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함께 분식을 대표하는 음식, 국수. 국수는 어떻게 만드는가. 곡물의 가루나 곡물 혹은 서류의 전분에 물을 부어 이겨 반죽을 개는 데서 시작한다. 그 반죽을 가닥이 지게 뽑는 데는, 실처럼 뽑아내는 데는 크게 세 갈래 방법이 있다.

먼저 반죽을 밀어 넓게 편 다음 칼로 써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국수를 도면·도삭면·절면·칼국수라고 한다. 이때 ‘도삭(刀削)’은 칼국수 칼질이 다가 아니다. 칼로 뜨기도 한고, 긁기도 하고, 저미기도 해 한 반죽에서 다양한 형상과 물성과 질감을 빚어낸다. 기계식 칼날도 손 칼질과 다른 물성과 질감의 국수를 만들어낸다. 다음으로 반죽을 늘여 뽑는 방법이 있다. 곧 납면(拉麵)이다. 말이 좀 무섭다. ‘납치(拉致)’의 ‘랍’이다. 곧 반죽을 힘을 주어 잡아당기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수연면(手延麵)도 같은 뜻이다. 손으로 잡아 늘인다는 말이다. 중국 음식점에서는 흔히 반죽을 탕탕 치면서 뽑는 데 착안한 수타면(手打麵)이라는 말도 쓰지만, 그 방법과 기술의 실제는 납면·수연면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기술과 상관없이, 우리가 오늘날 먹는 라면, 라멘이라는 말만은 납면에서 왔다. 끝으로 반죽을 틀·대롱·구멍 따위에 통과시켜 얻는 압출면(壓出麵)이 있다. 스파게티가 대표적이다. 강원도의 올챙이국수도 압출면이다. 바가지에 난 구멍으로 묽은 반죽을 통과시켜 만든 올챙이국수야말로 원초적인 압출면이다. 조선 시대에 좀 사는 집에서는 바가지에 뚫은 구멍에 갠 녹두 녹말을 흘려보내 국수를 얻기도 했다.

이에 못잖은 압출면이 바로 냉면 사리이다. 김준근의 그림 〈국수 누르는 모양〉에서 보는 대로다. 일제강점기의 인기 대중잡지 〈별건곤〉 1931년 제41호는 당시의 냉면 내리는 모습을 이렇게 기록했다. “국수의 누르는 방법도 평양식과 서울식이 다르다. 서울에서는 분공이 위에 여러 사람이 타고 앉아서 내리 누르지만 평양에서는 사다리 같은 것을 놓고 한 사람이 분공이 위에다 등을 대고 거꾸로 매달려서 그 사다리를 한 칸 한 칸씩 발로 뻗디디며 누른다.”

지렛대에 등을 대고 국수틀에 반죽을 밀어넣어
 

김준근의 〈국수 누르는 모양〉,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소장.

사다리에 제면 노동자가 거꾸로 매달린 채다. 생사리 받을 솥은 펄펄 끓고, 삶아 건지는 사람도 분주하다. 사리는 잘 나올지, 주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한 사람은 지렛대(분공이)에 등을 대고 한 사람은 국수틀에 반죽을 밀어넣느라 뽑느라 아등바등 힘을 쓴다. 주인의 심정은 모르겠고, 그림을 보는 내 등이 아파온다. 내가 물구나무 선 듯 어지럽다. 〈별건곤〉의 설명대로라면 평양식 사리 제면법일까. 오늘날 이른바 기계식 냉면, 자가 제면을 한다는 집에 가면 사리를 뽑는 기계와 면 삶는 솥이 아래위로 한 벌을 이룬다. 그러나 몇십 년 전만 해도 어떻게든 사람이 눌러야 했다. 그래야 1910년대를 지나면서 여름 명물, 여름 별미로 도시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은 냉면 한철 장사를 감당할 수 있다. 〈별건곤〉은 같은 꼭지에서 냉면집 사람들을 “눌러 먹고 사는 사람”이라 일컬었다. 같은 문단의 마무리는 이렇다. “어떻게 누르든지 누르기는 누른다. 여름철에 눌러 먹고 사는 사람은 오직 그 친구들이다.” 이 고역이 영 안됐는지 마무리 직전에는 이렇게 혀를 찼다. “냉면 많이 먹는 나라 사람으로 아직까지 냉면 누르는 무슨 편리한 기계 하나를 발명하지 못한 것은 참 냉소(冷笑)할 일이다.”

글쓴이의 혀 차는 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진 덕분일까. 1932년 드디어 반기계식 주철 제면기 발명 소식이 조선어 언론에 나타난다. 반기계식 주철 제면기는 그림과 같은 제면보다 세 곱절 더한 제면 속도를 보였다고 한다. 100년도 안 됐다. 기본기술 장치, 반기계 장치라도 등장해 제면을 도운 지가. 냉면 한 그릇 이렇게 먹기까지, 우리 동포 모두 고생 참 많았다.

기자명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