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누나’라 불러주는 저자가 있다. 3년 전 어느 가을날 처음 만났다. 소 같은 눈에 덩치도 소만 한 그는 긴 속눈썹이 돋보이는 커다란 눈을 끔벅이며 먼저 이름을 물어왔다.

“진실이 누나, 몇 년생?”

“어? 어? 19○○년생.”

“생일은?”

“어? 어? 10월○○일.”

“진실이 누나 기미년 ○띠! ○요일! 균도는 1992년 6월6일 토요일에 태어났습니다.”

그날 출판사 직원 전원은 그렇게 무방비 상태로 스물세 살 청년 균도에게 신상이 털렸다. 10초면 통성명과 호칭 정리를 끝내고, 한 시간이면 손을 꼭 잡고 산책을 하며, 몇 번 만나면 ‘내가 만일’ 같은 노래를 불러주는 엄청난 친화력의 애교 덩어리. 육십갑자부터 즐겨 먹는 과자의 출시연도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선 무엇이든 외워버리는 천재적 기억력의 소유자. 그런 균도를 세상은 ‘발달장애인’ 혹은 ‘자폐아’라 부른다.

이진섭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크베크베 스동동 에메랄드 엠비시…”.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넋을 놓고 있는가 하면, 감정이 폭발해 자해를 하거나 난동을 피워 엄마를 울릴 때도 있다. 여전히 화장실을 갈 때는 아빠가 따라다녀야 하고, 사회복지관에서 친구를 때려 쫓겨나는 바람에 지금은 하루 종일 아빠 사무실 신세를 지고 있다. 과잉행동을 억제하려고 먹는 약만 해도 한 움큼이다.


아버지 이진섭씨는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 균도도 사회 속에서 더불어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걷고 또 걸었다. 〈우리 균도〉는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이 3000㎞를 걸으며 써내려 간 일기를 모은 책이다. 걸으면서 균도도 변했고, 균도를 만난 사람들도 변했다. 난동을 부리는 균도도, 화장실을 가리지 못하는 균도도, “내가 만일 시인이라면” 노래하는 균도도 모두 ‘우리 균도’라는 걸, 이 책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더 알아주면 좋겠다.

아, 이제 균도(均道)가 뭐냐고 묻는 사람은 없으려나? 다시 말해두지만 균도는 세균 이름도 아니고, ‘군도’도 아니며, 6월6일에 우리에게 온 어느 한 청년의 이름이다.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니 꼭 만나보시길.

기자명 이진실 (후마니타스 편집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