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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한 그릇 먹기까지 참 고생 많았다

2017년 06월 30일(금) 제510호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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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함께 분식을 대표하는 음식, 국수. 국수는 어떻게 만드는가. 곡물의 가루나 곡물 혹은 서류의 전분에 물을 부어 이겨 반죽을 개는 데서 시작한다. 그 반죽을 가닥이 지게 뽑는 데는, 실처럼 뽑아내는 데는 크게 세 갈래 방법이 있다.

먼저 반죽을 밀어 넓게 편 다음 칼로 써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국수를 도면·도삭면·절면·칼국수라고 한다. 이때 ‘도삭(刀削)’은 칼국수 칼질이 다가 아니다. 칼로 뜨기도 한고, 긁기도 하고, 저미기도 해 한 반죽에서 다양한 형상과 물성과 질감을 빚어낸다. 기계식 칼날도 손 칼질과 다른 물성과 질감의 국수를 만들어낸다. 다음으로 반죽을 늘여 뽑는 방법이 있다. 곧 납면(拉麵)이다. 말이 좀 무섭다. ‘납치(拉致)’의 ‘랍’이다. 곧 반죽을 힘을 주어 잡아당기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수연면(手延麵)도 같은 뜻이다. 손으로 잡아 늘인다는 말이다. 중국 음식점에서는 흔히 반죽을 탕탕 치면서 뽑는 데 착안한 수타면(手打麵)이라는 말도 쓰지만, 그 방법과 기술의 실제는 납면·수연면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기술과 상관없이, 우리가 오늘날 먹는 라면, 라멘이라는 말만은 납면에서 왔다. 끝으로 반죽을 틀·대롱·구멍 따위에 통과시켜 얻는 압출면(壓出麵)이 있다. 스파게티가 대표적이다. 강원도의 올챙이국수도 압출면이다. 바가지에 난 구멍으로 묽은 반죽을 통과시켜 만든 올챙이국수야말로 원초적인 압출면이다. 조선 시대에 좀 사는 집에서는 바가지에 뚫은 구멍에 갠 녹두 녹말을 흘려보내 국수를 얻기도 했다.

이에 못잖은 압출면이 바로 냉면 사리이다. 김준근의 그림 <국수 누르는 모양>에서 보는 대로다. 일제강점기의 인기 대중잡지 <별건곤> 1931년 제41호는 당시의 냉면 내리는 모습을 이렇게 기록했다. “국수의 누르는 방법도 평양식과 서울식이 다르다. 서울에서는 분공이 위에 여러 사람이 타고 앉아서 내리 누르지만 평양에서는 사다리 같은 것을 놓고 한 사람이 분공이 위에다 등을 대고 거꾸로 매달려서 그 사다리를 한 칸 한 칸씩 발로 뻗디디며 누른다.”

지렛대에 등을 대고 국수틀에 반죽을 밀어넣어

김준근의 <국수 누르는 모양>,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소장.
사다리에 제면 노동자가 거꾸로 매달린 채다. 생사리 받을 솥은 펄펄 끓고, 삶아 건지는 사람도 분주하다. 사리는 잘 나올지, 주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한 사람은 지렛대(분공이)에 등을 대고 한 사람은 국수틀에 반죽을 밀어넣느라 뽑느라 아등바등 힘을 쓴다. 주인의 심정은 모르겠고, 그림을 보는 내 등이 아파온다. 내가 물구나무 선 듯 어지럽다. <별건곤>의 설명대로라면 평양식 사리 제면법일까. 오늘날 이른바 기계식 냉면, 자가 제면을 한다는 집에 가면 사리를 뽑는 기계와 면 삶는 솥이 아래위로 한 벌을 이룬다. 그러나 몇십 년 전만 해도 어떻게든 사람이 눌러야 했다. 그래야 1910년대를 지나면서 여름 명물, 여름 별미로 도시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은 냉면 한철 장사를 감당할 수 있다. <별건곤>은 같은 꼭지에서 냉면집 사람들을 “눌러 먹고 사는 사람”이라 일컬었다. 같은 문단의 마무리는 이렇다. “어떻게 누르든지 누르기는 누른다. 여름철에 눌러 먹고 사는 사람은 오직 그 친구들이다.” 이 고역이 영 안됐는지 마무리 직전에는 이렇게 혀를 찼다. “냉면 많이 먹는 나라 사람으로 아직까지 냉면 누르는 무슨 편리한 기계 하나를 발명하지 못한 것은 참 냉소(冷笑)할 일이다.”

글쓴이의 혀 차는 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진 덕분일까. 1932년 드디어 반기계식 주철 제면기 발명 소식이 조선어 언론에 나타난다. 반기계식 주철 제면기는 그림과 같은 제면보다 세 곱절 더한 제면 속도를 보였다고 한다. 100년도 안 됐다. 기본기술 장치, 반기계 장치라도 등장해 제면을 도운 지가. 냉면 한 그릇 이렇게 먹기까지, 우리 동포 모두 고생 참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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