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계열 정당이 독자적으로 새누리당 계열 정당을 이긴 건 19대 대선이 처음이라는 게 정치권 ‘선수’들의 이구동성이다. 그 중심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있다. ‘노무현 탄핵’의 원죄에 오랫동안 짓눌려 있던 추 대표는 ‘노무현의 친구’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선봉장이 되면서 비로소 부담을 좀 덜었다.

ⓒ시사IN 신선영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책임총리제도 좋지만 책임정당제가 우선이다. 정당이 국정 운영의 성공에 책임을 져야 한다. 관료주의를 감시 감독하는 게 당이다. 당이 관료주의를 감독하고 견제하면 국정 운영에 생산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라고 말했다.
‘대구’ 출신 ‘여성’ ‘판사’가 ‘호남당’에서 정치를 시작해 ‘서울 지역’ ‘5선’ 의원과 선출직 최고위원, 당 대표에 오르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한국 정치사의 명장면들이다. 그 어느 정치인보다 ‘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추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도 집권 여당의 현대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원칙과 소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남이 가지 않는 길도 거침없이 선택해온 추미애의 리더십을 남성 ‘파트너’들을 조연 삼아 들여다본다. 추 대표와의 인터뷰는 6월14일 서울 북촌의 한 한옥카페에서 진행했다.

니카이 도시히로 “우리 속담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라는 말이 있고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다.” 6월12일 일본 아베 총리의 특사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한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을 앞에 두고 추미애 대표가 점잖게 입을 열었다. “일본이 돈도 지불했는데 (위안부 관련) 협상을 처음부터 다시 하자는 바보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통하지 않는다” “(한·일 관계를 저해하는) 한 줌의 간계를 꾸미는 일당은 박멸을 해가야 한다” 등 니카이 간사장이 방한을 전후해 내놓은 망언들로 국내 여론이 부글부글 끓던 터였다.

기자들이 퇴장한 후 니카이 간사장은 “그래도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추 대표가 정색을 했다. “약속이니까 지켜야 한다는 건 계약법상의 논리고, 위안부 문제는 전시에 어린 소녀를 성노예로 끌고 간 인권과 정의에 관한 자연법의 문제이므로 계약법 논리를 적용할 수 없다. 우리나라 사법제도는 3심 끝나 확정판결이 났어도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뒤집는다. 그래서 요즘 〈재심〉이라는 영화가 대박이다.”

ⓒ연합뉴스6월12일 니카이 도시히로 일본 자민당 간사장(왼쪽)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전문 법률 용어까지 쓰며 직격탄을 날리자 니카이 간사장의 얼굴이 벌게졌고 배석했던 한국 외교부 관계자들도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추 대표는 “외교 특사로 온 사람이니 ‘말실수 좀 하셨네’ 하며 은유적으로 넘어가려 했다. 그런데 대화를 하다 보니 재협상 문제에 대해 논리적이고 똑 부러지게 우리 쪽 입장을 전할 필요가 있겠더라. 법률 얘기가 나오니까 주변 사람들이 ‘5분 뒤 출발’이라는 메모를 들이밀며 간사장을 빨리 빼려 서두르고 대화 내용은 브리핑하지 말자고 하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면담 내용을 공개한 추 대표는 이틀 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에 나가 문재인 정부에서 재협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연합뉴스오른쪽은 탄핵 관련 긴급회동을 마치고 나온 김무성 의원.

박지원과 김무성 판사 출신 당 대표의 존재감이 부각된 또 다른 사례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과정에서 추 대표는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와 ‘밀당’을 하느라 진을 뺐다. 특히 민주당을 가장 크게 흔드는 이가 박지원 대표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개헌 카드가 JTBC의 태블릿 PC 보도로 무산되자, 박 전 대통령은 거국 총리론을 들고 나왔다. 박지원 대표가 ‘선총리-후탄핵론’을 외치자 민주당 의원들마저 상당수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추 대표가 돌연 박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광장에서는 대통령 하야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는데 국회에서는 누가 총리가 될지 잿밥에만 더 관심이 가는 상황이 계속되면 결국 국민이 다치게 돼 있다. 대통령을 직접 만나 퇴진을 설득하려고 했다”라는 설명이다. 역풍이 거셌다. 국민은 “추미애가 뭔가 뒷거래를 하려는 거 아니냐”라며 의심했고, 박지원 대표는 “똥볼을 찼다”라고 비난했다. 추 대표는 탄핵에 미온적이던 민주당에 조건을 제시했다. “박근혜 퇴진을 당론으로 채택해주면 대통령을 안 만나겠다. 공개적으로 하나 만나서 하나, 퇴진하라는 내용은 같으니까.” 그렇게 박근혜 퇴진 당론이 정해지면서 거국 총리파는 자연스레 소멸했다.

