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5일 사우디아라비아를 시작으로 아랍권 국가들이 연이어 카타르와 국교단절을 선언했다. 카타르 국영통신사 QNA가 ‘카타르 국왕이 이란을 옹호하는 연설을 했다’고 보도한 게 도화선이었다. 카타르 정부는 통신사 사이트가 해킹당했다며 보도 내용을 부인하고 기사를 즉각 삭제했다. 하지만 단교 사태를 막을 수는 없었다. 서구사회는 이를 종파 간 분쟁으로 보도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카타르와 단교를 선언한 9개국이 모두 이슬람 수니파이기 때문이다. 카타르도 수니파이지만 최근 이슬람 시아파의 종주국인 이란과 사이좋게 지낸 게 화근이었다는 분석이다. CNN은 “미국 정보 당국은 러시아가 미국과 중동 국가의 동맹 관계를 흔들기 위해 카타르 통신사를 해킹해 가짜 뉴스를 유포한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전했다. 단교 사태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종파 간 분쟁과는 상관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EPA셰이크 하마드 전 카타르 국왕은 알자지라에 재정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부는 카타르와 단교를 선언하며 “1995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와 형제국(걸프 아랍 국가들)은 카타르 정부에 테러를 막기 위한 약속과 합의를 지키라고 꾸준히 촉구했는데도 반복적으로 위반했다”라는 성명을 냈다. 1995년은 카타르의 셰이크 하마드 전 국왕이 무혈 쿠데타로 아버지를 폐위하고 왕위에 올랐던 해다. 새로운 젊은 국왕은 독자 외교노선을 걷기 시작해 사우디아라비아와 틀어졌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방송 알아라비야는 “20여 년간 카타르의 정책은 사우디아라비아를 향한 음모에 기반한다. 무슬림형제단과 같은 극단주의 조직과 협력해 걸프 지역을 불안하게 했다”라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카타르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적대시했던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과 긴밀한 협조 관계였음을 예로 들며 카타르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음해해왔다고 주장했다.


카타르의 셰이크 하마드 전 국왕은 재위 18년 동안(1995~2013년) 카타르 경제를 발전시켰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지난해 카타르의 구매력 평가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2만7660달러로 세계 1위다. 그는 국왕 즉위 직후부터 근대화와 개방화 작업에 매진했다. 액화천연가스(LNG) 최대 수출국인 카타르는 세계 공급량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란과 카타르는 세계 최대 매장량을 보유한 해상 가스전인 노스돔(카타르), 사우스파르스(이란)를 공유한다. 종파가 아니라 경제적 이유로 양국은 우호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카타르가 천연가스로 눈부신 성장을 하니, 오일머니를 내세워 아랍의 주도권을 행사하려던 사우디아라비아로서는 언짢을 수 있다.

아랍 국가에서 연이어 폐쇄되는 알자지라 지국

카타르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1996년 수도 도하에 본사를 둔 아랍 위성TV 채널 알자지라를 설립한 주인공도 셰이크 하마드 전 국왕이다. 알자지라는 개국 초기부터 화제를 몰고 왔다. 그동안 이슬람권의 전통 왕정국가나 독재 체제에서 언론은 권력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데 충실했다. 하지만 알자지라는 달랐다. 아무런 검열도 거치지 않고 성역 없이 다뤘다. 아랍 매체에서 다루지 않던 인권 문제도 집중 조명했다. 정부 부패, 일부다처제, 여성 인권, 이슬람 원리주의 등 민감한 소재를 건드렸다. 카타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알자지라는 카타르 정부와 왕실도 가차 없이 비판했다. 그런데도 셰이크 하마드 전 국왕은 매년 알자지라에 재정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덕에 알자지라는 세계적 언론으로 성장했다.

ⓒEPA카타르 도하에 본사를 둔 아랍권 위성 보도채널 알자지라의 뉴스룸.

알자지라가 설립되고 성장하는 과정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언론 정책도 영향을 끼쳤다. 1996년 영국의 BBC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공동 소유한 ‘BBC 아랍’이 내부 분쟁에 휘말려 문을 닫았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지나친 검열이 갈등을 촉발했다. 이때 BBC 아랍에 근무하던 직원들이 대거 알자지라로 옮겼다. 알자지라에서 그들은 마음껏 사우디아라비아 왕가를 비판할 수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로서는 알자지라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국교 단절 선언 후 제일 먼저 알자지라 사우디아라비아 지국을 폐쇄하고 허가를 취소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지국을 폐쇄하며 “알자지라가 테러 단체의 음모를 지원한다”라고 밝혔다. 카타르와 단교한 진짜 이유는 바로 알자지라를 폐쇄하기 위한 것 아니었느냐는 의구심이 들게 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기자는 “우리 정부는 알자지라가 사우디아라비아 왕정을 위협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카타르 정부가 알자지라를 경제적·정치적으로 비호하므로 카타르와 전면전이 불가피한 상황이 된 것이다”라고 이번 단교 사태의 배경을 설명했다.


알자지라는 사우디아라비아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심기를 건드렸다. 2002년 요르단 왕실을 비판하자 요르단 정부는 알자지라 암만 지국의 허가를 취소했다. 2004년 이라크 전쟁 당시 알자지라는 이라크 저항세력의 활동을 집중 보도했다. 미국의 폭격 위협에 떠는 민간인들에게 직접 마이크를 들이대 아랍권 전체가 미국에 분개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생생한 영상도 내보냈다. 미국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알자지라 바그다드 지국을 폭격했다. 미국은 폭격으로 방송사 지국을 ‘폐쇄’한 것이다.

카타르와 이란의 친분을 문제 삼아 이번 단교 조치가 이뤄졌지만, 이란도 알자지라라면 고개를 젓는다. 2005년 알자지라가 이란 경찰이 아랍계 소수민족의 시위를 무력 진압한 사실을 보도하자 이란 정부는 알자지라 테헤란 지국을 폐쇄했다. 아랍 국가들은 2011년부터 혁명이 들불처럼 번졌던 ‘아랍의 봄’ 때 알자지라에 위협을 느꼈다. 알자지라는 시위대의 주장을 집중 보도했다. 이집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집트 군부는 무슬림형제단 출신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을 축출한 2013년부터 알자지라 방송을 금지했다. 그동안 이집트 당국은 알자지라 소속 언론인을 수차례 구속기소해 중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지난해 5월에는 이집트 1심 법원이 간첩 혐의로 기소된 알자지라 방송 기자 2명을 포함한 6명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다. 기밀문서를 유출해 이집트의 국가 안보를 해쳤다는 혐의였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권 9개국은 카타르가 10대 조건을 수용하면 외교 관계를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그중에는 이란과의 단교 및 알자지라 방송 축소도 들어 있다. 카타르가 알자지라를 매각하거나 일부 국가의 지국을 폐쇄한다면 국교 단절을 풀 실마리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아랍에미리트의 유명 지역 평론가인 술탄 소우드 알카세미는 트위터에 “카타르의 첫 화해 제스처는 알자지라 폐쇄가 될지도 모른다”라고 밝혔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