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약속했다. ‘통신료를 내려서 전 국민의 지갑에 1만1000원씩을 채워주겠다.’ 문재인 정부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자문위)는 공약 이행을 위해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를 불렀다. 가계 통신비를 절감하기 위한 방책을 내놓으라고 했다. 사실 그 방책은 너무나 뻔했다. 이동통신사(이통사) 3사가 기본료(1만1000원)를 삭감하는 것이다.

이통사들은 반발했다. 모두 합쳐 연간 7조원의 매출이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못 주겠다’는 이통사와 ‘내놓으라’는 정부 사이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

ⓒ시사IN 신선영이동통신사들은 유통시장 혼란이 우려되기 때문에 단말기와 통신서비스 판매를 분리하는 완전자급제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한다.

기본료 폐지를 통해 가계 통신비 부담을 낮추자는 이들의 주장은 이렇다. “한국 가계의 소득 대비 통신비 부담률이 다른 OECD 가입국에 비해 비싸다. 스마트폰 없이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에서 통신은 사실상 공공재다. 시장을 과점한 이통사들은 공공재의 가격을 지나치게 높여서 엄청난 영업이익을 쌓고 있다. 국가가 개입해서 시장 왜곡을 개선해야 한다.” 반면 기업과 경제신문들은 다음과 같은 논리를 편다. “국가가 법적 근거도 없는 가격 인하를 강제하고 있다. 한국 통신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별로 비싸지 않다. 통신사들 역시 국가에 주파수 사용료를 지급하면서 사업하는 형편이다.” 정부가 협박을 통해 ‘자유시장경제 질서’를 왜곡시킨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통신비 인하가 중요한 이유

통신비 인하 정책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높다. 야당은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지만, 유권자 대부분이 정부의 공약 수행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정책의 혜택이 광범위하게, 다수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관심이 크다 보니 통신 기본료 폐지가 문재인 정부의 공약 실현 의지를 평가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었다.

자문위가 부담을 느낄 만하다. 자문위에게 통신비 인하는 정책 현안 중 일부에 불과하지만, 언론과 시민단체의 관심이 높은 만큼 우선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자문위 내에서 “2G나 3G 통신망 이용자에게만 기본료를 인하하자”라는 ‘후퇴론’도 나왔다. 하지만 이통사들과 섣불리 합의했다간 엄청난 반발을 초래할 것이 뻔하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집에는 “4G(LTE) 사용자까지 기본료를 없애겠다”라고 명기되어 있다.

그런데 질문이 뒤따른다. 왜 하필 기본료일까? 가계 통신비가 부담이 된 게 기본료 때문이었나? 답은 ‘꼭 그런 건 아니다’에 가깝다. 4G 시대로 넘어오면서 통신비가 급증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엔 데이터 활용 패턴의 변화, 단말기 값 상승, 요금체계의 변화 같은 원인이 더 컸다.

기본료가 부각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통신사 요금체계 내에서 가장 ‘약한 고리’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이동통신망을 깐 것은 국영기업이었다. 그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휴대전화 요금에 기본료를 포함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참여연대의 자료 ‘QnA로 알아보는 이동통신 기본료 폐지의 모든 것’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기본료는) 통신 서비스 설치 단계에 징수할 필요가 있었다. 국영기업이었던 한국이동통신서비스주식회사(SKT 전신)가 국내 최초로 이동통신 서비스를 시작했기 때문에 기본료를 징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통신망 설치가 완료되었고, 민영회사인 통신 3사가 경쟁하기 때문에 세금과 같은 기능을 하는 기본료를 징수할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현재 논의 중인 ‘기본료 무용론’의 근간이 되는 설명이다.

당초 기본료 폐지 논의는 입법부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19대 국회 때부터 시민단체들은 국회를 통해 입법 청원 활동을 벌였다. 전기통신사업법상에 기본료 폐지 내용이 담긴 조항을 추가하자는 것이었다.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이통사 3사와 논의하는 테이블을 만들려고 하지도 않았다. 결국 19대 국회에서 해결되지 못한 기본료 인하(당시에는 폐지보다 인하에 정책 목표가 실렸다) 문제가 대선을 거치면서 ‘차기 정부의 과제’로 제기된 것이다.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기본료 폐지를 공약했다. 다른 후보들도 각종 통신비 인하책을 꺼내들었다. 그만큼 가계지출에서 통신비의 비중을 무시하기가 어렵다.

■ 통신비 통계를 둘러싼 논쟁

ⓒ연합뉴스지난 4월11일 문재인 후보가 ‘가계 통신비 부담 절감 8대 정책’을 발표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통신비 경감에 여론의 반응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를 두고 이통사와 시민단체 간 진실 공방이 벌어진다. 진짜 가계의 통신비 부담이 크냐는 논쟁이 그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서로 다른 기준과 통계치를 꺼내들기 때문에 판정하기가 어렵다. 이통사를 비롯해 ‘통신비 유지’를 주장하는 쪽은 주로 OECD가 2015년 발표한 ‘디지털 이코노미 아웃룩 2015’라는 자료를 활용한다. 2014년 9월 기준, 각 요금제 구간별 요금을 구매력 평가 지수(PPP)를 적용해 비교한 자료다. 여기서 한국은 OECD 34개국 가운데 8~19번째로 저렴한 나라로 나타난다. 이통사들은 이 자료를 근거로 한국 통신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싸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자료는 실제 한국 이동통신 요금 수준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기 적절치 않은 데이터다. ‘30통화+100MB’ ‘100통화+1GB’ ‘300통화+1GB’ ‘900통화+2GB’ ‘100통화+2GB’ 등 총 5개 구간을 나누어서 비교했는데, 나라나 통신사마다 요금제 형식이 모두 달라 단순 비교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가령 OECD는 ‘300통화+1GB’ 구간에서 한국 평균 요금이 27.71달러(약 3만1430원)라고 설명하지만, 정작 이 조건을 그대로 만족시키는 KT 데이터 선택형(음성 100분, 데이터 1GB) 요금제의 가격은 훨씬 비싼 월 5만3900원이다. 당시 요금제 비교가 2014년 9월을 기준으로 작성된 점, 데이터 신호 종류(3G, 4G)에 따른 분리 비교도 안 된 점을 고려하면, 단순히 이 데이터를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싸다’는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

