기에 이루어진다. 성기와 두뇌가 서로 크게 상관없이 발달한다. 다만 두 성은 회백질의 밀도, 시상하부의 크기가 약간 다를 뿐이다. 트랜스젠더의 경우 자기가 확정한 성과 본래 타고난 성의 중간 형태의 뇌를 닮는 경향이 있다.

아직도 많은 연구자들이 성 정체성 혼란은 치료 대상이며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고 믿지만, 적어도 찬성이냐 반대냐의 대상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비만보다도 손가락질당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21세기, 동성애자에게 관대한 것처럼 보이는 서구 사회에서도 성별은 아직 조선 시대 반상의 구별만큼이나 엄연하다. 압도적인 다수에게 아직 성은 이거냐 저거냐 둘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가운데 동성애자에 대한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 트랜스젠더 아이를 둔 부모는 성전환수술을 막으면 아이가 자살할까 봐, 수술을 하면 살해당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1999년 이후 미국에서는 400명 이상의 트랜스젠더가 살해됐다. 추모 단체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사흘에 한 명꼴로 트랜스젠더가 목숨을 빼앗긴다. 내전 중인 시리아와 이라크에서는 동성애자들이 수백명씩 떼죽음을 당했다. 오스트레일리아나 독일, 포르투갈, 뉴질랜드, 싱가포르, 스페인처럼 치안이 잘 유지되는 국가에서도 증오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동성애자들의 형편에 견줘보면 동성혼을 합법화해야 하느니 말아야 하느니 논쟁하는 것은 의미 없어 보이기도 한다. 화학물질의 범람 때문으로 추정하지만 성 정체성 혼란을 느끼는 아이들이 점점 더 많이 태어나는 형편이다. 아이들이 자살하거나 공격당하는 일이 잦아 부모들 역시 지옥 속을 헤매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성 정체성 혼란을 느끼는 어린이와 부모를 도울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한다. 아이가 단순히 취향이 독특해 다른 성의 물건과 행동에 집착하는지 아니면 정말로 성정체성 혼란을 느끼는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빨리 파악할 필요가 있다. 판단하는 기준은 지속성·일관성·고집성이다. 오랫동안 확고하게 타고난 것과 다른 성을 고수한다면 성 정체성을 확정해도 된다. 아이에게 사춘기에 억제제를 투입해야 하나, 말아야 하느냐도 정리돼야 할 문제다.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전 억제제를 사용하면 나중에 수술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억제제가 심리 발달, 두뇌 성장, 뼈의 미네랄 밀도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다.

처음 트랜스젠더를 취재할 때인 1990년대 초에 성전환수술 비용은 2000만원 정도였다. 그 돈을 벌려고 트랜스젠더들은 밀항을 해서라도 일본에 가려 했다. 그들에게 수술은 성 정체성을 넘어 존재의 의미를 되찾는 일이었다. 지금은 1억원 이상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코 성형, 목젖 제거, 이마와 턱 축소, 유방확대 수술까지 하게 되면 비용은 엄청나게 늘어난다.

예나 지금이나 이 모든 비용은 트랜스젠더 자신과 그 부모 부담이다. 수술과 호르몬 치료는 상환이나 세금 공제도 거의 받지 못한다. 영국은 청소년 수술에 엄격한 제한을 둔다는 전제하에 성전환수술을 의료보험 대상에 포함했다. 미국 의사협회는 2007년 ‘의사의 권고를 받은 성 정체성 장애 치료에 관한 건강보험의 적용을 지지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한국의 의사협회가 비슷한 성명을 내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성 정체성 혼란은 임신이나 마찬가지로 의사의 도움이 절실한 상태라고 인권운동가들은 주장한다. 생명이 오류를 딛고 진화하듯 동성애 문제 역시 편견을 도약대로 삼았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떠오른 질문 하나. 한국 의사협회는 왜 저렇게 작아졌을까.  

참고한 활자:〈생명이란 무엇인가〉(궁리), 〈부모와 다른 아이들〉(열린책들), 〈내셔널 지오그래픽〉

기자명 문정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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