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관계자들이 해외 감독을 초청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 중 하나가 음식이다. 종교나 문화 따위 이유로 피해야 할 음식 목록을 미리 파악하느라 분주하다. 6월1~7일 서울과 부산·광주에서 열린 제6회 아랍영화제 초청으로 처음 방한한 이집트의 유스리 나스랄라 감독(65)은 그런 점에서 예외였다. 가리는 음식이 없었다. 영화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떡볶이 국물에 튀김을 찍어 먹거나 해물파전을 거침없이 먹었다. 낯선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했다.

김치, 그중에서도 오이소박이가 정말 맛있었다며 서점에 들러 김치 레시피가 담긴 책을 사기도 했다. “김치에 대한 나의 애정을 인터뷰에 꼭 넣어주세요(웃음).” 김치 담그는 일과 영화 제작이 어떻게 비슷한지에 대한 ‘연설’이 이어졌다. 똑같은 대본이 있어도 감독마다 다른 작품이 나오는 것처럼 자신이 담그게 될 김치가 몹시 궁금하다는 내용이었다.

ⓒ시사IN 신선영유스리 나스랄라 감독은 〈세헤라자데, 내게 말해줘〉
〈혁명 이후〉 〈냇물과 들판, 사랑스런 얼굴들〉 등의 영화를 통해 ‘아랍의 현재’를 카메라에 담는다.

국내에서는 낯선 이름이지만 나스랄라 감독은 ‘아랍 영화계의 거장’으로 불린다. “다섯 살 때 아버지와 처음 간 영화관의 기억이 강렬했어요. 영화는 누가 만드는 거냐고 물으니 아버지가 ‘감독’이라고 답하더군요. 그때부터 영화는 제 모든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학사 학위가 있어야만 영화를 배울 수 있었다. 카이로 대학에서 경제학과 정치학 학위를 취득한 나스랄라 감독은 1973년 카이로 고등영화연구소에 진학했다. 졸업 후 레바논 베이루트에 위치한 신문사 〈아스사피르〉에서 4년간 영화 저널리스트로 일했다. 대학 시절 민주화운동을 하기도 했고, 레바논에서 팔레스타인 전쟁 고아에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친 경험도 있다. “영화를 찍는 데 필요한 기술은 금세 익힐 수 있지만 사회와 삶을 대하는 태도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1988년 〈여름도둑〉으로 데뷔한 뒤 이집트 카이로와 프랑스 파리를 오가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다. 이집트 사회가 3대 금기로 여기는 정치와 성, 종교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나스랄라 감독은 칸·베니스·토론토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 단골로 초청되는 감독이다.


지난해 아시아 프리미어(최초 상영)로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냇물과 들판, 사랑스런 얼굴들〉을 출품했지만 일정상 방한까지 이뤄지지는 못했다. BIFF에 다녀온 동료 감독들의 호평을 들으며 한국이 궁금했다. 그 자신이 한국 영화를 즐겨 보고 한국의 블랙리스트 사태 등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그에게 서울은 어떤 도시였을까. 나스랄라 감독은 서울 상암동의 영상자료원,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천막과 대형 서점을 인상 깊은 장소로 꼽았다. 특히 대형 서점 안의 수많은 사람을 보며 놀랐다. ‘이게 한국 문화의 힘인가’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방문한 곳을 짚어가며 즐겁게 이야기하던 그의 얼굴이 이내 심각해졌다. “그런데, 어디에 숨겼습니까?” 노숙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나스랄라 감독에게 서울은 노숙인과 장애인이 ‘지워진 도시’였고, ‘중산층만의 도시’였다.