며칠 후 이번에는 새누리당 비박계가 흔들렸다. 청와대가 ‘4월 말 퇴진 6월 대선’ 식의 새로운 사인을 보내자 새누리당 안에서 ‘스스로 물러난다니 그 정도 시간은 주자’는 기류가 형성된 것이다. 2016년 12월1일 비박계를 이끌던 김무성 의원을 만난 추 대표는 이렇게 설득했다. “선배님, 탄핵소추 못하면 비박은 정치적 생명이 없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제가 법률가인데 이 재판 오래 안 갑니다. 왜냐면 이건 형사책임을 묻는 게 아니고 행상책임(법에 대한 그릇된 태도에 대해 묻는 책임)을 묻는 겁니다. 태도책임, 헌법 가치를 수호할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를 보는 것이지 유무죄를 다투는 게 아닙니다.”

김 의원은 잘 모르겠으니 적겠다며 수첩에 ‘행상책임(형사 X)’라고 썼다. 그런데 김무성 의원의 수첩을 본 기자들이 난리가 났다. “추미애가 형사책임은 안 묻기로 딜을 했다”라는 오보가 양산됐고, 박지원 대표는 또다시 “똥볼을 찼다”라고 비판했다. 이후 가장 먼저 비판 보도를 한 JTBC가 사과 방송을 내보냈고 이런 과정을 거쳐 ‘행상책임’이라는 법률 용어는 전 국민에게 알려졌다. 석 달 후 박근혜 파면을 선고한 헌법재판소의 논리도 바로 형사책임이 아닌 행상책임을 물은 것이다.

ⓒ연합뉴스1995년 9월21일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운데)와 함께 선 추미애 전 판사.

김대중 판사 시절, 추미애는 ‘까칠녀’로 통했다. 군부독재 시절 검찰과 경찰이 공안 정국을 등에 업고 시위 학생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남발할 때 ‘법적’으로 용납이 안 되면 기각하기 일쑤였다. 한번은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며 경찰서장이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와 “내일 다시 신청할 테니 꼭 발부해달라”며 신경질을 낸 일이 있었다. 추 판사가 “영장청구권자는 검사인데 서장께서 왜 직접 전화를 하는가? 판사가 한번 결정해 외부로 나간 일은 번복할 수 없다”라고 응수했는데, 다음 날 법원장이 불러 “아버지 같은 경찰서장에게 도대체 뭐라 했길래 서장이 그리 화가 난 것이냐”라며 질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라 검찰 쪽으로 문제 제기를 했고 결국 경찰서장이 찾아와 사과를 하는 선에서 마무리가 됐다. 나이 어린 초임 판사에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만만하게 보던 주위 사람들에게 그는 그렇게 ‘껄끄러운 여판사’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판사 10년차이던 1995년, 광주고법 판사 추미애가 김대중 총재가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게 된 건 선배 변호사의 권유를 받고서다. 선배 변호사는 당시 국민회의 창당 발기인으로 활동하며 법조계 인재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정치 발전 없이는 사법 발전이 있을 수 없겠구나”를 뼈저리게 느끼던 추 판사에게 “그래서 정권교체가 필요하다”는 설득이 주효했다.

