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담은 사진이 모여 있는 곳이 있다. 납골당이다. 지상의 시간은 가장 행복한 순간에서 정지한다. 사람들이 가장 행복한 순간을 담은 사진을 모아두는 곳이 있다. 인스타그램이다. 어떤 의미에서 인스타그램은 계정 주인의 행복한 모습을 남겨주는 미래의 ‘사이버 납골당’일 수도 있다.

인스타그램의 본인 사진은 대부분 ‘셀카(셀프 카메라)’다. 셀카를 찍으며 사람들은 행복을 연출한다. 그리고 그 행복의 증거물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팔로어들이 눌러주는 ‘좋아요’는 행복을 가늠하는 수치가 된다.

〈비비안 마이어 셀프 포트레이트〉비비안 마이어 사진존 말루프 외 글박여진 옮김윌북 펴냄
〈비비안 마이어 셀프 포트레이트〉의 사진은 얼핏 보면 요즘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과 닮았다. 하지만 이 사진은 60여 년 전의 것이다. 당시에는 셀카봉이 없었다. 그런데도 비비안 마이어는 롤레이플렉스 카메라로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 어떻게?

방법은 세 가지다. 하나, 거울을 이용했다. 풍경 속에 거울을 놓고 거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 둘, 유리를 활용했다. 거울만큼은 아니지만 유리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찍었다. 액자 유리도 자주 활용했다. 셋, 자신의 그림자를 찍었다. 자기 실루엣을 프레임에 넣었다.

인스타그램의 행복 인증 사진들과 달리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은 행복을 담지 않았다. 그녀는 풍경과 어울리지 못하고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처럼 사진에 담겼다. 정면 사진을 찍을 때도 무표정하다. 시선은 카메라를 외면하고 허공을 향한다. 그녀의 사진에서 행복을 찾기는 쉽지 않다.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평생 보모로 일했던 그녀는 말년에 노숙자와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필름을 보관하는 창고가 경매에 넘어가면서 그녀가 평생 찍은 사진 15만 장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그녀의 사진을 통해 행복한 표정이 말하지 못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