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후보 경쟁자만 11명이었다. 언론과 유권자들은 그를 ‘액세서리 후보’ 취급했다. ‘성별’과 ‘인종’을 이유로 상징적인 도전으로만 여겼다. 1972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선 셜리 치점 의원 이야기다. 언론은 “뉴욕 주 하원의원 셜리 치점은 여성이고 흑인이다. 대통령 예비선거에서 승산이 없다”라고 대놓고 혹평했다. 우군으로 여겼던 흑인 정치인들마저 외면했다. 〈워싱턴포스트〉에는 “흑인이 고위직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도전하는데, 이왕이면 남자가 좋을 것 같다”라는 흑인 정치인들의 불평이 실리기도 했다.

치점은 굴하지 않았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으로서 최초로 하원의원에 당선한 치점의 무기는 유머와 용기였다. “당선하면 백악관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생각이냐”라는 대학생들의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아마 백악관이 아니게 되겠지요.” 선거자금과 캠프 인력의 열세에도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다. 결과는 완패. 아프리카계 미국인 민주당 대의원들조차 다른 후보에게 투표했다. 그럼에도 치점은 최종 151표를 넘기며 그때까지 그 어떤 여성 후보보다 더 많은 대의원 표를 받았다. 이 기록은 30여 년 뒤 2008년 민주당 경선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에 의해 깨졌다. 2008년 〈네이션〉지는 “치점이 힐러리 클린턴(여성)과 버락 오마바(흑인)를 위한 길을 닦았다”라고 평가했다(〈가장 높은 유리천장 깨기〉 엘런 피츠패트릭 지음, 2016).


치점이 경선에 뛰어든 이듬해, 태평양 건너 한국에서 강경화는 연세대 정외과에 입학한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커뮤니케이션 석·박사 학위를 땄다. 그 시대 동기 여학생들에 비하면 화려한 꽃길이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박사 학위를 따고 돌아온 대한민국은 ‘기업들이 아예 여성 채용 공고조차 내지 않는’ 곳이었다(성우제의 페이스북 글에서). 강경화는 시간강사와 대학 조교수를 거쳐 유엔 고위직까지 스스로 올랐다. 물론 강경화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흠결이 적지 않게 제기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5대 인사 원칙에도 분명히 어긋난다. 해명 과정에서 거짓말 논란도 일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인사들에 비하면 낙마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다른 남성 장관 후보자들과 비교해도 그렇다. 

ⓒ연합뉴스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선서하고 있다. 2017.6.7
그런데도 정치권에서는 강 후보자를 ‘버릴 카드’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야 3당의 반대로 정부·여당이 빅딜 카드에 동조한다면, 강 후보자 앞에 놓인 선택지는 스스로 사임하는 것이다. 치점이 출사표를 던지며 한 말을 강 후보자가 상기하며 끝까지 버텨주기를 바란다. “형제자매들이여, 마침내 제가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치점은 스스로 ‘미국의 변화를 위한 촉매제’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새로 연재를 시작하는 이숙이의 ‘센 언니가 간다’ 주인공으로 강경화 ‘장관’을 지면에서 만나고 싶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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