‘대구’ 출신의 ‘현직’ ‘여성’ ‘판사’가 합류한다는 건 대권 4수를 꿈꾸던 김대중 총재(DJ)에게 엄청난 힘이 되었다. 당시만 해도 현직 판검사 출신은 주로 여당을 택했고 특히나 영남 출신은 DJ 당에 얼씬도 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1995년 8월 DJ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추미애는 “이왕 정치를 시작할 거면 지역구에 도전하고 싶다”라는 뜻밖의 제안을 내놓았다. 여성 신인들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구 대신 전국구(현 비례대표)를 선호하곤 했는데, 전국구 상위 순번이 확실시되던 그가 먼저 지역구 도전을 선언한 것이다. DJ는 물론이고 동료 선후배들이 일제히 ‘대단하다’며 칭찬했고, 그렇게 시작한 지역구 도전은 추미애를 ‘여성 최초의 지역구 5선 의원’으로 만드는 초석이 되었다.

소선거구제로 치러진 총선에서 서울 지역의 첫 여성 지역구 의원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추미애는 이듬해 정동영·천정배·신기남·정세균·김민석·김한길 등 15대 국회 초선 동기들과 함께 ‘DJ 특보단’을 꾸려 정권교체를 위한 전국 버스 투어에 나섰다. 대선 20여 일을 앞두고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도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동분서주했는데, 그때 만든 유세단 이름이 ‘잔다르크 유세단’이다. 이후 ‘추다르크’가 추 대표의 별칭이 되었다.

ⓒ연합뉴스2002년 노무현 대선 후보(가운데)와 함께 손을 들고 있는 모습.

노무현 “민주적 절차를 통해 뽑은 후보를 버리자는 것은 민주당을 우리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이고, 국민 앞에 부끄러운 일입니다.” 2002년 가을, 전국 순회 경선을 거쳐 선출된 노무현 후보가 교체론에 시달리자 추미애 당시 최고위원은 적극 방어에 나섰다. 후보의 법적 하자가 아니라 여론 지지가 낮다는 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선대위가 출범하고도 당에서 선거자금을 한 푼도 지원하지 않자 노 후보가 SOS를 쳤다. “돼지 저금통을 들고 국민에게 도와달라고 하고 싶은데, 추 최고가 좀 도와주시겠어요?” ‘가능할까?’ 싶었지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길이 없다는 생각에 그때부터 ‘돼지엄마’가 되어 전국을 누볐다.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을 맡은 정동영 의원과 따로 또 같이 움직였다. 노무현 후보가 유세 마지막 날 “여러분, 추미애 최고위원 기억 못하시면 안 되죠. 다음엔 여성시대 온다는 거 아닙니까? 대찬 여자 추미애 의원이 여기 있습니다. 제가 새로운 정치 안 하고 어물어물하면 멱살을 잡아 흔들 우리의 여성 지도자 추미애입니다. 또 국민경선을 끝까지 지켜주고 제 등을 받쳐준 정동영 최고위원도 어떻습니까?”라고 강조한 것은 아마도 그간의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해서였을 터이다. 그러나 이 말에 정몽준 당시 국민통합21 대표는 전격적으로 노무현 지지를 철회해버렸고 아이러니하게도 노 후보가 단일화라는 부채 없이 대통령에 오르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

추미애는 새천년민주당 안에서 신주류와 구주류 갈등이 폭발한 후 신주류가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을 때 따라가지 않았다. 개혁을 하더라도 민주당 안에서 해야지 당을 쪼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민주당이 노무현 탄핵을 주도했다가 역풍을 맞아 ‘폭망’했고, 삼보일배까지 하며 당을 살리고자 애썼던 추미애는 3선 도전에 실패한 후 도피하듯 미국 유학길에 올라야 했다.

끝까지 탄핵을 막지 못한 회한과 자신을 이용만 하려 한 선배 정치인들에 대한 배신감에 잠을 못 이루던 추미애는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되던 무렵 김한길 의원한테 “노무현 대통령이 환경부 장관으로 쓰고 싶어 한다”라는 제안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제안을) 받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노 대통령 처지에서는 ‘당을 쪼개더니 사람도 빼갔다’는 비난을 들을 수 있는 상황이라 덥석 받을 수 없었다. 노 대통령께 ‘인간적으로 고맙다는 말만 전해달라’ 하고 거절했다”라고 추 대표는 기억한다.