시민단체는 주로 가구당 통신비 부담 정도를 비교한 지수를 언급한다. 같은 OECD가 2013년에 만든 자료에 따르면 유선전화, 인터넷, 이동통신비를 더한 한국 월평균 가계 통신비는 148.39달러로, 일본과 미국에 이어 OECD 26개국 중 세 번째로 높았다. 그러나 OECD는 2015년 자료에서 이 통계를 내놓지 않았다.

가구별로 체감하는 통신비 부담을 그나마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는 수치가 가계지출 내 통신비 비율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6년 4분기 월별 가계 통신비 지출액은 평균 14만4001원(단말기 가격 제외 시 12만4496원, 2인 이상 가계 기준)이다. 이를 같은 시기 평균 가계지출(336만1000원)에 대조해보면 가계 통신비 비율은 약 4.28%에 달한다. 2013년 4.68%, 2014년 4.48%, 2015년 4.38%로 점차 낮아지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한 가정 전체 지출액의 4% 이상을 통신비로 지출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통신비는 의식주, 교육비, 교통비 다음으로 가계지출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의복비, 교육비, 교통비에 비해 통신비는 돈을 가져간 대상(이동통신사)이 명확해서 대중의 요금체계 불만이 가장 높은 항목이다. 그 덕분에 통신비는 정치권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주제 중 하나다. 20대 국회에 들어서도 대표적인 관련법 중 하나인 ‘단통법’ 개정안이 쏟아졌는데, 이미 지난 1년 사이 비슷한 입법안이 총 17건이나 의원 입법으로 발의되어 국회에 계류 중이다.

■ 기본료 폐지가 성공하려면?

ⓒ연합뉴스6월15일 통신소비자 시민단체 회원들이 ‘보편적 요금 인하’를 촉구하고 있다.
체감하는 부담이 명확하다면, 정권의 힘이 강할 때 기업에 힘을 가해 가격을 내리는 게 명쾌해 보일 수 있다. 이런 ‘쉬운 해결’은 의외의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풍선효과다. 기본료를 없애더라도 이통사 처지에서는 다른 요금 항목의 인상 요인을 어떻게든 만들어내려 할 것이다. 결국 소관부처인 미래부의 요금체계 감시 정도가 정책 성공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기본료를 없애고 통신요금을 일시적으로 내리더라도, 개별 소비자가 더 많은 데이터 패킷을 확보할 수 있는 상위 요금제로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 이통사 역시 실제로는 이를 유도하기 위해 요금체계를 재배열할 가능성이 높다. 가령 현재 4만6200원(통화 무제한, 데이터 2.2GB) 요금을 쓰던 사용자가, 기본료 폐지 직후 같은 값에 3.5GB 요금제로 전환하는 식이다. 물론 이 역시 냉정하게 따지면 같은 가격으로 더 많은 서비스를 누리게 되는 ‘소비자 후생 증대’다. 그러나 통신비에 대한 가계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데이터 사용량이 점차 늘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가계 통신비 부담 경감’이라는 최종 목적이 예상했던 것만큼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통신 시장은 기본료보다 복잡한 유통 구조가 더 큰 왜곡을 만든다. 단순히 기본료를 경감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단말기 유통 구조를 투명하게 만드는 게 더 시급한 과제다. 현재 한국 이동통신 시장은 제조사가 유통망을 갖추지 않은 채, 이통사가 단말기와 통신서비스 유통을 한꺼번에 담당한다. 완전자급제, 즉 단말기와 통신서비스 판매를 분리하는 정책도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럴 경우 불법 보조금으로 대표되는 각종 요금제 왜곡 효과를 없애고, 이통사의 상품을 좀 더 단순화할 수 있다는 기대가 따른다.

물론 이통사는 완전자급제에 반발한다. “우리는 기본료를 내리지 않는 대신 다양한 할인 혜택과 단말기 보조금 및 지원금을 제공한다. 이 역시 합쳐놓고 보면 통신비 경감에 도움을 준다”라고 주장한다. 이는 조삼모사에 가까운 논리다. 불법 보조금을 막기 위해 이른바 ‘단통법’이 시행됐지만, 단통법 역시 결국 “단말기 보조금만 받을래? 아니면 요금 할인 20%를 받을래?” 하는 제한된 선택지에 불과하다. 이통사는 “전국 1만여 대리점의 생계는 어쩌란 말인가. 유통시장의 혼란이 우려되기 때문에 완전자급제는 시기상조다”라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정보 불균형에 의한 피해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단순하고, 업체별로 비교하기 쉬운 시장 환경’이 필요하다는 점은 명확하다.

기본료 폐지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자, ‘효과를 장담할 수 없는 정책’이다. 중요한 것은 통신시장이 왜곡되어 있으며, 평범한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게 꼬여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를 많이 사용하지 않아도 필수적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나라’ ‘공공장소에서는 데이터 걱정 없이 품질 좋은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 ‘투명한 시장 구조’ 등이 함께 추진되어야 가계비 부담이 실제로 경감될 수 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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