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기쁨을 찾기보다 상처 입을 것이 두려워 호의를 가지고 내민 손을 외면했다. 그러나 자신을 믿고 끈기 있게 말을 걸어오는 이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연다. 스스로 부정하지만 소년은 다른 이들과 어울리고 자신이 존재할 가치를 원했다. 사람들과 충돌하고 부딪히고 때로는 외면하고 도망가기도 했지만 결국 서로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게 되고 그걸로 서서히 마음을 터놓게 된다.
좀 더 나은 내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 소년에게 이후 닥친 현실은 열네 살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했다. 친구가 탄 에반게리온이 사도의 해킹으로 통제 불능 상태가 되자 자의와 상관없이 공격을 가하게 되고, 전우이자 친구로서 마음을 열었던 동료는 결국 사도와 함께 눈앞에서 자폭해버린다. 새로이 동료가 된 다른 소년에게 애정을 느끼고 기댈 곳이 생겼다고 여기지만, 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를 죽이고 분노와 배신감에 휩싸인 채 끝없이 절망한다. 있을 곳이라 생각했던 곳은 파괴되고, 의지할 만한 어른은 사라지고, 호의를 가졌던 동료들은 모두 죽거나 폐인이 된다. 갈 곳도 머물 곳도 모두 잃어버린 소년은 생각했다. ‘모두 다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
막상 모두 다 죽어버릴 수 있는 상황이 되자 소년은 망설인다. 친구는 ‘다 같이 하나가 될 수 있다’라는 말로 회유한다. 소년은 기로에 선다. 자신의 말 한마디면 모두가 하나 되어 아무 갈등 없는 세상이 되는데도 어쩐지 소년은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친구와 긴 대화를 나눈다. 대화를 통해 자신이 생각보다 다른 이들을 더 많이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갈등하고 부딪혀서 상처받고 또 계속 상처받는다 해도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이 더 낫다는 걸 소년은 깨닫게 된다.
어른도, 동료도, 아버지도 결국 같은 문제로 괴로워한다
결국 이곳에 있을지 말지를 정하는 건 자신이다. 다른 이가 나에게 상처를 준다 한들 그걸로 내 가치를 결정할 수는 없다. 소년은 오직 혼자만 그런 고민을 안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돌봐주는 어른도, 경쟁하는 동료도, 나를 외면하는 아버지도 같은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참으로 지난한 여정을 거쳐 그 사실을 깨닫는다. 소년은 타인과의 교류란 충돌과 상처도 주지만 모두 하나가 되기보다 제각각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린다. 소년은 ‘모두 다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거두게 된다.
안타깝게도 소년의 여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끊임없이 상처받고 좌절하고 몇 번이고 모두 다 죽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자의로 걸어갈 때도 있고 타의에 의해 한없이 끌려가기도 한다. 아마도 평생을 그렇게 걸어가리라. 가늘게 이어질지언정 결코 끊어지지는 않은 채로. “나는 이카리 신지. 에반게리온의 파일럿.”
2001년 6월6일 이카리 신지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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