임종석과 김민석 임종석 비서실장은 대학 후배다. 지난 대선 때는 당 대표와 후보 비서실장으로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합심했다. 특별히 살가운 사이여야 할 듯한데 오히려 반대다. 당과 캠프를 대변하다 보니 적잖은 긴장 관계가 빚어지곤 했다. 선대위 구성안을 두고 불거진 갈등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후보가 본선 후보로 확정된 며칠 후 추 대표가 통합선대위 명단을 발표했는데 임종석 후보 비서실장이 다음 날 입장문을 내고 “통합선대위가 되도록 원만한 합의를 해달라는 후보의 요청에도 일방적으로 발표한 과정에 대해 유감”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임 실장은 “당사자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안희정·이재명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등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핵심 쟁점은 종합상황본부장 인사였다. 대선 캠프에서는 ‘연속성’을 이유로 강기정 캠프 상황실장의 임명을 요청했지만 추 대표는 김민석 당 특보단장을 고집했다.

문 대통령 당선 후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당 대표 예방 일정이 추 대표의 선약을 이유로 불발되자 또다시 ‘김민석’ 이름이 배경으로 거론됐다. 추 대표가 김민석 단장의 청와대 입성을 추천했으나 거부당하자 몽니를 부리고 있다는 ‘설’이었다. 다음 날 단행된 당직 인선에서 추 대표가 김 단장을 국고보조금의 30%가 의무적으로 배정되는 당의 싱크탱크(민주연구원) 수장으로 임명하자 정가에서는 “도대체 두 사람이 무슨 관계이기에 추 대표가 저렇게 김민석을 챙기는 것이냐”는 의문이 증폭됐다. 이에 대해 기자가 묻자 추 대표는 할 말이 많다는 듯 깨알같이 설명했다. “김민석하고 나는 DJ 계보에서 막내 격이다. 김민석은 DJ의 총애를 많이 받았지만 나는 그렇게 살랑거리는 성격은 못 돼서(웃음) 같이 어울린 적이 거의 없다. 당 대표 되고 난 뒤 친문 진영에서 김민석이 이끄는 민주당하고 통합을 추진해왔으니 마무리해달라고 하더라(김민석은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의 창당으로 해산한 민주당의 당명을 계승해 따로 원외 정당을 꾸리고 있었다). 그래서 김민석을 만났는데 ‘흡수 통합해도 좋다, 갚아줄 부채도 없다’며 흔쾌하게 나오더라. 그 자리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총선 전에 통합하고 자리도 좀 주려 했는데 마침표를 못 찍었으니 추 대표가 해주시라. 다만 당명은 더민주 그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통합을 마치고 문 후보에게 ‘김민석이 딱히 지분을 달라고 하는 건 아닌데 간판만 받고 가만있기도 그래서 특보단장을 맡아달라 했더니 흔쾌히 받겠다고 해 제가 기분이 괜찮다’ 했더니 ‘추 대표가 활용을 안 하면 내가 데려다 쓰려고 했는데 한발 늦었네요’라며 칭찬하기에 ‘제가 잘 쓰고 돌려드릴게요’ 그랬다. 그런데 선대위 구성하면서 난리 치고 갑자기 ‘추의 측근’ ‘추의 남자’ 이렇게 나와서 기분이 좀 그렇더라. 김민석을 혹이라고 생각하면 혹을 갖다 붙인 건 문 대통령이고 그게 성가시면 나한테서 떼가라고 했다.”

추 대표는 ‘장미 한 송이’ 사들고 다시 방문한 임종석 실장에게 “일정상 착오가 있어 본의 아니게 아우를 ‘따’시킨 속 좁은 누님이 됐다. 꽃을 든 아름다운 남자 임종석을 열렬히 환영한다”라며 갈등설을 봉합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당의 원활한 소통, 국정 운영에서 당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는 추 대표의 소신이 워낙 강해 양측의 긴장 관계는 현재진행형이다.

ⓒ청와대 제공6월9일 문재인 대통령은 추미애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만찬을 하고 있다.