작품의 궤적이 보여주듯, 그에게 영화는 이른바 ‘2등 시민’을 드러내는 작업이기도 했다. 이번 아랍영화제에 참석하면서 자신이 직접 고른 세 작품도 그 연장선에 있다. 2011년 ‘아랍의 봄’을 전후해 만든 〈세헤라자데, 내게 말해줘〉(2009), 〈혁명 이후〉(2012), 〈냇물과 들판, 사랑스런 얼굴들〉(2016)이 아랍 필름 마스터 섹션에서 상영됐다. 세 편 중 ‘아랍의 봄’을 직접 다룬 〈혁명 이후〉는 국내 첫 상영이다. 픽션이지만 타흐리르 광장의 반정부 시위 현장을 실제로 담았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반정부 활동을 하는 NGO 활동가와 친정부 시위에 나선 마부의 만남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화의 감정선은 고발보다는 차라리 ‘사랑’에 가깝다.

“영화의 소재 때문에 저를 ‘사회파 감독’이라거나 정치적이라고 하는데 제가 생각하는 정치는 이런 겁니다. 사람들에게는 모두 욕구가 있죠. 사랑하고 싶고, 먹고 싶고…. 이런 욕구들이야말로 정치적인 제스처죠. 사람들이 자신의 욕구를 어떻게 추구할까 골몰하는 것이 정치고, 그런 것들이 영화에 드러나길 원합니다.”

“여성 캐릭터가 약한 영화는 지루해요”

〈혁명 이후〉를 통해 그가 질문하고 싶은 것은 하나였다. 이 혁명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빵’과 ‘존엄’이 그 누구보다 필요한 사회의 밑바닥 계층인 마부에게는 왜 혁명이 삶에 도움이 되지 않았던 걸까. 그가 2011년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에서 본 것은 지난겨울 서울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의 질문과도 맞닿아 있었다.

ⓒEPA유스리 나스랄라 감독(가운데)이 2012년 〈혁명 이후〉의 배우들과 함께 제65회 칸 영화제에 참석했다.

나스랄라 감독 영화 전반에 흐르는 페미니즘적 색채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여성 인권 문제는 계급을 초월해 발생한다는 지점을 정확하게 짚는다. 〈혁명 이후〉의 “여성 문제는 민주주의와 별개입니까” 같은 대사가 그러했고, 강인한 여성들의 이야기이자 가정폭력을 다룬 〈세헤라자데, 내게 말해줘〉 같은 작품도 감독의 의도를 보여준다(이 영화는 2011년 한국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다). 


“내 영화가 그렇게 보인다면 그건 내가 페미니스트여서라기보다 영화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여성 캐릭터가 약한 영화는 지루해요. 여성 캐릭터를 액세서리처럼 활용해서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어요. 영화도 번성기와 쇠퇴기가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이른바 ‘남성주의적’으로, 남성의 힘을 주로 다루는 영화들이 주류였을 때가 쇠퇴기라고 봅니다. 저에게 좋은 영화는 여성 캐릭터가 살아 있는 영화입니다.”

혁명은 많은 것을 바꾼 동시에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이집트는 여전히 군부가 지배하며, 나스랄라 감독 같은 ‘민주주의자’를 집요하게 주시한다. 전반적인 상황도 더 나빠졌다. 〈혁명 이후〉와 같은 영화를 지금 만들 수 있을까. 나스랄라 감독은 “훨씬 어려워졌다”라고 말했다. 물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감독인 그에게 정부가 가하는 ‘검열의 칼’은 무디다. 그러나 그에게 검열이 덜하다고 해서, 모두에게 없는 것은 아니다. 나스랄라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외자를 유치해야 하고, 혹시 모를 검열을 피하기 위해 ‘두 개의 원본’을 만들어두곤 한다.

그는 2011년 타흐리르 광장의 경험이 선물한 것이 분명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잠시지만 ‘자유의 맛’을 봤습니다. 예전에는 질문하지 않고 그냥 주어지는 대로 살았다면 이제는 의심하고 질문하게 됐습니다.” ‘아랍의 현재’를 카메라에 담아온 그의 질문 역시 계속될 예정이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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