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불시 발언과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의 단독 인터뷰(〈한겨레〉 6월7일, 도종환 “싸워야 할 문제엔 싸우겠다”)로 우려되었던 역사 논쟁이 진정되었다. 이처럼 빠른 진화는 적시에 나온 도 후보자의 청문회 해명이 유효했다. “역사 문제는 학문적 연구와 토론을 통해 밝혀야 할 문제이며, 정치가 역사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이로써 화제의 비중은 격감했지만, 이번 기회에 주류 역사학계와 유사 역사학자들 사이에 벌어진 고대사 논쟁의 틈을 들여다보고 싶다. 워낙 고대사가 방대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왕 화제에 오른 가야사만 다루겠다.

ⓒ이지영 그림

한국과 일본 역사학자들은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을 놓고 오랫동안 설전을 벌여왔다. 일본 학자들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은 ‘기원 4세기 중반부터 6세기 중반까지 일본이 임나(가야)를 중심으로 한반도 남부를 200여 년간 지배했다’는 가설로, 경성제국대학과 조선사편수회에 몸담았던 스에마쓰 야스카즈가 처음 가다듬은 것이다. 일본은 이 설을 앞세워 임진왜란(1592년)과 한·일 강제병합(1910년)을 합리화해왔는데, 메이지 초기 시대에 분출되어 일본 우익들에 의해 줄기차게 명맥을 이어온 정한론(征韓論)의 뿌리도 이와 같다. 과거 한반도 남부가 일본 땅이었으므로 한반도를 다시 병합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아시아·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한 1945년 이후 잠시 수그러들었다가 최근 일본 역사 교과서에 다시 등장했다.


김현구 전 고려대 역사교육학과 교수의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창비, 2010)는 일본 학자들의 대표적 한·일 고대사 왜곡인 임나일본부설을 촘촘한 역사적 재구성을 통해 반박하고 있다. 그런데 매우 재미있게도, 이 책이 임나일본부설을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오히려 더 악성으로 그것을 옹호한다고 비난하고 나선 이가 있었다. 바로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다.

이덕일은 〈우리 안의 식민사관〉(만권당, 2014)에서 “김현구는 임나일본부가 실제로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쓴 인물이다”, “〈일본서기〉가 왜곡과 과장이 많은 역사서라는 것은 국제적 상식인데, 〈일본서기〉를 사실로 전제하고 논리를 펼”쳤다, “김현구는 백제를 야마토 조정(한반도가 삼국시대일 당시, 일본열도를 대표하던 세력)의 속국이라고 주장한다. 야마토 조정이 백제를 통해 한반도 남부를 통치했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사실무근이고, 상상에 근거한 오독이다. 이 때문에 이 소장은 김 전 교수에게서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했고, 1심(2016년 2월5일)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일본 학자들이 임나일본부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주요 근거 가운데 하나가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일본현읍(任那日本縣邑)’이라는 단어다. 일본 학자들은 임나에 일본현읍이 있었다는 이 어구를 야마토 정권이 임나에 일본 직할령을 두었던 것으로 해석한다. 김 전 교수는 여기에 대해 “‘임나일본현읍’의 ‘일본(日本)’이라는 표현은 7세기에 이르러서야 생겨난 말로 〈일본서기〉에서 ‘임나일본현읍’이 있었다고 말하는 509년에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말이다. 아마 7세기 후반 일본이라는 표현이 생겨난 뒤 720년 〈일본서기〉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일본’이라는 표현을 집어넣음으로써 ‘임나일본현읍’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것만 봐도 김 전 교수가 〈일본서기〉를 사실로 전제했다는 이 소장의 주장이 억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소장의 더 심각한 오해는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가 백제를 야마토 정권의 속국이라고 주장한다는 빗나간 비판이다. 김 전 교수에 따르면, 백제가 임나가야의 실질적인 지배자였으며, 신라를 자극하지 않을 목적에서 신라와 가야 국경의 완충지대에 왜군 500~1000명을 주둔시켜놓았다. 훗날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패망한 뒤, 백제의 지배층이 일본으로 망명을 오게 되었을 때, 일본은 백제가 가야를 지배했던 역사 전체를 자신의 것으로 전유했다.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는 그 조작이 얼마나 어수룩했는지를 조목조목 드러낸다.

일본 학자들이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또 다른 주요 근거는, 고구려군이 왜군을 쫓아 임나까지 내려갔다는 광개토대왕비의 비문이다. 현재 한·일 학계는 이 문구를 통해 광개토대왕의 훈적을 강조하다 보니 왜의 세력이 상당히 과장되게 그려졌던 것으로 본다. 한국인의 의문은 백제·가야 연합군이 고구려와 싸우는데 왜가 끼어든 사정이다. “일본열도에서 온 왜는 백제에서 선진 문물을 도입하고 그 대가로 백제를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군대였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광개토대왕과 싸운 왜군은 ‘백제 용병’이었다. 당시 한반도는 백제·고구려·신라 3국이 싸우고 있었고, 대등하지는 않았지만 왜는 그 사이에서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수 있었다. 김춘추가 왜국을 방문했던 이유다.

고대사는 언제나 현대사였다?

대한민국도 일본도 중국도 모두 현대에 새로 출발한 국가다. 고대사는 지금의 대한민국도 일본도 중국도 아닌 다른 나라다. 고대사의 진실은 현재의 동아시아가 지금보다 더 밀접한 교집합으로 얽혀 있다고 말하지, 서로 단절된 세계라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고대사는 언제나 현대사였다고 말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중국과 일본이 하는 것을 왜 우리는 못하거나 안 하느냐는 힐난도 없지 않지만, 그러다 보면 국수주의와 침략을 정당화하는 그들의 일국사적 관점의 국사를 비판하고 제어할 자격을 잃게 된다.

지난 5월11일, 대법원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이 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2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의 판결 취지는 이랬다. “이 소장의 주장이 비판의 여지가 있더라도 이는 학문적 논쟁과 사상의 자유경쟁 영역에서 다뤄지는 게 바람직하다. 학문과 사상의 영역에서 형사법의 개입은 가급적 자제돼야 한다.” 원래 이 소장은 학문적 논쟁과 사상의 자유경쟁을 부정해온 사람이지만, 그에게도 법은 은혜롭게 적용되었다. 해석은 여러 가지일 수 있지만 오독은 그 여러 가지의 자유에 속하지 않는다. 아니, 성실한 학자에게는 오독이 허용되지 않는다. 뉴라이트가 시도했던 교학사 역사 교과서 필진에는 제대로 된 역사 전공자가 없었고, 고대사 논쟁을 벌이는 유사 역사학자 속에도 고대사 전공자는 찾기 드물다. 뉴라이트는 그 이유를 ‘역사학자들이 모두 좌파’이기 때문이라고 하고, 유사 역사학자들은 ‘주류 역사학자들이 모두 식민사관 추종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