문재인 지난해 8월 추미애 대표가 선출됐을 때 당 안팎에서는 ‘친문’ 대표가 탄생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추 대표의 정치 이력을 보면 ‘사람’이 아니라 ‘당’에 충성하는 성향이 뚜렷하다. 선거 기간에는 ‘후보’에게 집중하는 선거 캠프, 당선 후에는 ‘대통령’에게 집중하는 청와대와 찌그락빠그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럼에도 추 대표는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당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책임정당제를 거듭 강조했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추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 달, 잘 가고 있나? 현재까지는 기대 이상이다. 당 대표 시절 크고 작은 갈등이 있을 때 과감성을 보여주지 못해 답답해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집권 후에는 ‘저런 분이셨나?’ ‘우리가 몰랐나, 사람이 변했나’ 놀라는 중이다.

추 대표도 못 보던 모습인가?못 봤다. 후보 시절 “이건 이렇게 하겠다” 보고하면 “그렇게 하라”고 재량권을 준 것처럼 했다가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조언을 하면 쉽게 흔들려서 마음을 굉장히 다친 적도 있다. 그래서 그때 문재인 후보가 어떤 남자냐고 내게 물어오면 “착한 남자다” 말고는 드릴 말씀이 없었다(웃음). 그런데 지금은 민심이 원하는 걸 잘 짚어내고 있다. 또 지금 힘들더라도 기다리면 하나씩 풀어가겠다는 믿음을 주고 있다. 이를테면 화력발전소를 정지시켰는데도 전기가 남아도니 그동안 얼마나 탁상행정을 했는지, 국민을 속여왔는지가 드러났다.

아쉬운 점도 있을 텐데?  

아무래도 인사일 텐데, 인수위 없이 가다 보니 어려운 점이 있는 것 같다.당도 인사추천권을 행사하겠다고 했다가 논란이 일었다. 인재풀, 인재 뱅크, 이런 개념이었는데 인사권 개입이다 이렇게 번역을 하니 좀 억울하더라. 과거 수직적이던 당청 관계는 변하고 있나? 수평은 아니고, 약간 삐딱한 건가?(웃음) 아직 인사도 다 되지 않았고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았으니 감안하고 봐야 한다. 바람직한 당청 관계는 무엇이라고 보나? 책임총리제도 좋지만 책임정당제가 우선이다. 정당이 정권교체를 약속하고 이를 위한 도구로 써달라고 후보를 내놓았는데 유권자들이 당선시켜줬으니 이제 정당이 국정 운영의 성공에 책임을 져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에서도 나타나지만 국정 운영의 심각한 문제가 칸막이 관료주의다. 관료들은 위험 영역은 다 외주화해놓고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모든 걸 서류로만 해결하려 한다. 그런 관료주의를 감시 감독하는 게 당이다. 당은 손발을 갖추면서 브레인이 있는, 움직이는 유기체다. 당이 현장에 가면 문제점과 해결책이 다 드러난다. AI(조류독감) 현장에 가보고 다시 한번 절실히 느꼈다. 관료들이 내놓은 ‘밖에서 닭을 기르지 말라’는 대책은 자신들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원인과 대책을 거꾸로 만들어놓은 거더라. 당이 관료주의를 감독하고 견제하면 국정 운영에 생산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대통령께도 말씀드렸다.

‘민주당을 현대 정당으로 업그레이드 하겠다’라고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현대화 하려는가?당의 주인인 당원들의 역량을 최대한 이끌어내 국정 운영의 동력으로 삼는 것이다. 당원들이 정책을 제안하고, 집단 토론을 통해 정책의 효율성을 높일 방안을 찾고, 적폐 청산이 구호로 끝나지 않게 지역 곳곳의 부정부패를 신문고처럼 중앙으로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연수원의 교육 기능, 민주연구원의 연구 기능 등을 확대하고 당 지도부가 전국 곳곳을 다니며 집단토론을 자주 열 예정이다.

대표 임기가 내년 8월까지다. 그 전에 거취에 변화가 있으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시장 출마설도 꾸준하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정치란 변화무쌍하니까. 하지만 그거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면 고려해야 되는 것이고.개헌에 대한 생각은 무엇인가?

개헌 논의도 당이 선도적으로 하려고 한다. 대통령은 지방선거 전에 하자는 시간만 약속한 것이고, 개헌의 내용은 국민이 결정하는 것이니, 그 내용을 논의할 기회를 민주당이 많이 제공하려고 한다. 토론의 장을 많이 만들겠다.

기자명 이숙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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