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3년차 때였다. ‘100대 요직’ 기획을 했다. 인사 참사가 계기였다. 2005년 1월 이기준 교육부총리가 임명 57시간30분 만에 낙마했다. 당시에는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따로 없었다. 서울대 총장 재직 시절 판공비, 사외이사 겸직, 장남 병역 기피 의혹 등이 줄줄이 보도되었다. 참여정부 인사수석을 지낸 박남춘 의원이 2013년 펴낸 〈대통령의 인사〉에서 당시를 회상했다. 인사수석실과 민정수석실도 이 장관의 인사를 두고 ‘문제 있어 보임’이라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장관은 인사추천위원회를 통과했다. 후폭풍이 컸다. 정찬용 인사수석과 박정규 민정수석이 사퇴했다. 대신 문재인 민정수석이 복귀했다. 그해 7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사 청문 대상을 장관까지 확대했다.

그때 정치부 기자였다. 호기심이 일었다. 100대 요직을 선정해 참여정부 초기(2003년)와 3년차를 비교했다. 흥미로운 지점이 여럿이었다. 정찬용 인사수석, 지은희 여성부 장관 등 참여정부 초기만 해도 시민단체 출신들이 요직에 포진했는데 3년차에는 시민단체 출신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보수 언론과 야당한테 ‘코드 인사’라고 두들겨 맞으면서 관료들에게 둘러싸였다. 또 하나, 시계열 분석을 해보니 청와대 내부에서 고속 승진자가 눈에 띄었다. 나중에 참여정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했던 법조인을 만났더니 그도 알고 있었다. “민정에서도 사고를 칠 수 있는 측근이나 친인척으로 세 명을 꼽았다. 그중 한 명이 맞다. 대통령과 지근거리여서 어쩔 수 없었다.” 초고속 승진자 인사 역시 대통령 퇴임 뒤 문제가 되었다.


100대 요직 분석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 때는 ‘고소영’ ‘강부자’ 등 신조어가 생길 정도였다. 특히 TK 출신이 사정기관 요직을 그랜드 슬램으로 싹쓸이했다. 박근혜 정부 땐 100대 요직 인사에 대해 사회관계망 분석을 해봤다. 고시 출신인 관료가 대거 요직을 차지했다. 관료들은 생리상 정책에 대한 이견을 내지 않는다. 설상가상 박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1만2000자, 200자 원고지로 치면 60장에 이르는 지시를 하곤 했다. 익히 알려진 대로 관료들은 받아 적기만 했다. 이견은 민간인 최순실씨가 냈다. 박근혜 정부의 종말은 관료 중심 인사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지난 정부 100대 요직 기사는 늘 이렇게 끝났다. ‘인사가 망사가 되지 않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 첫 내각 인사를 커버스토리로 담았다. 벌써부터 보수 신문이나 야당은 흘러간 옛 노래를 다시 틀기 시작했다. ‘코드 인사’ 프레임이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 낙마 등 인사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코드 인사라는 공격에 휘둘려 관료들을 등용하는 ‘망사’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코드 인사로 시대정신을 구현해낸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한 정부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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