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축산업의 중심지로, 목화·밀 등의 생산지이기도 한 오클라호마시티. 시사에 관심 있는 이들은 1995년 사상자 168명과 부상자 500여 명이 발생한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정부 건물 폭탄테러를 떠올릴 것이다. 이 조용하고 무료한 도시가 들썩거릴 때가 있다. 바로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의 농구가 열리는 날이다. 2008년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연고지를 오클라호마시티로 옮기며 오클라호마시티 선더가 창단되었으니 농구단의 역사는 매우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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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팀은 2007년 케빈 듀랜트(28)를, 2008년 드래프트에서는 러셀 웨스트브룩을 데려와 키우면서 내실을 다졌다. 2011년에는 서부 콘퍼런스 준우승을, 2012년에는 NBA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이 농구팀은 도시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특히 듀랜트와 웨스트브룩 두 선수는 이 도시에서 ‘대통령급’ 인기를 누렸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팀의 간판 듀랜트가 팀을 떠난다고 발표했다. 2013~2014 시즌 득점왕이자 정규 리그 MVP였던 그는 팀의 기둥과도 같은 선수였다. 영웅은 하루아침에 배신자가 되었다. 오클라호마시티 팬들은 듀랜트의 유니폼을 불태우는가 하면 휴가를 내고 경기장을 찾아 그에게 야유를 보내기까지 했다.

동갑내기 웨스트브룩은 듀랜트와 절친한 친구였다. 듀랜트가 직접 차를 몰아 웨스트브룩의 후원 행사에 함께 다닐 정도였다. 국가대표 팀에서도 버스 옆자리에 앉았고, 바로 옆 로커를 썼다. 하지만 이적과 함께 둘의 관계도 틀어졌다. 이적 소식을 접한 웨스트브룩은 친구를 비난하고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경기 도중 듀랜트가 말을 건네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경기가 끝나고 동료들에게 듀랜트와 인사하지 말라고 막기까지 했다. 올스타전에서 선수들이 둘의 화해 자리를 주선했지만, 분위기는 냉랭했다.

듀랜트가 많은 비난을 감수하고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이적을 감행한 이유는 우승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오클라호마시티 소속으로 2011~2012 시즌 NBA 파이널에 올랐던 듀랜트는 당시 르브론 제임스가 이끄는 마이애미 히트에 졌다. 로커룸에서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던 듀랜트는 우승팀보다 더 많은 뉴스를 만들었다.

듀랜트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이적 1년 만에 우승을 일구었다. 파이널 MVP까지 거머쥐었다. 듀랜트는 5경기에서 평균 35.2점, 8.4리바운드, 5.4어시스트, 야투 성공률 55.6%, 3점슛 성공률 48.6% 등 만화 같은 기록을 써내려갔다. 팀 동료인 NBA 최고 슈퍼스타 스티븐 커리마저 조연으로 만들었다. ‘넘버원’ 르브론 제임스를 5년 만에 꺾었다는 것도 ‘만년 2등’이던 그에게는 성과였다. 듀랜트는 득점왕을 차지하고도 정규 시즌 MVP 투표에서 세 차례나 2등에 머물렀다.

우승을 했지만 듀랜트는 아직도 2인자 자리에 있다. 르브론 제임스와 스티븐 커리에 비해 기록이 여전히 모자란다. 또 스타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배신자’ 이미지 극복도 필수다. 그러나 올 시즌 우승으로 듀랜트는 자신이 넘버원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충분히 증명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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