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생활 초기, 친한 친구는 중국 앱들이었다. 결국 휴대전화에 중국 앱을 잔뜩 깔아놓고 혼자 놀았다. 이거저거 누르다 보면 시간이 잘 갔다.

가장 친하게 지낸 앱은 타오바오 쇼핑몰이었다. 알고 있는 중국어 몇 개를 생각나는 대로 입력해봤다. 이미지로 물건을 검색하는 기능도 있었다. 마음에 드는 가방 사진을 타오바오 검색창에 올리기만 하면 사진 속 가방처럼 생긴 중국 전역의 가방이 다 떴다. 솔직히 좀 소름이 돋았다. 무서움도 잠시, 내 얼굴 사진을 넣어봤다. 가발과 마네킹이 나왔다.

상품들의 출고지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처음 보는 지명에 눈길이 갔다. 마음에 드는 공책은 죄다 저장성 진화시에 있었다. 검색을 해보니 진화시는 소시지가 유명하단다. 소매 디테일이 마음에 드는 원피스는 장쑤성 창저우에 있었다. 찾아보니 공룡테마파크가 있다고 한다.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렸을 뿐인데도 중국 전역을 여행한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래도 중국까지 왔는데 이불 안에만 있긴 좀 그랬다. 이불 밖으로 나갔다. 중국어 실력은 여전히 형편없었다. 타오바오와 친하게 지내는 사이 늘어난 어휘라곤 유통기한, 사이즈 일시품절, 교환, 무료배송 따위뿐이었다. 친구들은 타오바오에서 쇼핑 용어를 통달한 나를 보고 까무러쳤다. 그래도 다시 반겨주니 감사했다.

디디추싱이 우버차이나를 인수했다.

“디디 부르자.” 중국 친구들은 모이면 이 말부터 했다. 당시 내가 아는 ‘디디’라곤 남동생이란 뜻의 ‘弟弟’뿐이었다. 처음엔 남동생 불러서 운전을 시키자는 줄 알고 어리둥절했다. 친구들이 일제히 쳐다보던 휴대전화 화면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다들 중국판 우버(Uber)라 불리는 디디추싱(滴滴出行)이라는 앱을 켜고 호출이 가능한 주변 차량을 검색 중이었다. 우버를 규제하는 한국에서 온 내 눈엔 신기한 광경이었다.


“잡혔어.” 배차가 됐다는 뜻이다. 몇 분 뒤 평범한 승용차들이 나타났다. 차 한 대에 서너 명씩 나눠 탄 뒤 목적지에서 다시 만났다.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할 필요도, 현금이나 카드를 꺼내 결제할 필요도 없었다. 목적지는 배차 신청 당시 입력하고, 요금은 사전에 입력해놓은 지불수단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갔다.

선생님은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디디추싱 대신 버스나 택시를 타라”고 했다. 우버는 택시처럼 영수증을 끊을 수도, 사고가 나면 보험 처리를 할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디디를 탔다. 택시보다 싼 디디가 자꾸 할인쿠폰까지 날리니 정말이지 나가서 놀 수밖에 없었다.

우버도 넘지 못한 대륙의 ‘관시’

귀국 후 2016년 7월, 중국 교통운수부가 차량 공유 서비스를 합법화했다. ‘우버와 디디추싱의 승리’라는 기사가 쏟아졌지만 사실상 디디추싱의 승리로 읽혔다. 이미 디디추싱의 중국 차량 공유 시장점유율이 80%를 넘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디디추싱이 우버차이나를 인수했다. 우버가 디디추싱을 이기지 못한 이유를 분석한 다양한 글이 쏟아졌다. 개인적으로는, 디디추싱이 알리페이 및 위챗과 ‘관시(關係)’를 맺은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메신저에 광고창 하나 띄우는 수준이 아니었다. 전자지갑 앱과 메신저 앱에 디디추싱 차량 호출과 결제 기능을 묶어버리니 굳이 우버 앱을 켤 필요가 없어졌다. 올해 초 중국 미인도 스타일로 얼굴을 보정해주는 기능으로 화제가 된 피투(PITU)도 중국 앱이다. 중국을 떠나서도 중국 앱과의 우정은 더 돈독해져간다.

기자명 허은선 (캐리어를끄는소녀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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